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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문학의 고고학> 사드 Ⅱ발제문 (2/22) +2
삼월 / 2017-02-21 / 조회 2,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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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고학》 Ⅲ 사드에 대한 강의 두 번째 강연

 

문학세미나 20170222 삼월

 

“욕망은 진리 안에서만 무한하고, 진리는 욕망 안에서만 작동한다”

 

장면과 담론의 교차

두 번째 강연에서 푸코는, 사드의 텍스트에 나타나는 에로틱한 장면과 이론적 담론의 교차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 먼저 성적 결합에 대해 설명하고 묘사하는 부분을 ‘장면’으로, 이론적 부분을 ‘담론’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푸코의 사드 텍스트 분석은 이 담론과 욕망의 교차작용이라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담론과 장면은 순서를 바꿔가며, 기계적 규칙성을 따라 나타난다. 이러한 교차의 원리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장면과 담론은 에로틱한 장면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기에 있다. 장면은 사태와 행위를 재현하고, 담론은 정당화를 통해 진실을 말한다. 이때 충격적인 사실은 섹슈얼리티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사드가 전혀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드의 담론은 섹슈얼리티나 욕망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담론의 대상은 신과 법, 사회계약과 범죄, 그리고 자연이다. 담론에는 욕망이 등장하지 않지만, 담론과 욕망 사이에는 명백히 심리학적인 하나의 장소가 존재한다. 담론은 장면의 이론적 무대이며, 성적 쾌감의 절정에 이르게 해 주는 곳이다. 이 담론은 욕망의 메커니즘 차원에서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이 담론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담론과 욕망은 같은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다.

 

네 가지 비존재의 기능

사드의 텍스트는 네 가지 비존재를 확증하려 한다. 다시 말해 신과 영혼, 범죄, 그리고 자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 네 가지 비존재의 테마들은 ‘규칙을 벗어난 실존’이라 부를 수 있을 무엇인가를 규정한다. 규칙을 벗어난 실존은 어떤 불가능성도 인정하지 않는 실존이다. 사드의 이 담론은 욕망과의 관계에서 어떤 기능을 가지는가? 푸코는 아래의 다섯 가지 기능을 제시한다.

1) 탈거세화의 기능 - 리베르탱에 대한 규정

2) 차이화의 기능 - 희생자에 대한 규정

3) 파괴의 기능 - 키메라에 대한 규정

4) 경쟁의 기능 - 사드의 체계에 대한 규정

5) 개인성의 부정 기능 - 개인에 대한 규정

 

탈거세화의 기능

이 기능은 모든 한계를 철폐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욕망도 포기하지 않도록 해 준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지 않고, 이를 통해 나의 실존이 온전히 구제된다. 네 가지 비존재의 증명은 ‘서양’의 이데올로기적, 철학적 기능의 역전이다. 신과 영혼, 범죄와 자연이 거세를 불러일으키는 담론이었다면, 이를 비존재로 규정하는 사드의 담론은 탈거세화의 기능을 수행한다. 사드는 서양의 종교와 철학이 긍정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부정한다. 서양의 형이상학은 존재론의 층위에서 긍정적이지만, 규정성의 층위에서 부정적이었다. 사드의 부정을 통해 모든 것은 가능해지고, 규정성의 질서에 의해 거부되지 않는다. 사드의 담론은 서양 형이상학의 담론 내부에 존재하는 부정의 체계를 대체하는 담론으로서 스스로를 구성한다.

 

차이화의 기능

사드의 모든 텍스트에서 영웅은 리베르탱이며, 리베르탱의 담론은 자신에 의해 유지된다. 또 말을 듣는 사람은 미래의 희생자이다. 리베르탱은 설득하려는 듯 보이지만, 희생자는 리베르탱의 논리에 설득되지 않는다. 리베르탱의 참다운 대화 상대자는 희생자가 아니라 다른 리베르탱, 혹은 자기 자신이다. 이미 설득된 리베르탱을 다시 설득하는 일, 이 일은 희생자와 리베르탱 사이의 차이화라는 문턱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다. 네 가지 비존재의 테마는 영원한 도그마나 흠결 없는 논증의 결과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베르탱은 참다운 리베르탱으로 판명되기 위한 시험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어느 한 가지 테마라도 저버리게 된다면 참다운 리베르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다른 리베르탱에게 희생된다.

차이화는 희생자와 리베르탱을 나누기도 하고, 리베르탱과 다른 리베르탱을 구분하기도 한다. 희생자와의 관계에서, 리베르탱은 희생자의 소멸과 함께 욕망의 대상이 사라져버리는 한계를 만나게 된다. 다른 리베르탱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죽일 권리는 없다. 여기서 욕망에 대한 제한이 나타난다. 또한 리베르탱이 자기 욕망의 대상을 보존하고 싶다면, 다른 리베르탱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파괴의 기능

네 가지 비존재의 테마는 몇 가지 논리적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사드는 속성에 대한 일정한 판단으로부터 그 속성을 담지한 존재의 비존재를 추출해낸다. 이는 논리학의 관점에서 전적으로 유지 불가능한 논리이다. 사드는 신과 영혼, 법과 자연을 환상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사드에게 이 네 가지는 키메라와 같은 존재이다. 키메라는 여러 동물의 몸을 합친 괴물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상태에 미치지 못할 만큼만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다. 사드의 담론은 신과 영혼, 법과 자연의 본성을 부정하면서, 그 부정된 만큼 이 네 가지가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한다. 신의 악함은 신을 부정하는 논리가 되며, 신을 악하게 만들어 존재하지 않게 하는 존재는 바로 리베르탱이다. 우리의 끔찍한 욕망과 악의가 다시 신의 비존재를 증명한다. 진리와 욕망의 관계가 키메라의 괴물성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경쟁의 기능

사드의 텍스트 안에서 리베르탱들은 각자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네 가지 테마들의 망에 의해 서로 중첩되고 소통되는 체계가 개인과 상황에 고유한 결정화로 작용한다. 리베르티나주의 일반 체계란 존재하지 않지만, 각각의 리베르탱들은 하나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체계가 개인들의 불규칙성을 규정한다. 이를 통해 체계가 리베르탱들의 도구가 되고, 이 기능을 통해 리베르탱들은 서로를 죽일 수 있다. 체계로 인해 리베르탱들은 영원히 투쟁하게 된다.

 

개인성의 부정 기능

체계가 리베르탱을 죽음에 노출시킬 때, 리베르탱은 자신의 담론을 끝까지 밀고 나가 죽음을 최상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에 몸을 내맡긴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공격의 극치이다. 사드의 리베르탱들은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죽는 순간에는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여기서 욕망의 제한을 풀어주는 탈거세화의 기능이 다시 나타난다. 사드에 따르면, 결국 우리가 삶에서 만나게 될 가장 커다란 쾌락은 나라는 개체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거세하지 않음을 통해 나의 실존이 구제된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개인 자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사드를 읽을 때 피해야 할 두 가지 방식

푸코가 사드 독해에서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프로이트적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마르쿠제식 모델이다. 사드에게 욕망과 담론이 자리 잡고 있는 질서는 무질서 자체이다. 프로이트가 욕망에 대한 진리를 말하려 했다면, 사드는 진리의 욕망하는 기능을 복원하고자 했다. 이 때 우리는 프로이트를 통해 사드를 읽을 것이 아니라, 사드를 통해 프로이트를 읽어야 한다. 마르쿠제는 진실담론을 통해 모든 종류의 구속으로부터 욕망을 해방시키려 한다. 이는 양심의 가책 없는 욕망이다. 그러나 사드의 욕망은 소멸된 죄책감이나 질서에 의해서는 획득될 수 없다. 사드에게 욕망과 진리는 영원한 무질서 안에서만 실현된다. 사드의 욕망은 진리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욕망과 진리는 무한한 연속, 흔들림, 흰 물결 안에서 서로 증식시키고 증식될 것이다.

 

댓글목록

주호님의 댓글

주호

그사이 푸코의 언어가 익숙해졌기 때문일까요? 뒤로 갈수록 재밌는 책이었습니다.
현실에는 너무 많은 리베르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래서일까요?
저에게는 사드가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더 섬뜩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즐거운 세미나가 오늘로 마지막이라니, 그저 아쉽기만 합니다.
문학세미나는 저를 '우리실험자들'로 이끌어준 길잡이별이었습니다.
삼월님, 오랜 시간 문학세미나 반장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음이 헛헛하고 옆구리가 외로우시면... 언제든 다시 세미나 열어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삼월님, 자연님, 에스텔님, 희음님, 토라진님, 현님, 훔볼트펭귄님 모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그렇군요. 내 기분이 바로 헛헛하고 옆구리가 외로운 것이었군요.
아침부터 비가 오다, 눈이 오다 하는 날이었지요.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지요.
루시드 폴의 '겨울 장마'를 들으면서, 세미나를 하러 갔지요.
양파튀김은 어쩐지 눅눅하고, 인디카가 유난히 쌉쌀한 날이었지요.
뒤풀이자리에서 많은 말을 들었지요. 물론 하기도 했고요.
이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구나, 나는 잘 몰랐구나, 그런 마음이 드는 날이었지요.
잠자리에 들면서 사드와 욕망에 대한 후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새로운 욕망이 샘솟고, 우린 또 만나겠지요.
고마워요. 주호님도, 그리고 주호님이 이름 불러준 모든 분들도!
언제나 제가 더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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