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넘자] 7장 이른바 ‘본원적 축적’과 자본의 계보학2
윤도현
/ 2017-02-09
/ 조회 2,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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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7장 이른바 ‘본원적 축적’과 자본의 계보학
3. 국내시장의 창출
1) 자본주의적 시장
- 시장은 무산자의 존재와 더불어 자기증식하는 화폐로서 자본의 정의가 가능하게 했던 실질적이고 역사적인 또 하나의 조건이었다.
- 무산자의 존재 자체로 노동력 상품의 시장(노동시장)이 존재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그것은 자본주의적인 생산의 조건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자신의 생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상품 시장을 필요로 한다.
- 시장은 본원적 축적 이라 불리는 수탈의 시기에도 존재하고 있었고, 그 이전에도 존재하였다. 그것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시장이 아니라. 자신의 생산수단을 갖고 있으며, 먹고살기 위해 생산하고, 남는 생산물을 다른 것과 교환하기 위해 들고 나가는 소생산자들의 시장으로 형태들은 때와 곳마다 다르겠지만, 교환이 발생하는 공간으로 확장되어도 어디서나 쉽게 발견된다.
- 그러나 자본의 증식운동은 이러한 시장에서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다. 자본은 필요에 의해 상품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팔기 위해 생산한다. 그렇기에 생산한 상품은 무슨 일이 있어도 팔아야 하며, 최소 비용에 의해 최대한 많이 생산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시장을 필요로 한다.
- 단순상품생산 내지 소생산에서 비롯되는 국지적인 자연발생적인 교환의 장으로서의 시장과 기아와 결핌을 통해 강요되는 전면적 교환의 장으로서의 자본주의적 시장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멀쩡한 고기와 덫에 놓인 고기를 구별 못하는 너구리보다 더 한심한 일이다.
2) 도시와 시장
- 자본주의적 시장의 발생이 이미 충분히 발전되어 있었던 중세 도시에서 상업과 시장이 확대되면서 나타난 것이라고 하는 것 또한 신화에 불과하다.
- 자본주의적 시장은 이러한 시장의 양적 확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반대로 자치도시를 조직하던 다양한 조직들은 상품시장이나 노동력시장이 도시 바깥으로 확산되는 것을 저지했다. 왜냐하면 그 도시들은 원격지 교역을 통해서 특별한 이윤을 획득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자신들이 상업과 무역을 독점함으로써 획득하는 초과이윤으로, 따라서 도시 바깥으로 시장과 교역이 확산됨으로 인해 이러한 초과이윤이 감소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 “농촌의 봉건제도와 도시의 길드제도는 고리대금업과 상업에 의해 조성된 화폐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을 방해했다… 새로운 매뉴팩처는 해안의 항구 또는 [구도시와 그 길드의 통제 밖에 있는] 농촌지역들에 건설되었고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공업 배양지들을 반대하는 자치도시의 치열한 투쟁이 일어났다.” 도시의 원격지 교역은 자본주의적인 국내 교역의 모태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것의 방해자였다.
3) 시장과 국가
- 그렇다면 자본주의적 국내시장은 어떻게 창출되었던가? 그것은 한편으로는 농민들의 생산수단을 탈취하고 소생산을 파괴하여 자본주의적 상품시장과 노동력시장을 창출한 피어린 저 ‘본원적 축적’의 과정에 의한 것이었다.
-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자치도시의 특권과 텃새를 분쇄하고, 도시와 농촌의 구별을 넘어선 전국적 시장을 수립하고자 했던, 국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16세기경의 중상주의 체제는 이러한 과제를 자신의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중상주의는 절대주의 국가 입장에서, 이처럼 분리된 교역을 통합하여 하나의 전국적인 시장을 창출하려는 전략이었고, 이로써 영토적으로 통합된 국가를 확립하려는 통치의 기술이었다.
- 자본주의적 국내시장은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창출된 것이다. 이후에도 이러한 시장은 스미스 말처럼 “내버려 두어”(Laissez faire)도 자연발생적으로 작동하는 자연적 메커니즘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장의 ‘자연적’ 작동을 보장하려는 다양한 국가적 통제에 의해서만 유지되었다. 시장의 힘을 신봉하고 숭배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시장의 ‘자연적’ 작동을 위해 국가와 제도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4. ‘본원적 자본’은 어떻게 축적되었나?
1) 공채와 세금
- 축적을 통해 본원적 자본을 형성하며, 본원적 축적의 다른계기들이 부가된다. 본원적 축적의 다른 계기들은 식민제도와 더불어 국채제도와 근대적 조세제도 및 보호무역제도 등으로 통합된다.
- 공채는 본원적 축적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의 하나이다. 국가 안에 포섭된 국민은 국가가 발행한 채권과 그에 대한 이자까지 갚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세금 내지 조세제도는 이러한 공채나 “국채 제도의 필수적인 보완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는 조세제도는 “임금노동자들을 순종, 절제. 근면케 하여… 과도한 노동에 종사케 하는 가장 좋은 제도”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2) 식민주의
- 본원원적 축적의 요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럽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외부세계를 강탈하여 획득한 부의 요소들이다. “아메리카에서 금 은의 발견,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의 섬멸과 노예화 및 광산에서의 생매장, 동인도의 정복과 약탈의 개시, 아프리카의 상업적 흑인 수렵장으로 전환 – 이러한 목가적인 과정들은 본원적 축적의 주요한 계기들이다.
- 소위 ‘신대륙의 발견’이니 ‘지리상의 발견’ 등은, ‘문명’과 ‘계몽’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후, 다른 색깔로 치장하고 은폐하여 지워버린 야만과 약탈의 역사이다.
3) 노예사냥
- 자본은 자신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인간의 이름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끔찍한 노예제마저 얼마든지 이용하며 유리하려 했다.
-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적인 방법으로만 축적하고 착취하지 않는다. 17세기의 네덜란드, 18세기 후반 이후의 영국, 미국 등 가장 선진적이고 전형적인 자본주의는, 끔찍한 노예매매와 노예사냥을 통해 거대한 자본을, ‘본원적 자본’을 축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 휴머니즘의 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바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약탈이 시작된 시기와 일치한다. ‘인디언’이 동물인지 인간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던 르네상스 인본주의자들 중 어느 누구도 흑인들이 인간이 아님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형성된 ‘인간’ 개념은 서양인들이 말하는 인간중심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4) 축적의 신과 그 선교사들
- 식민지 약탈을 위한 배에는 인간을 특권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신의 충실한 성직자들이 항상 타고 있었다. 축적의 신과 선교사들은 이러한 식민지 ‘개척’을, 자신의 신의 위대한 능력 아래 다른 인민들을 ‘계몽’시키는 선교로 정당화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강탈과 살육에 직접 나섰다.
- 맑스는 “진정한 식민지들에서도 본원적 축적의 기독교적 성격은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5) 폭력의 경제학
- 국가권력을 앞세운 이러한 식민주의는 “자본 집적의 강력한 지렛대” 였으며, 이른바 ‘본원적 자본’의 형성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 자본주의는 일국적인 차원에서 발생하여 발전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없고, 이른바 ‘후진국’에 대한 지배와 착취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자본의 신성한 기원이 된 이 끔찍한 탄생과정 전체에 걸쳐서 ‘보편적인’ 수단이 되었던 것은, 국가장치 내지 국가적 폭력이었다. “이 모든 방법들은 봉건적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전환과정을….그 과도기를 단축시키기 위해, 국가권력 즉 사회의 집중되고 조직된 힘을 이용한다…”
- 이로써 그것은 근면성의 신화를 통해, 최초의 순수 경제적-도덕적 형식을 부여하는 정치경제학의 은폐된 폭력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경제학 비판은, 경제적 축적을 위해 폭력을 이용하고 거꾸로 폭력마저 경제적 효과로 귀착시키는 자본의 권력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폭력의 경제학’을 요구하는 것이다.
5. 자본의 계보학
- 자본의 공리계, 가치론의 공리계를 그 발생지점까지 추적하여 정치경제학적 공리계의 외부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가치, 노동, 화폐, 자본, 축적, 이윤, 지대 등과 같은 당연시된개념을 근본적인 의문에 부치는 비판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본의 논리가 진리가 되는 양상, 그것도 유일한 현실적 진리가 되는 양상에 대한 여구고 대개는 자연적 현실성의 형태로 나타나는 그것의 진리됨을 근본적인 의문에 부치는 연구며, 그러한 진리의 형식을 취하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다. 요컨대 ‘자본과 그 외부’에 대한 연구, 그것이 바로 맑스가 자본에서 훌륭하게 보여준 자보의 계보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