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넘자] 7장 이른바 ‘본원적 축적’과 자본의 계보학_후기 +1
원진
/ 2017-02-10
/ 조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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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술을 많이 마셨다.
자본은 내게, 돈을 줄테니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내려놓고 노예가 되라고 한다.
어차피 이번 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닐지도 모르니까,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전쟁이 끔찍하다 말하면서도 나는, 직장을 전쟁터로 부르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매일같이 스스로를 내몰았다.
수년 간 지속된 회의실의 고성과 폭언에도, 내가 업무스타일을 맞추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 위안했었다.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월급을 손에 넣기 위해, 나는 내 양심에 반하는 지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었다.
피가 나도록 손톱을 물어뜯으며 소화불량과 스트레스성 탈모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그를 떠나지 못했었다.
어릴 때의 플랜대로라면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이 되어야했을 나이, 나는 무직자라 불리기 싫었다.
공백없이 일하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즉시 다음 전쟁터로 옮겨야만 했다.
주입된 사고에서 벗어나서 조금이라도 본래의 나를 찾고 싶어, 숙취 속에서 또 세미나를 찾았다.
시장이, 또 국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고 나면 나는 인간답게 살게 될까?
"사람이 먼저다"라며 시끄럽던 지난 대선 모 후보의 캐치프레이즈를 보며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인디언'이 동물인지 인간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던 르네상스 인본주의자들 중,
어느 누구도 흑인들이 인간이 아님을 의심하지 않았다지.
어느 누구도 흑인들이 인간이 아님을 의심하지 않았다지.
나는 인간다운지.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어떤 게 인간다운 삶인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주 어렸을 때 수업시간에 배운 것 같다. 필요(수요)가 있어서 생산(공급)하기 시작했다고.
마흔이 다 되어서 다시 배웠다. "자본은 필요에 의해 상품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팔기 위해 생산한다"고.
다른 건 몰라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게 시간낭비가 아님은 배운 것 같다.
내 냉장고가 생기고 나서 알게 된 사실 첫번째는 웬만한 식재료는 쉽게 변하거나 곰팡이가 생긴다는 것.
선물받아 고이 아껴놨던 차류와 절임류가 그랬고, 밀폐된 채 뜯지 않은 농산물들도 그랬다.
지난 직장에서 일할 때, 푸드뱅크에서 다시 맛보고 싶지 않은 맛의 음료를 여러 박스 받아온 적이 있다.
제조일자가 표시되지 않은, 만든 지 아마 3년은 지났을 그 음료들은 본래의 영롱한 색을 잃지 않고 있었다.
구성원의 합의에 따라 필요한만큼 적당히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당장 먹을 것만이라도.
영업, 마케팅이라는 이름의 엄청난 노력에도 팔리지 않고 엄청난 양의 방부제를 품은 채 여기저기 떠돌다가,
마지못해 세금이라도 감면받겠다며 자선의 탈을 쓰고 푸드뱅크를 두드렸을 그 안타까운 음료병들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도록.
"계획경제"라는 단어 대신 생협의 계약재배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어온 구절 하나 더,
"조세제도는 임금노동자들을 순종, 절제, 근면케 하여...... 과도한 노동에 종사케 하는 가장 좋은 제도" - 맑스.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휴머니즘이란,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
인간을 목적으로 다른 것들은 수단으로 희생되어도 좋다는 목적론적 사고를 말합니다.
그래서 휴머니즘은 자본이 동물과 자연을 착취하고, 결국은 인간을 파괴하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휴머니즘만큼 자본주의적 착취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가 또 있을까 생각합니다.
무엇이 인간인지, 인간다움이 어떤 것인지 보다
나는 어떤 존재이며, 나로서 산다는 건 무엇인지 이게 더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때문에 사는지 묻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해요.
그 물음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 삶도 끝나게 될테니까요!!
이번 생이든 다음 생이든, 모든 생은 자기 것이고 내가 주인일 수 밖에 없지요.
찌질한 주인이 되는가, 근사한 주인이 되는가는 결국 자기 몫이겠지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