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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학의 고고학> 2주차 발제문
희음 / 2017-02-02 / 조회 2,768 

본문

II. 문학과 언어 <첫 번째 강연>, [문학의 고고학]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문학 안에서 열리게 되는, 자신의 모든 존재를 수확하게 될 빈터이다. 문학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말라르메의 작품이라는 사건(19세기 초~18세기 말) 이래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품, 문학, 언어

 

1. 언어는 모든 발화된 것의 중얼거림이다. 언어는 이야기 속에 축적된 파롤의 모든 사실이자, 랑그의 체계 자체이다.

2. 작품은 자신만의 고유한 공간을 구성하면서, 그 안의 중얼거림을 억제하고 단어와 기호의 투명성을 두텁게 만들어내는 것들(언어)의 배치로 이루어진다.

3. 문학은 언어 작품의 일반적 형식도, 언어 작품이 위치한 보편적 장소도 아니다. 문학은 언어와 작품의 관계가 통과하는 삼각형의 정점이 되었다. 그 관계란, 언어와 작품을 잇는 앎과 기억이라는 수동적 관계를 벗어난, 언어가 변형되고 언어가 되어가고 언어 자체가 만들어지는 순간에 있어서의, 언어와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깊고도 모호한 관계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둘 사이의 직선 바깥에 존재한다.

 

언어의 비어있음

 

문학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텍스트가 아니다. 문학은 우화이고 이야기 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우화는 부재, 살해, 양분 작용, 시뮬라크르인 언어를 통해서만 이야기 된다. 문학은 그 자체로, 언어의 내부에 뚫린 하나의, 뛰어넘어지지 않는 거리이다. 자기 자신의 위에서 흔들리는 제자리 진동이다. 그것은 문학과 언어 사이의 망설임 때문이다. 문학은 그 자신이 시작되는 순간, 즉 백지로부터만 문학이다. 단어가 적히는 순간, 그 백지는 문학의 페이지가 되지만, 그것은 문학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단어는 일종의 위반이다. 문학적 위엄도 지위도 없는 침입을 대동하는 단어.(. 프루스트의 첫 문장, “오랫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로운 문학적 행위의 네 가지 부정 작용

 

새로운 문학은 다른 작품들에 대한 거부, 거리두기, 환대 등을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 자체에 대한 거부를 경유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래 네 가지 실타래 모두에서 취해져야 한다.

1. 다른 사람들의 문학에 대한 거부

2. 다른 사람들의 작품이 문학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이의제기

3. 스스로가 문학을 행할 권리에 관련된, 자기 자신에 대한 거부와 이의제기

4. 문학 언어의 사용에 있어, 문학에 대한 체계적이고 완전한 살해 이외의 것을 말하거나 행하는 것에 대한 거부

(. 보들레르는 낭만주의에, 말라르메는 보들레르에, 초현실주의자는 말라르메에 속하지 않는다.)

 

기호와 타락의 두 형상

 

19세기 이래, 문학 행위는 문학의 접근 불가능하고 순수한 본질에 대한 위반이 되었다. 백지 위에 단어가 쓰이는 순간부터 그것은 어떤 것에 대한기호가 된다. 작품의 백지 위에서 문학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을 향한 깜빡임.

1. 위반하는 파롤이라는 형상 금지, 한계에 도달한 언어의 형상, 유폐된 작가의 형상 위반 금지 - 오이디푸스

(. 사드의 작품: 거대한 모방작이다. 하나의 페이지를 백지로 되돌려 버리려는, 파롤의 위반에 의해,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철학과 문학과 언어를 소거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2. 문학을 향한 기호를 만들어내는 단어로 이루어진 형상 서로의 등에 기대어, 자신을 절단하는 동시에 서로가 이루는 하늘 위에서 자신을 무한 반복하는, 책이라는 형상 죽음 도서관 - 에우리디케

(. 샤토브리앙의 책: 도서관 안, 사드의 책의 분신이라 할 만하다. 첫줄부터 한 권의 책이 되고자, 절대적 도서관이라는 먼지 쌓인 영원성의 공간 속으로 스스로를 이전시키고자 한다.)

 

수사학의 종말

 

모든 작품은 자신이 말하는 것, 이야기하는 것, 우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작품이 더 이상 내용과 수사학에 봉사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의 일체 안에서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기원을 말하고 있다.

(. [운명론자 자크] 디드로가 자신의 고유한 문학에 관련하여, 자신을 분리시키는 일, 그것은 문학의 일이 아니며, 간접적인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하나의 언어(신의 언어) 위에 이야기가 구축되는 것이다. 또한 사학은 재현(의 세계)과의 상관항으로도 볼 수 있다.)

문학은 수사학의 공간이 우리가 책의 부피라 부를 수 있을 무엇인가에 의해 대체되었던 순간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말라르메의 책은, 자신의 공백 안에서 문학으로부터 결정적으로 도피한 존재를 스치는 한 권의 책이다.

 

시뮬라크르의 공간

 

문학의 언어란 무엇인가를 물을 때, 하나의 작품도 문학적인 것도 아니며, 볼 수는 있지만 만져볼 수는 없는 거울 속의 공간처럼, 하나의 잠재적 공간, 매개적 공간, 시뮬라크르의 공간이라 말할 수 있다. 문학, 언어 혹은 그 어떤 지점 안에도 위치될 수 없는 것. 분산이자 퇴색이며, 축복받은 순간들의 동일시이자 회귀인, 프루스트적 시간.

프루스트적 (잃어버린) 시간: 1. 닫혀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삶의 시간 2. (작품의 탄생을 말해야하는) 사전에 이미 헛되이 소모된, 작품의 시간 3. 황금의 조각들, 파편들이라는 형태로만 되찾아질 수 있는, 떠도는, 작품 안의 시간 4. 작품을 출현시키기 위해 침묵하는, 실제의 작품이 완성된, 종말의 시간-시간이 되찾아지는 동시에 우리는 그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책의 언어로서의 문학

 

책은 자신의 내용 이외에 또 다른 본질을 갖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문학은 언제나 책의 시뮬라크르로 남게 된다. 문학은 언어가 자신의 사후에 남겨 놓은 덧없는 실존이다. 인간의 언어로도, 신의 말씀으로도, 자연의 언어로도, 침묵 혹은 심장의 언어로도 이해되어서는 안 되는, 문학은 하나의 위반하는 언어이자, 죽을 수밖에 없는, 되풀이하는, 다시금 이중화되는 하나의 언어, 책 자체의 언어이다. 문학에서, 말하는 유일한 주체는 바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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