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고고학> 2주차 후기 +7
희음
/ 2017-02-02
/ 조회 4,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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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오랫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것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은 그 자체로 전혀 문학적이지 않다. 문학은 문학적인 단어들 혹은 그런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텍스트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문학은 언어가 자신을 사용하면서, 사용과 동시에 스스로를 죽이고, 그러한 죽음의 순간을 전시하는 일이다. 푸코는 그것을 백지의 문학이라고 말한다. 즉, 그 자신이 시작되려는 찰나만이 문학이며, 그것이 백지 위에 적히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문학이 아니게 된다고. 그리고 그 찰나는 깜빡거림이다. 보았지만 무엇을 보았는지는 말할 수 없는. 다만 내가 본 것을 보았다고만, 내가 본 것이 내 몸속에 기입되었다고만 말할 수 있는. 낚아챌 수 없고 붙잡아 앉힐 수 없는, 떨림 자체의 사건 말이다.
라캉이 내담자의 말의 진실을 그의 절뚝임, 즉 그가 말을 잃고 헤매는 순간에 있다고, ‘기의 없는 기표’의 순간에 있다고 말했다면, 푸코가 말하는 문학의 진실은 ‘기표 없는 기의’의 순간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체가 삼켜버린 막대한 기의, 그것은 텍스트라는 그릇에 담기지 못한다. 영원히 담기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다만 간헐적인 깜빡거림으로만 미지의 시공간에서 떠돌게 될 것이다. 발견될 순간을 기다리면서, 아니 그 순간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문학 또는 문학의 순간은 ‘없다’고 이야기되어도 무방할 것 같다. 문학 이전과 문학 이후만 있을 뿐. 작가의 입안에서 문학적인 것이 우글거릴 때, 문학의 말들이 혀끝에서 맴돌 때가 문학 이전이라면, 그 단어와 문장이 흰 바탕 위에 검은 흑연, 검푸른 잉크로 새겨질 때가 바로 문학 이후이다. 그것이 책이라는 문학의 시체, 문학의 무덤인 것이다. 다시 말해 문학은 그 원혼인 문학 이전과, 그것의 뼛가루인 문학 이후로써만 자신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의 몸을, 공간을 얻지 못한, 실족한 시간의 걸음걸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바닥없는 바닥에서 깜빡거림으로만 걷고 있는, 유유하고 아름다운, 세상에 없는. 푸코는 그것(문학)을 두고 ‘책의 시뮬라르크로만 남는’ ‘위반의, 되풀이되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밖에 없는, 다시금 이중화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댓글목록
희음님의 댓글
희음
늦어서 죄송합니다. 한 주 쉬어간다고 무의식적으로다가 후기 쓰는 일까지 자체 휴가 들어갔나 봅니다.
삼월 님 말씀 듣고 화들짝 놀라서, 놀라 놓고도 즉시 쓰지는 못하고, 미룸의 관성의 노예가 살짝쿵 되어주고 나서야 올립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유유하고 아름다운 깜빡거림으로 한 편의 시가 되어버린 후기를 남겨주셨군요.
우연히(이상한 직감에 사로잡혔달까요?) 홈페이지 들어왔다가 일찍 발견해서 더 기분좋은 후기입니다.
책이 행하는 위반이 문학이라는 말이 저는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책이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이성과 지식을 위반하는 일.
이성과 지식을 존재하게 하는 언어로 만들어졌기에 늘 문학이 아닌 것들의 침입을 견뎌야 하는 문학.
언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기에 어떤 혁명도 완벽하게 해 낼 수 없는 문학.
찰나의 반짝거림과 찰나의 저항으로 남는 문학.
푸코는 그 사유를 단절하는 비이성 속에서 어떤 진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책이 죽은 지식으로 가득찬 자신을 견디며 살아가기 위해 문학을 필요로 한다는 진실.
혹은 우리가 이성으로 무장한 자신을 견디며 살아가기 위해 광기를 필요로 한다는 진실.
에스텔님의 댓글
에스텔
책이 죽은 지식으로 가득찬 자신을 견디며 살아가기 위해 문학을 필요로 한다는 진실.
혹은 우리가 이성으로 무장한 자신을 견디며 살아가기 위해 광기를 필요로 한다는 진실.
멋진 말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느낌만이 입안에서 우글우글, 단어가 되지 못하는군요. 아, 얘네들을 문학이 되게 하고 싶어요. 힘이 드네요. 공부했던 내용들이 와글와글, 서로 짝을 찾지 못하고 어울리지 않는 인연을 만나 제 머리속을 헤매기도 하지만, 이것도 과정이고 즐거울 때가 있습니다.
희음님의 댓글
희음
아, 정말 에스텔 님 말씀처럼 저도 위 두 문장이 가슴에 콕 박힙니다.
저 문장이 쓰여지는 순간과 저 문장이 삼월 님의 입속에서 들끓을 때 역시 문학의 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하고요.
죽은 지식과 문학의 대결, 무장된 이성과 광기의 대결이라는 그림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 어렴풋한 상을 남기는 순간 말입니다.
언어라는 몸을 빌어서만 자신의 깜빡임을 구현할 수 있는, 그러나 그 몸을 매 순간 부수어야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문학이라는 아이러니를 우리가 이렇게 말로, 또 글로 헤맬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토라집님의 댓글
토라집
죽음의 향연 속에서 춤을 추는 문학.
멈추지 않는 빨간구두 위에서 끊임없이 죽고, 다시 나는.....
그 맴을 도는 소용돌이 속에 잠시 정신을 잃어도....
길을 잊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토라진이 어느새 집에 들어가버렸네요.
수정하려 해도 말을 듣지 않으니, 집에 가게 내버려 둬야겠어요.
집에 가서 편히 쉬렴.....ㅋㅋㅋㅋㅋㅋ
희음님의 댓글
희음
정신을 잃어도, 길을 잃어도, 그 모든 중한 것들을 다 잊어도 좋겠다는 토라진이
어느새 집에 들어가 버린 건가요. 그 토라진을 토라진이 또 불러대고 있는 거고요?
집에 가서 편히 쉬라는 말로 포장이나 해 대면서 말입니다.
결국에는 호명 아닙니까. 빈 벽이나 공중에다 대고 하는 간극의 목소리 말입니다.
토라진도, 토라진을 부르는 토라진도 대책 없긴 매한가지인 듯합니다.
토라진아, 토라진을 부르는 토라진아, 울지 말고 꿈도 꾸지 말고 모두가 편안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