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고원〕 제8장 세 편의 소설 - 후기
반디
/ 2017-02-07
/ 조회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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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에서는 세 편의 소설을 통해 세 가지 선을 살펴보았습니다. 경직된 선, 유연한 선, 탈주의 선이 그것인데요. 이 선들은 우위도 순서도 없이 상호 내재한다고 합니다. 또 이 선들은 복수적이라고 해요. 그러니 수많은 선들이 있는 셈인데, 저자들은 이 선들이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 선은 피츠제럴드의 말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들의 친구, 친척 중에 50퍼센트는 젤다를 미치게 한 것은 나의 음주벽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그녀의 광기가 나를 음주벽으로 몰아갔다고 단언할 것이다. 어느 쪽의 판단에도 큰 의미는 없다. 친구와 친척들의 이 두 집단은, 상대방이 없다면 우리 각각은 훨씬 더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일치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서로에 대해(지금처럼) 필사적으로 사랑한 적이 우리의 생애에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나의 입술에 묻은 알코올 맛을 사랑한다. 나는 그녀의 더없이 과장된 환각을 좋아한다. 마지막에는 중요한 거라곤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우리는 자멸할 것이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우리가 서로를 파멸하게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피츠제럴드의 말을 인용해서 저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커플이란 무엇이고, 당신의 분신이란 무엇이며, 당신의 잠행자란 무엇이고, 이것들의 혼합이란 대체 무엇인가? 내가 당신 눈 속에 있는 광기의 섬광을 사랑하는 것처럼 당신도 나의 입술에 남은 위스키의 맛을 사랑해달라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 할 때 복합되는 것은 어떠한 선들이며, 반대로 공존할 수 없는 것은 어떠한 선들인가?
커플, 분신, 잠행자는 위에서 말한 경직된 선, 유연한 선, 탈주의 선의 다른 이름인거지요. 생각해보면 정말 옳은 말이더라고요. 또 개인이든 집단이든 간에 우리들은 자오선, 측지선, 회귀선에 의해 횡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동일한 리듬을 갖지도 동일한 성질을 갖지 않고요. 저자들은 선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집에 있는 스텔라노바 지구본을 빙빙 돌려보았습니다. 동경 124°∼132°, 북위 33°~43°. 이게 우리나라의 좌표더라고요. 이 좌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동경 135도의 경선을 따라 표준시보다 9시간 빠르며 사계절이 뚜렷한 냉온대 기후가 나타나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현재 기온 2도, 실내온도 23도의 2월의 어느 하루를 토사광란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추스르며 건너가고 있는거겠지요.
지구 위에 위치하는 좌표에 따라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삶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건 자명한 일입니다. 저자들의 말대로 경직된 선, 유연한 선, 탈주선의 세 가지 선에 의해 우리 삶의 좌표가 정해진다면 현재 내 삶의 좌표를 정하는 세 가지 선을 눈을 부릅뜨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처음 발제를 정할 때 목차를 살펴보니 지질학, 기호학, 정신분석학, 정치학 등등 저를 불가촉척민처럼 여기는 분야가 줄비하더라고요. 그나마 만만한게 문학이라고 덥썩 물었더니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읽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보석같은 문장들이 박혀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