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 발제 0207(화)
오라클
/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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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의 철학적 변신, 위대한 건강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부. 3가지 변신 :: 정신의 3가지 변화
《니체와 철학》 1962년. 들뢰즈 :: 니체철학의 3가지 변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니체의 철학단계 가운데, 기성의 가치를 비판하는 사자 시대의 첫 작품
① 낙타의 시대 (1860년대 후반~1876) : 기성의 가치를 실어나르는 철학자 / 낙타의 정신-복종의 정신
- 생애 : 1844 탄생, 1869(24세) 대학교수, 1876(31세) 바그너와 결별
- 철학 :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대변 ······> 이들과 결별
기성의 가치를 실어나르는 철학자 ······> 기성의 가치에서 해방
- 작품 : <비극의 탄생>1871. <반시대적 고찰>1876.
② 사자의 시대 (1877~1881) : 기성의 가치를 비판하는 철학자 / 사자의 정신-자유의 정신
- 생애 : 질병과 치유의 반복, 병과 건강의 반복.
- 철학 : 위대한 건강에 의거해서, 병으로부터 건강을 보는 관점.
건강에서 병으로, 병에서 건강으로 관점을 이동시키는 기법을 구사.
이로부터 니체는 철학적 방법과 ‘가치의 전환’을 본다.
- 작품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 <즐거운 학문>1880. <서광>1881.
③ 어린아이의 시대 (1881~1888) :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철학자 / 어린아이의 정신-생성의 정신
- 생애 : 1889(45세) 토리노에서 정신발작, 1900(56세) 죽음
- 철학 : 새로운 개념, 새로운 가치, 새로운 철학의 창조 (권력의지, 영원회귀, 차라투스트라, 위버멘쉬)
- 작품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 *‘영원회귀’의 계시 1881.
<선악의 저편>1886. <도덕의 계보>1887.
<안티 그리스도>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찬가>1888.
■ 이 사람을 보라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두 속편들 ..............................................................................
*이 사람을 보라 : 1888.12월 출판. 니체가 쓴 니체작품의 해설서
1.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상주의’를 비판하는 ‘자유정신’을 위한 책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유정신을 위한 책. 볼테르를 기념하여 바침.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제목. “너희가 이상적인 것들을 보는 곳에서, 나는 인간적인 것만을 본다.” ‘자유정신’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다시 소유하는 자유롭게 된 정신이다. (*이 책은 이상주의를 비판하는 책인데, 니체는 이상주의의 본질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필요와 동경에 불과한 것임을 폭로한다.)
자유정신을 위한 책 > 이 책은 위기의 기념비인데, ‘자유정신’에 의한 위기극복의 책이다. 모든 문장이 승리를 표현하고 있고, 내 본성에 속하지 않는 ‘이상주의’에서 나를 해방시켰다.
볼테르에 바침 > 이 책은 1878년 볼테르 서거 100주년에 출간되었다. 볼테르는 정신적 귀인이었고, 진정한 진보인데 ‘나로의 진보’다. 이상이 안주하고 있는 모든 은신처를 다 알고 있는 무자비한 정신이 발견된다. 자유정신은 횃불을 들고서 이상의 지하세계를 구석구석 날카롭게 밝게 비춘다. 그것은 화약도 연기도, 전투태세도, 파토스도 사지의 탈골도 없는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오류가 차례차례 얼음 위에 놓인다. 이상은 반박되지 않고 얼어죽는다. 천재가 얼어죽고, 구석에서는 성인이 얼어죽고, 두꺼운 고드림 밑에는 영웅이 얼어죽고, 마지막에는 신앙이 얼어죽는다. 소위 말하는 ‘확신도 동정’도 얼어붙으며, 모든 곳에서 ‘물자체’가 얼어죽는다.
2. 바그너 예술의 변질, 바그너와의 결렬
바그너와 바그너주의자 > 이 책의 서두는 바이로이트 축제주간에 쓰여졌다. 거기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고 바그너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바그너가 독일어로 옮겨지고, 바그너주의자가 바그너 위에 군림해버렸다!
바그너예술의 변질 > 바그너예술은 세련된 예술가와 세계시민주의에만 말을 건넸는데, 이제 독일예술-독일거장-독일맥주라는 독일적 ‘덕들’로 치장한 바그너로 변했다. (*바그너예술의 변질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
바그너주의자 > 바그너를 헤겔과 혼동했던 브렌델, 바그너를 자기네들과 혼동했던 <바이로이터 블래터>의 이상주의자들. 바그너주의자들은 바그너에 대한 ‘아름다운 영혼’의 온갖 고백을 늘어놓았으며, 그 사회의 실패자들이자 반유대주의자들이다! 우리 후손을 위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 바이로트의 사람을 박제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정신Spiritus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 알코올Spiritus에 보관하고, 병에 ‘독일제국’의 기초 ‘정신’이라고 써서 말이다.
바그너와의 결렬 > 나는 바그너와 헤어지고 멜랑콜리와 독일인에 대한 경멸을 병증처럼 달고 다녔다. 이러한 심리적 상태에서 이 책이 쓰여졌다.
3. 총제적인 길 잃음과 실재성에 전념
총체적인 길 잃음 > 당시 내게 결정적이었던 일은 ‘바그너와의 결렬’이 아니라, ‘총체적인 길을 잃었다’는 점이었다. (*니체의 위기는 악화된 건강상태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바그너와 결별로 인한 정신적 고독이었다. p460) 나 자신을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엄습했고, 이때 나는 다시 내 정신으로 돌아오기에는 지금이 절호의 시기라고 생각했다. 내게서 정신의 영양섭취가 단절되어버렸으며, 쓸모있는 것은 하나도 더 배우지 않은 채로 10년이 흘러버렸다. 완전히 메말라 있고 완전해 굶주려 있는 나 자신을, 나는 연민을 가지고 본다.
실재성과 이상성 > 내 지식의 내부에 실재성이 결여되어 있는데 ‘이상성’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생리학과 의학과 자연과학 공부에 전념했다. 본능에 역행한 ‘직업’과 황폐감ㆍ굶주림을 마취제 같은 바그너예술로 마취시키고자 하는 욕구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게 되었다. 하나의 반자연(바그너예술)은 두 번째 반자연(자기 상실)을 강요한다. 쇠약해지고 있는 독일인들은 바그너를 하나의 아편으로 요청하며, 자기 자신을 잊고 한순간 자기 자신을 놔버린다.
4. 무가치한 무사 & 나로의 귀환
무가치한 무사와 병증 > 내 본능은 굴복과 동행, 나 자신에 대한 혼동에 대해 무자비한 결단을 내렸다. 어떤 종류든지 삶은 무가치한 무사(無私 *타성에 젖음 무사안일, 안정희구)보다 낫다. 무가치한 무사에 처음에는 무지 때문에 빠졌었고, 나중에는 ‘의무감’이라는 타성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 때 병증이 무가치한 무사에서 서서히 나를 분리시켜주었다. 병증은 나에게 모든 난폭하고 충돌적인 행보를 하지 않게 만들었고, 나의 모든 습관으로 되돌아갈 권리를 주었고, 망각을 명령했고, 조용히 누워있는 것-한가로움-기다림-인내의 필요를 선사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로의 귀환 > 나는 문헌학에 안녕을 고했는데, 책에서 구제되었으며, 몇 년간 더 이상 독서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나 자신에게 베푼 최고의 은혜였다. 독서하는 자아의 말을 끊임없이 들어야했던, 가장 밑바닥의 자아가 깨어나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삶에서 가장 아팠고 고통스러웠던 그 시절에 나는 가장 큰 행복을 가졌다. (*질병-건강 관점의 이동) 이것은 나로의 귀환이었고, 최상이 회복이다! 이것에 관해서는 《서광》, <방랑자와 그림자> 참조.
5.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파르지팔> 의 교차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자기도야의 기념비에 의해, 나는 ‘고등사기, 이상주의, 아름다운 감정과 그밖의 여성적인 것’에 의한 감염에 종지부를 찍었다. 나는 이 책을 바이로이트의 바그너에게 보냈는데, 동시에 바그너로부터 <파르지팔> 텍스트가 도착했다. 이 두 책의 교차는 두 개의 검이 맞부딪치는 것이다.
6. 도덕과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
내 과제 > 1876년 당시 나는 엄청난 확신을 가지고, 내 과제와 내 과제의 세계사적 면을 명백히 보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도 ‘나’라는 단어를 피해, 이번에는 쇼펜하우어나 바그너라는 이름이 아니라, 내 친구 파울레의 이름을 세계사적으로 빛나게 했다. 이에 관해서는 《도덕의 계보》서문 참조.
도덕과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 > 최초의 비도덕주의자인 저자-니체가 인간 행동에 대한 통렬한 분석에 의해 이른 자기의 핵심명제는 이것이다! “도덕적 인간은 생리적 인간보다 예지계에 더 근접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지계란 없기 때문이다.” 이 명제가 역사적인 인식의 가치전도에 의해 단단해지면, 미래의 언젠가는 인류의 ‘형이상학적 욕구’의 뿌리를 발본색원하는 도끼가 될 것이다. 이것이 인류에게 더 많은 축복일지, 더 많은 저주일지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이는 많은 결실을 맺으면서 동시에 공포스러운 명제이자, 모든 위대한 인식이 갖고 있는 이중시선(관점주의적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명제이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서문 .............................................................................................
1. 관점주의적 시선 / 선악의 저편
니체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비극의 탄생》부터 《미래철학의 서곡 : 선악의 저편》에 이르기까지. “그 책들은 모두 통상적인 가치평가와 관습들을 전복하기 위한 요청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것이 단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일 뿐이라는 탄식과 함께 내 책을 내려놓는다. 도덕에 대한 혐오감과 불신감을 가진 채, 언젠가 최악의 것들(인간적인 것들)을 변호하겠다고 격려하면서. 사람들은 내 책을 의혹의 학교-경멸의 학교-용기의 학교-대담함을 가르치는 학교라고 불렀다. 나는 악마의 적절한 변호자로서-신의 적이자 신을 소환하는 자로서 깊은 의혹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깊은 의혹에 담긴 결말과, 무제한적인 통찰의 다양성을 타고난 자에게 주어지는 형벌인 고독의 냉혹함과 불안은 나의 몫이다!
관점주의적 시선 > 나는 잠시 나를 잊기 위해, 숭배나 적의, 학문성이나 경박함 또는 우둔함 속에 숨으려고 노력했다. 또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지 못했을 때, 그것을 인위적으로 강탈하고 적당히 위조해 지어내야 했다. 그러나 나의 치유와 자기회복을 위해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고립된 시선으로 보지 않으려는 신념이다. 눈과 욕망에는 유사성과 동질성이 있으라는 매혹적인 의심, 우정과 신뢰 속에서의 휴식, 의혹과 의문이 없는 두 사람 사이의 맹목성, 전경-외관-가까이 있는 것, 색깔과 표피와 겉모양을 가진 모든 것을 향유하는 것이다.
자기기만-자기보존, 정직-허위 > 이는 정교한 위조화폐를 만들어내는 기교이다. 예를 들어 내가 도덕에 대해 충분히 간파하고 있던 그 때에도 고의적으로 쇼펜하우어의 맹목적인 도덕의지를 묵인했다. 마찬가지로 바그너의 치유할 수 없는 낭만주의에 대해서도 그것이 시작이지 끝이 아닌 것처럼 나 자신을 기만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기만 속에는 자기보존의 술수와 많은 이성과 고차원적인 비호가 들어있으며, 내의 정직이라는 사치를 위해 또 많은 허위가 필요했다.
비도덕적, 선악의 저편 > 나의 삶은 도덕에 의해 창안된 것이 아니다. 삶은 기만을 원한다. 삶은 기만을 통해 유지된다. 늙은 비도덕주의자인 나는 늘 해왔던 일을 되풀이하여 다시 시작하고 또하고 있다. 그리고 ‘선악의 저편’에서 비도덕적이고 탈도덕적으로 말하고 있다!
2. 자유정신의 창안
자유정신의 창안 > 그래서 나는 내게 필요했던 ‘자유정신’을 창안해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제목의 우울하고 용감한 책은 바로 자유정신에게 바친 것이다. 하지만 이 자유정신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했던 적도 없다. 나는 나쁜 상황들(질병, 고독, 타향, 무관심, 무위) 속에서도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친구가 없는 대신, 동반자로 자유정신을 필요로 했다.
자유정신을 위한 기여 > 언젠가 자유정신이 존재할 수 있고, 내일과 모레의 아들 중에서 명랑하고 용감한 친구가 우리 유럽에 나타날 것이다. 환영과 은둔자의 그림자 연극이 아니라, 육체를 가지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만약 내가 그들이 어떤 운명들 속에서 탄생하고 어떤 길로 오는지를 통찰하여 미리 묘사한다면, 그들이 오는 시간을 앞당기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3. 자유정신 :: 시험기 (병적인 고립상태와 황량함)
자유정신의 속박 > 우리의 ‘자유정신’이 완전해질 때까지 정신은, 위대한 해방 속에서 결정적인 사건을 겪었으며, 속박된 정신은 영원히 묶여있을 것처럼 보였다! 자유정신을 묶었던 것은, 가치를 부여해온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나약함, 자신들이 성장했던 땅, 자신들을 이끌어주었던 손길, 성전에 대한 감사 같은 최고의 순간이었다.
위대한 해방 :: 최초의 승리 > 위대한 해방은 속박된 것에 지진처럼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충동과 혼란이 영혼을 지배하고 그에게 명령하는 주인이 된다. “여기서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여기–집에’는 사랑해온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기가 사랑했던 것에 대한 공포와 의심, 의무로 불렸던 것에 대한 멸시, 방랑-타향-소외-냉각-환멸-냉담에 대한 욕망, 사랑을 향한 증오심, 지금까지 숭배했던 것을 거슬러오르는 신성모독,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수치심과 동시에 그 일을 해냈다는 기쁨, 승리를 알림으로써 느끼는 내면적인 기쁨의 전율이다. 그것은 의문스럽고 모호하지만, 최초의 승리이다.
위대한 해방의 역사 :: 아픔과 고통 > 위대한 해방의 역사에는 아픔과 고통이 따른다. 해방은 동시에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는 병이기도 하다. 스스로 정의하고 스스로 가치를 정립시키는 힘과 의지가 만드는 최초의 폭발, 자유로운 의지를 향한 의지. 해방된 자가 자신의 사물을 지배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할 때, 그의 시도와 행동에는 많은 질병이 나타난다! 해방된 자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으로 무섭게 배회하며, 그의 위태로운 긴장상태는 자신을 자극하는 것을 파괴한다. 그는 자신이 은폐하는 것, 부끄러움 때문에 간직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을 뒤집어버린다. 그는 사물들을 뒤집어버리면 사물들이 어떻게 보일 것인지 시험하는 것이다.
해방된 자의 의문부호 > 그는 황야에서처럼 불안하면서도 정처없는 행로의 중간에 있는 것이므로, 위험한 의문부호가 자리잡는다. “모든 가치를 뒤집을 수는 없는 것일까? 선은 악이 아닐까? 신은 악마의 발명품이 아닐까?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허위가 아닐까? 우리가 속았다면, 그 때문에 우리는 동시에 속이는 자가 아닐까? 우리는 속이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그들 인도하고 더욱 멀리 더욱 빗나가도록 현혹한다. 잔인한 정념의 어머니인 고독이 그를 위협하고 목을 조르고 심장을 짓누른다.
4. 자유정신 :: 질병기 (자유정신의 활성화)
질병기 : 인식수단 > 이러한 병적인 고립상태와 황량한 시험기에서 벗어나, 섬뜩한 확실성과 질병마저 포괄하는 건강성에 이르는 길은 아직도 멀다. 질병은 인식수단이다. 자기통제의 수양이며, 대립적 사유방식을 허용하는 성숙한 정신의 자유에까지 이르는 길은 멀다. 정신이 내면적인 광대함과 자유분방함에 이르게 될 때까지의 길은 멀다. 위대한 건강의 표시인 병을 완치-모조-재건하는 힘이 넘쳐흐르기까지의 길도 멀다. 넘쳐흐르는 힘은 자유정신으로 하여금, 시험에 삶을 걸고 모험에 몸을 내맡겨도 된다는 위험스런 특권을 부여한다.
회복기 :: 위장한 건강 > 그 사이에는 긴 회복기가 놓여있다. 그 시간은 매혹적이고 다채로운 변화가 가득하여, 건강이라는 옷으로 위장한 건강을 향한 의지에 지배된다. 거기에는 창백하고 섬세한 빛과 태양의 행복이 속해있다. ‘자유정신’은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 편안하며 따뜻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랑과 증오의 속박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긍정도 부정도 않으며 마음대로 가까이 멀어지며, 기꺼이 도주하고 피해다니며 날아다니고 사라지거나 높이 날아오르며 산다. 사람들은 자신 가운데서 엄청난 다양성을 본 적인 있는 사람처럼 변한다. 자신과 무관한 사물을 걱정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자신은 더이상 자유정신을 괴롭히지 않는 것과 관계한다.
5. 자유정신 :: 회복기 (삶을 향한 회복기)
자유정신의 자각 > 한 단계 더 회복되면, 자유정신은 다시 삶에 천천히-반항적으로-의심스러운 듯 가까이 다가간다. 자유정신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주위에 처음으로 눈을 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도대체 그는 어디에 있었던가? 친근하고 가까운 사물들이 그에게 얼마나 달라보이는가!” 그가 언제나 ‘집에’ 언제나 ‘제정신으로’ 머물지 않았던 것은 얼마나 잘한 일인가! 그는 자신을 잊고 있었으며, 이제야 그는 자신을 바라본다. 그는 거기서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자유정신 :: 염세주의에 대한 치료법 > 삶을 향하여 몸을 반쯤 돌린 회복기에 있는 자. 이러한 자유정신의 기질을 가지고 병에 걸려 한동안 앓고 나서, 그 후에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되는 것이 모든 염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법이다. 그 속에 있는 삶의 지혜는 소량의 약만으로 건강 자체를 처방한다.
6. 미덕의 주인 / 가치평가에서 관점주의
미덕의 주인 > 그 시기에 이르러 마침내, 위대한 해방의 수수께끼가 자유로워진 정신 앞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는 감히 의문을 제기하고 대답을 이미 듣고 있다. “왜 그렇게 멀리 물러서 있는가? 내가 숭배한 모든 것을 왜 포기했는가? 자신의 미덕을 향한 냉정함, 악의, 증오는 무엇 때문인가?” ······> “너는 너의 주인이며 동시에 자신의 미덕의 주인이 되어야만 했다. 과거에는 미덕이 너의 주인이었지만, 이제 미덕은 너의 도구여야 한다. 너의 목적에 필요할 때마다 미덕을 붙이거나 떼어버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
관점주의 / 불공평의 문제 > “너는 모든 가치평가에서 관점주의적인 것을 터득해야 했다. 대립된 가치들과 관계하는 우둔함, 찬성-반대와 함께 지불되는 지적 희생도 터득해야 했다. 모든 찬성-반대 속에 포함된 필연적인 불공평을 이해하고, 불공평은 삶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삶이 관점주의적인 것과 불공평에 의해 제약되는 것으로 터득해야 했다. 무엇보다 불공평이 가장 심한 곳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곳에서 삶은 보잘 것 없고 미천하게 전개되지만, 삶은 그 자체를 사물의 목적이자 규범으로 명명하고 스스로 생존하기 위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곳이다. 너는 위계의 문제를 눈으로 보아야 했고, 힘과 권리 관점주의적인 것의 범위가 어떻게 상승하는지 보아야 했다.” 자유정신은 ‘너는 어떤 해야 한다(의무)’에 복종해 왔는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비로소 무엇을 해도 좋은지를 알고 있다.
7. 자유정신 :: 위계질서의 문제
위계질서의 문제 >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유정신은 해방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우리의 사명은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할 때에도 우리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의 현재에 규칙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미래이다. 우리의 문제가 위계질서의 문제라면, 자유정신은 어떤 각오-우회로-시련-유혹-변장이 필요했는지, 우리 삶의 정오에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인간’이라 불리는 저 내면서계의 모험가이며 세계항해자로, ‘높은 것과 아래 위에 있는 것’을 측정하는 사람으로 – 여기저기로 들어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아무것도 소홀히 여기거나 내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맛보며, 모든 것을 우연에 의해 정화하면서 다양하고 모순되는 곤경과 행복을 경험해야 했었던가를 이해하게 된다. “여기 이곳에 엄청나게 긴 서열-위계질서가 있다.”
8. 이 책이 독일에서 냉대 받은 이유
이 책이 지금 말한 발전단계 중 어디에 속하는지! 이 책은 외국인을 매혹시켰지만, 독일에서는 냉대받았다. 사람들은 “이 책은 지나친 의무의 압박을 요구하며, 여유로운 한가함을 요구한다. 오늘날 우리 독일인들은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대답에 나의 철학은 침묵하라고 충고한다. 특정한 경우에서 침묵함으로써 철학자는 존재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