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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알레프 마지막 발제 ¡adios 보르헤스! +2
장재원 / 2017-01-24 / 조회 2,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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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la espera, 문턱의 남자 el hombre en el umbral

 

소설의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에게 애정을 품고 동경할 때 우리는 이야기속 그의 삶과 자질구레한 성격이나 습관, 태생이나 배경 같은 것에 집중하게 된다. 사건은 우리의 주인공을 시험에 들게하는 장치에 불과하고 시대와 장소는 그가 반드시 그 공간에 있어야 하는 근거가 되며 이를 통해 중심인물은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보르헤스의 이야기에서는 이 모든 것이 전복된다. 등장인물은 사건의 진행을 위한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며, 시간이나 배경과 함께 자의적 요소로 전락하고 만다.(보르헤스 소설에서 서열 1위가 무엇인지 아느냐? 사건이 1위, 설정은 2위이며 주인공은 3위에 불과하다)

마치 90년대 중반에 등장했던 즉석 동화책처럼 이름이나 명칭은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소설의 시작부터 지시대명사가 난무하고, 인물의 이름은 급조되어 만들어지며,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구분은 다음과 같이 너무도 희박하다.

 

- 차는 그를 노르웨스떼(북서)지역의 그 길 4004번지에 내려주었다.(기다림)

- 내가 할 이야기가 일어나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문턱의 남자)

- 오늘밤 내 이야기에서 그는 데이비드 알렉산더 글렌케른이다.(문턱의 남자)

- 내 발 언저리에는 아주 늙은 남자가 문턱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사람이 어때 보였는지 이야기할텐데 왜냐하면 내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문턱의 남자)

 

보르헤스 문학의 묘미는 이야기의 틀에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레고 블럭과 같이 자유롭게 붙이고 뗄 수 있는데, 누구나 보르헤스 놀이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보르헤스가 구성해놓은 각각의 블럭 구조물은 나치독일의 이야기도 되었다가 로마제국의 이야기도 되었다가 다른 행성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데 급기야는 모든 시대 모든 곳의 이야기가 된다. 그런 면에서 구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보르헤스의 문학은 환상문학이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 보르헤스의 문학은 보편문학이 된다.

 

누군가에 쫓기듯이 정체를 숨기고 사실은 이미 죽은채로 혹은 아직은 살아서 어떤 순간을 기다리는 이탈리아 남자의 이야기나 영국여왕의 명을 받고 인도 어느 곳으로 파견되었다가 실종된 스코틀랜드 사람의 이야기, 또는 아주 오래전에 주민들에게 납치되어 사형판결을 받은 어느 관리의 이야기에 대해서 별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댓글목록

장재원님의 댓글

장재원

얼른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싶어서 미리 올립니다. 이제 빼고싶거나 더하고싶은것이 생각나도 손대지 않겠어요.

보르헤스님의 댓글

보르헤스

"이제 빼고 싶거나 더하고 싶은것이 생각나도 손대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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