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안전 영토 인구> 후기(1/20) +1
선우
/ 2017-01-24
/ 조회 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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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국가란 무엇인가” 라고 묻고, 또 누구는 “국가는 어떤 것인가?”라고 묻는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진리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나 니체는 “어떤 진리인가?” 혹은 “누구의 진리인가?” 라고 묻는다. 질문 방식에 이미 답이 있는 셈이다. 국가, 진리가 무엇이냐 하는 물음은 그 ‘본질’을 염두에 두는 사고방식에서 나온다. 따라서 조작적 정의를 선호한다. 그러나 국가, 진리가 어떤 것이냐, 누구의 것이냐 하는 질문은 국가와 진리가 형성되는 역사, 사회, 정치적 현실을 염두는 두는 사유방식이다. 푸코의 질문에는 외재성과 초월성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
푸코는 사람들이 국가의 탄생, 역사, 발전, 국가의 권력과 그 남용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국가에 대한 사랑이나 혐오 둘 다 어떤 매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말이다. 푸코는 국가 문제를 과대평가하는 두 가지 형태도 지적하고 있다. 우선, 감성적이고 비극적인 형태로 “우리 앞에 냉혹한 괴물이 있다”는 식의 서정적 표현이 있다. 둘째로 국가를 다만 몇 가지 기능, 가령 생산력의 발전, 생산 관계의 재생산 등으로 환원하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국가의 이런 역할을 다른 역할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이런 관점은 국가를 공격해야 할 표적으로 만들거나 장악해야 할 특권화된 위치로 만듦으로써 국가 자체를 절대적으로 본질적인 존재인 양 만들어버린다. 플라톤으로의 회귀. 그러나 국가란 이런 단일성, 개체성, 엄밀한 기능성을 지닌 적이 없다. 국가란 신화화된 추상에 불과한 것이다. 푸코에게 있어 국가는 무엇보다 현실적인 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인식가능성의 원칙이며, 통치술의 합리화 과정 끝에 오는 목적이다. 국가라는 ‘본질’이 통치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역사 속에서 구성된 것으로 본질이 없는 환영일 뿐이다.
신이 있다, 없다는 더 이상 토론할 거리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이 없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오히려 더 충만한 ‘믿음’이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는 실체인가 환영인가. 환영임을 자각했다 해도 그 그림자는 좀처럼 쉽게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지난 7개월 푸코를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다분히 라캉과 들뢰즈 덕분이다. 분명 우리나라 말인데 다른 나라 언어를 읽고 있는 것 같게 만든 라캉과, 그 박학다식함으로 훅훅 내뱉는 문장들 속에서 길을 잃게 되는 들뢰즈에 비하면 푸코의 강의는 너무 자상하다. 혹시나 따라오지 못할까봐, “즉 다시 말해서” “요약하자면”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면서 읽고 있는 나를 어찌나 배려하던지...ㅎㅎ
푸코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그의 질문방식, 사유방식이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언제부터, 왜 권력관계 아래에서 또 권력관계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전쟁이라고 지각하거나 상상하기 시작했는가?” “누가 처음에 정치란 다른 수단에 의해 계속되는 전쟁이라고 말한 것인가?” 멋지다. 또한 그가 유추하는 이론적 귀결은 다만 이론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과의 만남 속에서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30년 전쟁 후 베스트팔렌 조약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나오는 국가들 간의 경쟁관계라는 이론. 현실에서 나오는 이론. 현실과 관계 맺는 이론.
금요일 저녁 7시. 내가 세미나를 선택하기에는 어려운 시간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궁금함’ 때문이다. 푸코가 다음 번 강의에서 뭐라고 말할지 정말 궁금하다. 더불어 푸코의 질문과 사유 속에서 내가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무엇보다 섬세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섬세해질거라는 망상 덕분인 것 같다. 이 망상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볼 일이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푸코를 읽으면서 저 역시 제가 변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봅니다.
변하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저에겐 어떤 가능성으로
여겨지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변화는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난 몇달을 함께해 온 사람들을 통해서 봅니다.
아주 현실적으로요.
내 안의 나약하면서도 집요한 무엇들을 자각하면서.
그런데 우리는 국가를 사유하면서
몹시 자기자신에 집중하고 있군요.
이런, 좋은 현상.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