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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문학의 고고학> 1/18 후기 +5
삼월 / 2017-01-24 / 조회 3,309 

본문

 

광기와 문학이 만날 때

 

푸코의 문학 강의 《문학의 고고학》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첫 부분의 주제가 ‘광기의 언어’이다. ‘광기의 언어’는 ‘말의 사용’이라는 제명 아래 진행된 5회의 라디오 방송 중 문학과 관련된 두 방송을 묶은 것이다. 두 방송의 제목은 각각 ‘광인들의 침묵’과 ‘광기 안의 언어’이다. 서로 대칭을 이루는 두 강의는 광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문학작품을 소개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푸코가 말하는 광기는 의학적인 증상이 아니다. 푸코의 논의에서 광기는 이성에 의해 규정되고 배제되는 무엇이다.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회가 광기라는 명분으로 일부의 사람들을 구조적으로 배제한다는 현상이 여기에 전제되어 있다. 푸코는 광기에 대한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서구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특히 푸코가 주목하는 시기는 파리에서 실업자, 부랑자, 자유사상가, 동성애자, 광인 등을 대규모로 감금한 1657년부터이다. 푸코는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말까지의 이 시기를 고전주의 시기라 부르며, 근대의 서구가 확립된 시기로 본다.

 

문학작품을 통해 보는 광기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부터 사드까지 이어진다. 《돈키호테》는 17세기 초반의 작품으로, 그 이전 시기의 작품과는 달리 여기서부터 광기에 대한 사회의 거리감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광기를 드러내는 돈키호테는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 돈키호테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에 확실성을 부여하려는 순간, 돈키호테는 죽게 된다. 광기는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이 된다. 17세기 중반 대감금의 시기를 거치고 난 18세기 후반에 사드는 정신병원에서조차 거부당한다. 사드의 차분하고 논리적인 광기 앞에서 이성은 당혹스러워한다. 광기를 배제해온 문화는 광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광기를 영원히 침묵하게 하려는 작업도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광기는 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사회에 넓게 퍼져나간다. 또한 배제된 광기는 우리 정신과 언어에 커다란 빈 공간을 만들어냈다.

 

극작가 앙토냉 아르토의 글은 광기와 문학의 경계에 선 언어를 보여준다. 이성에 의해 광기가 규정된다면, 광인은 스스로를 규정할 수 없고 자신의 광기에 대해 말할 수도 없다. 광인들은 사회의 언어에서 격리되어 있으며 말할 자격을 박탈당한다. 섬광처럼 점멸하는 빛 속에 있는 광인들의 정신은 언어의 모든 사용과 함께 사유마저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광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표현하려고 한다. 자신의 글을 출판하고 싶다는 아르토의 편지를 받은 편집자는, 아르토가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책을 출판하려고 한다. 우리가 광인들의 언어를 들을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런 우회로가 필요하다.

 

이성을 통해 광기를 배제해온 서구의 사회는 빈 공간 안에서 위태로운 광기를 발견하고 당혹스러워한다. 주체를 사유하지 못하게 되고, 언어의 자의성 앞에서 나약해진 인간은 그 텅 비어있음에서 어떤 진실을 발견한다. 기표와 기의의 연결에 대해 주목하기 이전에 인간은 언어의 신체가 가진 관능성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 언어는 물질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거기서 신비로운 창조의 힘을 느낀다.

 

광기와 문학이 가장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광기와 문학은 땅을 가로질러 뿌리를 뻗고 만난다. 이 작업들은 우리에게 깊고 오묘한 진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이것은 진리의 체험이 아니라 하나의 놀이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는 영원한 놀이. 히스테리 환자의 마비, 강박증 환자의 의식, 조현병 환자가 갇힌 말의 미로와 다르지 않은 놀이. 우리는 이 놀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텅 비어있는 자신과 마주하고, 점멸하는 빛 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가야 할 때조차도.

 

댓글목록

에스텔님의 댓글

에스텔

저 돈키호테는 미쳐서 살고 정신이 들어 죽었다지요.
그러나 나는 미친 도깨비들과 세상을 부유하다 정신 못 차리고 죽으렵니다. 훗~~

삼월님 후기도 멋짐 폭발입니다요.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미친 도깨비라 함은
'모든 날이 좋았다'라고 하며,
불멸을 선택한 그 분 말인가요? ㅎㅎ
세상을 부유하기에는 우린 조금 나약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우리는 언제든 미쳐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까요.

에스텔님의 댓글

에스텔

아니, 돈키호테 묘비명에 있는
"그는 온 세상의 허수아비이며 무서운 도깨비였다"
여기 쓰인 무서운 도깨비

자연님의 댓글

자연

"말을 하는 모든 인간은 미칠 수 있는 절대적 자유가 있다.
반대로 이미 미쳐 버린 모든 인간은
인간의 언어에 대해 절대적 이방인처럼 보이지만, 당연히 언어라는 닫힌 우주의 죄수다."
이 문장 멋지지요..... 푸코가 격하게 믿고, 저희들 모두가 공감한 문장입니다.
 
푸코는  광기가 말이 없는 경우조차도 언어를 관통해 지나간다고  했는데,
아르토가 자신의 텍스트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도 이런 것이라고 하지요.
"그렇습니다. 여기에 언어가 봉사해야 하는 유일한 사용법이 있습니다.
사유를 제거하는, 광기의, 단절의 수단으로서의, 비이성의 미로가 그것입니다."

광인들의 침묵, 광기 안의 언어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문학의 고고학]입니다.

희음님의 댓글

희음

마지막 단락이 너무 멋집니다, 삼월 님!
'이것은 진리의 체험이 아니라 하나의 놀이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는 영원한 놀이.' '우리는 이 놀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텅 비어있는 자신과 마주하고, 점멸하는 빛 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가야 할 때조차도.'
텅 비어있는 자신과 마주하고, 점멸하는 빛 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가야 할 때도차도, 우리는 이런 존재를 매 순간마다 마주치므로, 바로 그런 존재가 우리이므로, 우리는 영원히 체험도 아니고 책임도 아닌, 놀이 속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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