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_발제
오라클
/ 201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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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
*《만리장성과 책들》 중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
존 윌킨스와 세계 공용어에 대한 호기심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14쇄에서 존 윌킨스 항목을 삭제해 버렸다. 월킨스의 전기는 단순했지만(1614년에 태어나 1672년에 사망. 찰스 루이스 왕자의 사제승. 런던 왕실협회의 초대 사무국장), 그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신학, 암호문, 음악, 투명 벌집을 만드는 일, 비가시 행성의 궤적도, 달나라 여행, 세계 공용어의 가능성과 원칙......) 특히 세계 공용어와 관련 책 1668 발간. 600p 《실제 문자와 철학적 언어에 대한 소고》
윌킨스와 데카르트의 유사언어 > 이 세상 모든 언어는 하나같이 표현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17세기 중반에 윌킨스가 고안해 낸 세계어는 어휘 하나하나가 나름의 뜻을 갖는다. 1629년 데카르트는 10진법을 사용하면 하루만에 무한한 사물의 명칭을 익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언어-아라비아 숫자로 쓰기까지 다 통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인류의 사고 전체를 조직하고 담아낼 수 있는 보편ㆍ유사 언어의 고안을 제안했다. 1664년 윌킨스는 이것을 실행에 옮겨보기로 마음먹었다.
윌킨스와 르텔리의 유사언어 > ① 윌킨스는 세계를 40개의 종-차-류로 나누고, 각각의 종마다 2자로 이루어진 단음절 문자를, 각각의 차에는 자음 1개를, 각각의 류에는 모음 1개를 부여했다. 이러한 분류와 표기방식은 르텔리의 유사언어도 유사한다.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 속 어휘들은 조잡한 임의적 상징이 아니라, 한 글자 한글자가 다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② 모스너는 “어린아이들의 경우, 이 언어가 인위적으로 창제된 것이라는 걸 알지 못한 상태에서 다 깨우칠 수 있을 것이며, 학교에 가게 되면 이 언어야말로 우주의 열쇠이며 비밀의 백과사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윌킨스와 쿤박사의 분류방식 > ① 윌킨스의 분류방식은 황당하고 모호하고 중복과 결핍을 보이고 있다. 8번째 돌의 범주(일반석, 보석, 투명한 돌, 불용성 돌로 분류), 9번째 금속의 범주(불완전한 금속, 인공 금속, 재귀성의 금속, 천연금속으로 분류) ,16번째 물고기의 범주(타원형의 태생 물고기가 포함) ② 프란츠 쿤박사의 중국 백과사전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에 실려있는 모호하고 중복적인 결함투성이의 분류가 있다. 여기에는 동물을 이렇게 분류한다. 황제에 예속된 동물들, 박제된 동물들, 훈련된 동물들, 돼지들, 인어들, 전설의 동물들, 떠돌이 개들, 이 분류 항목에 포함된 동물들, 미친 듯이 날뛰는 동물들, 헤아릴 수 없는 동물들, 낙타털로 만든 섬세한 붓으로 그려진 동물들, 그 밖의 동물들. 방금 항아리를 깨뜨린 동물들, 멀리서 보면 파리로 보이는 동물들. 브뤼셀 도서연구소 역시 혼돈스러운 분류를 하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을 분류하는 행위 > 지금까지 나는 윌킨스와 중국의 백과사전의 저자, 브뤼셀의 도서연구소 등의 임의전횡에 대해 언급했다. 하긴 세상을 분류하는 행위 치고 임의전횡이 아닌 게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세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떤 유아적 신이 그리다가 자신의 형편없는 그림솜씨가 창피해 한쪽으로 내동댕이쳐 버린 조악한 스케치에 불과하며, 다른 상위 신들의 비웃음의 대상에 불과한 저급한 신의 작품이며, 노쇠해 은퇴하여 죽음을 목전에 둔 신성의 혼돈스러운 산물이다.” _데이비드 흄. 단일 유기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우주’라는 야심찬 이름을 붙여도 될 만한 세상이란 없는 게 아닐까? 설사 그런 것이 존재한다 해도 그 존재의 목적을 짐작할 수 없다. 신이 만든 비밀사전(*세계) 속 어휘들과 그 뜻, 어원과 동의어도 짐작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신의 체계와 인간의 체계 > 그러나 이처럼 세상이라는 신성한 체계를 통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임의적이나마 인간의 체계를 확립하는 일을 단념하지 않는다.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 역시 이런 인간의 체계만큼이나 가상한 시도이다. 윌킨스 언어 속의 종과 류는 상호모순적이고 경계도 모호하지만, 어휘를 이루는 철자 하나하나가 하부개념과 범주를 가리킨다는 전략 자체는 무척 창의적이다. 예를 들어 salmon(연어)이라는 어휘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 데 비해, 윌킨스의 언어 zana(연어)는 40개의 범주와 종의 구분에 정통한 사람에게는 육질이 붉고 비늘 덮인, 민물고기를 의미한다. 각각의 명칭 속에는 그 존재의 운명과 과거와 미래가 포함된 그런 언어를 고안해 낸다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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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가 읽은 허구의 중국 백과사전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남긴 단편 가운데,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El idioma analitico de John Wilkins)』라는 짧은 글이 있다. 영국의 자연철학자이자 왕립협회(Royal Society)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존 윌킨스(1614-72) 주교가 고안한 보편언어(universal language)를 설명하는 글이다. 이 속에서 보르헤스는, 존 윌킨스가 우주를 40개의 범주로 파악하여 보편언어에 담으려 한 시도가 얼마나 작위적인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은혜로운 지식의 하늘창고(Emporio celestial de conocimientos benevolos)』라는 중국의 백과사전도 이와 비슷하게 세계를 작위적으로 범주화한 바 있다고 적는다.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과 『헤테로토피아』에서 언급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단편 속에 등장하는 『은혜로운 지식의 하늘창고』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책이다. 하지만, 보르헤스가 중국 백과사전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유서(類書)라는 장르의 문헌을 가리켰을 터이다. 유서란 지식을 유형별로 분류해서 수록하는 방식의 책을 가리킨다.
존 윌킨스의 초상
▶푸코 《말과 사물》에서 언급된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
"이 책의 탄생장소는 보르헤스의 텍스트이다. ...... 보르헤스의 텍스트에 인용된 《어떤 중국 백과사전》에는 "동물이 a) 황제에 속하는 것, b) 향기가 있는 것, c) 훈련된 것, d) 돼지, e) 인어, f) 터무니없는 것, g) 방목견(犬), h) 이 분류에 포함되는 것, i) 마친 사람처럼 날뛰는 것, j) 헤아릴 수 없는 것, k) 낙타털의 섬세하디 섬세한 화필로 그려진 것, l) 기타, m) 장식 항아리를 금방 깬 것, n) 멀리서는 파리처럼 보이는 것"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다."
푸코는 《말과 사물》의 서문에서, 보르헤스의 텍스트를 '존재물의 정돈된 평면을 흩어뜨리고, 동일자와 타자의 원리에 불안정성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 우리 시대 사유의 친숙성을 뒤흔들어놓은 웃음'이라고 평가한다. 푸코는 이 경이로운 분류를 통해 우리의 사유가 갖는 한계를 인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