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세미나 > 세미나자료
  • 세미나자료
  • 세미나발제문, 세미나후기를 공유하는 게시판입니다.
세미나자료

[보르헤스] 알렙_마지막 후기 :: 기다림, 문턱의 남자, 알렙 +2
오라클 / 2017-02-02 / 조회 4,345 

본문

2017-0124 :: [보르헤스] 알렙_마지막 후기:: 기다림, 문턱의 남자, 알렙

 

보르헤스 알렙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기다림> :: 현실과 꿈(환상)에 관한 에피소드......................................................

 

현실과 허구(꿈, 환상 같은)의 구분불가능성은 보르헤스의 고유한 주제이다. <기다림>은 허구를 통해 현실을 무화(無化)시키는, 혹은 꿈에 의해 현실이 생성되는 마술같은 단편이다. 그는 은둔생활로 숨어들어, 자신의 적을 기다린다. 그는 영상 혹은 꿈같은 허구가 현실로 변하게 되리라 생각하며, 현실의 소재(숙소의 공간, 그의 적, 영화관에서 만난 낯선 남자)를 이용하여, 꿈 속에서 끊임없이 적을 죽인다.

 

“그는 (지금은 마치 꿈 속에서 보는 것들처럼 임의적이고, 우연적이고 제멋대로인)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불변하고 필수 불가결하고 친근한 무엇으로 변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 그는 본질은 같으나 상황은 다양한 어떤 꿈을 꾸게 되었다. ······ 그러나 항상 그것은 꿈이었고, 또다른 꿈에서 공격은 되풀이되었고, 또 다른 꿈에서 그는 다시 그들을 죽여야 했다”

 

공포의 꿈은 항상 선명했으나, 정작 어느 날 그의 적이 들이닥쳤을 때 어슴푸레하고 단순화되어 있다. 적들과 대면한 죽음의 순간에 그는 꿈 속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그는 현실의 모든 것을 꿈으로 만들어버리고, 그의 적들과 자신까지도 마술 속으로 데려간다. 

 

“마침내 한레한드로 비야리와 낯선 남자 하나가 그에게 들이닥친 것이었다. 그는 기다리라는 시늉을 했고, 다시 잠을 청하려고나 하는 것처럼 벽 쪽으로 몸을 돌려세웠다. ······ 이미 그들은 수없이 바로 그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간에 있었기 때문에, 그 암살자들이 꿈이 돼버리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일까? 총탄이 그를 지워버렸을 때 그는 그러한 마술 속에 있었다.” 

 

<문턱의 남자> :: 시간과 공간에 관한 다른 감각......................................................

 

보르헤스의 시간과 공간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의 시간은 직선의 계열이 아니며, 공간은 동일한 공유지대가 아니다. <문턱의 남자>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다른 감각에 관한 것이다. ‘문턱’은 이야기가 넘나드는 경계이며, 상황의 안과 밖을 가로지르는 장소이며, 결국은 현실과 허구를 하나로 연결하는 '감각의 문턱'이다. 

 

내가 글렌캐른의 행방을 찾아 어떤 도시를 찾았을 때,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집단적 음모를 꾸미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집단들은 사실 나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아무것도 속이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나는 거의 희망을 잃은 채 한 사람을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도록 요술을 부린 어슴푸레한 도시를 헤매며 다니고 있었지. 나는 거의 즉각적으로 글렌캐른의 행방을 숨기기 위해 끝없는 음모의 존재를 느끼게 되었지. 이 도시에는 그 비밀을 모르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비밀을 지키겠다고 맹세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던 거지. 캐물음을 더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더욱 모르는 척 행세하는 거였어. 그들은 글렌캐른이 누구인지도 모를뿐더러, 그를 결코 본 적도 없고, 결코 그에 대해 발하는 것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거야. 반대로 또다른 사람들은 15분 전에 풀라노 데 탈과 얘기를 나누던 그를 알아보았고, 그 두 사람이 들어간 집에 나를 데려가기까지 하는 거였어. 그러나 그 집에서 그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조금 전에 떠났다고 하는 거였어. 나는 이 철면피 같은 거짓말쟁이들 중에 하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지. 증인들은 내가 방면되도록 해주었고, 그리고 다른 거짓말들을 지어내는 거였어.”

 

그들 속에서, 그들의 말 가운데서 나는 길을 잃고 미로에 빠진다. 무엇을 찾게 해주는 길이 아니라, 무엇을 잃어버리게 하는 길-미로이다. 하지만 이 미로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연결되는 문턱이었다. 내가 글렌캐른을 찾고자 하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을 때, 문턱의 남자를 만난다. 사실 문턱의 남자는 문턱이라는 사물로 존재하는 것일 뿐, 사람일 필요조차 없었으리라!

 

“내 발치의 문 문턱에는 아주 나이든 늙은이 한 사람이 물건처럼 꼼짝 않은 채 쭈그리고 앉아있었지. 그의 행색에 대해 들려주겠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부분이니까 말이야. 마치 물이 돌을 그렇게 하듯, 또는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어떤 문장에 대해 그러하듯, 오랜 세월이 그를 쪼그라뜨리고, 닳아빠지도록 만들어놓았더군. ······ 나는 그 늙은이에게 탐문을 한다는 게 알토당토 않는 일이라는 느낌이 들었지. 왜냐하면 그에게 현재란 단지 무정한 소문에 불과한 것일 테니까 말이야.”

 

진리는 절대적이 아니며, 정당성은 자신의 책 안에 존재한다. 또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시간-어떤 공간이 아니라, 특정한 사건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순간 나는 마침내 글렌캐른의 행방을 알게 된다. 이것은 문턱의 남자와 그 도시의 사람들이 혹은 보르헤스가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책 안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바로 이 도시에서 그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지요. 마치 다른 모든 집들과 비슷한 마치 바로 이 집 같은 그런 한 집에서 말입니다. 하나의 집은 다른 어떤 집과 다를 수가 없지요. 중요한 것은 그 집이 지옥 위에 지어졌는지, 아니면 천국 위에 지어졌는지를 판별하는 게 중요한 것이지요.”

 

<알렙> :: ‘지금 여기’는 어떻게 영원 혹은 무한과 같아지는가?......................................................

 

모든 것이 함축된 ‘단 하나의 무엇’은 보르헤스 철학이 펼쳐지는 ‘일관성의 평면’이다. <알렙>은 그 평면을 가리키는 하나의 상징에 관한 것이다. 알렙은 히브리어의 첫 번째 알파벳이며, 수학적으로 모든 실수를 자신 안에 포함하는 수다. 보르헤스는 알렙의 이러한 특이성에 착안하여, 세계의 모든 것이 그것에 수렴되는 상징성을 부여한다. 

 

알렙의 직경은 2또는 3센티미터에 불구한 구체이지만, 전혀 크기의 축소 없이 우주의 공간이 그 안에 들어있다. 하나의 사물(거울에 비친 달)은 무한히 많은 사물들이었다. 우주의 모든 지점들로부터 그것을 볼 수 있었다.  ······ 서로 겹치거나 투명해져 버리는 법 없이 모든 것들이 같은 지점 속에 위치해 있다. ······​ 알렙이란 모든 지점들을 포괄하고 있는 어떤 공간 지점들 중의 하나이며, ······ 전혀 흐트러짐 없이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있는 곳이다.

우주 전체를 포함하는 하나의 구체-알렙은 우주 전체로 펼쳐져 있는 상호적인 관계의 망-연기적인 관계의 그물 전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알렙은 신비한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우주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어떤 순간을 의미한다. 이 우주의 비밀들이란 숨겨진 무엇이 아니라, 우주의 존재방식이며 자연의 생성방식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언어들에서조차 우주 전체를 암시하지 않는 발화는 단 하나도 없다. ‘호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낳은 호랑이, 그가 삼켜버린 사슴과 거북이들이, 사슴이 뜯어먹은 목초, 목초의 어머니인 대지, 대지를 낳은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알렙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우리의 시선이 포착하는 모든 사물은 알렙이 된다. 보르헤스의 단편에 등장하는 신의 글-운드르, 바벨의 도서관, 자이르는 알렙의 다른 이름들이다.​ 그리고 이름들은 무한히 증식한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마술적인 하나의 문장<신의 글>,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단 한 줄의 시<거울과 가면>, 우주의 모든 책이기도 한 한권의 책<모래의 책> <바벨이 도서관>, 모든 별이기도 한 하나의 별, 모든 사람이기도 한 한명의 사람<알모따심으로의 접근>······ ​. ​마침내 우주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지금'은 영원과 맞닿아있고 '여기'는 무한하게 펼쳐진다. 

 

“나는 호두껍질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 있으면서도, 나 자신을 무한하기 그지없는 어떤 공간의 주인으로 여길 수 있네” _<햄릿> 2막 2장 / “영원이란 ‘현재의 시간’에 조용히 서 있는 것, 지금 여기 있는 것은 단지 ‘공간의 무한’한 광활함 정도로 이해할 뿐이리라.” _<레비아탄> 4장 46절

 

 

댓글목록

벌어야했어님의 댓글

벌어야했어

이 후기에 달기 위해 여러 해에 걸쳐 장문의 댓글 하나를 써 왔습니다. 사실 이 후기만이 아니라 어느 글에든 달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반응들을 포괄하는 어떤 반응 하나를 쓰고 있었지요. 존 윌킨스가 고안한 세계어로 지금까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총 20170124매를 썼고, 여러 단락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서술해 왔는데, 여기에 무엇을 담으려 하는지는 이미 다 씌어진 '글의 서문', '시작하기에 앞서', 혹은 '시작하는 글' 단락만 살짝 읽어보아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이 댓글을 올릴 수 없을 것 같네요. 미처 댓글을 다 쓰지도 못했는데 일이 너무 바빠 더 이상 글 쓸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거든요. 미완의 댓글이라도 올려볼까 싶지만 소통에서 <전체가 아닌 부분>이 야기하는 왜곡을 잘 알기에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혹시 나중에 언젠가 글을 다 쓰게 되면 그때는 꼭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댓글의 댓글

'어느 글에든 달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반응들을 포괄하는 어떤 반응 하나'
이런 류의 '말하기'는 보르헤스적이지요. ㅎㅎ
아마도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혹은 전혀 낯선 공간에서도 이런 말하기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무슨 암호처럼 서로를 알아보고 미소짓게 될테지요.

<전체가 아닌 부분>을 <전체를 포함하는 부분>으로 고쳐 읽습니다.
사실 어떤 부분이 전체를 함축하지 않는 경우란, 자연-신체 안에서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감각을 우주 전체로 열어놓는다면 말입니다. ^.^

카프카를 읽다가 커피메이커의 유리를 깨뜨려서 낭패스러운 와중에,
이응의 댓글이 한밤의 감각을 깨우는 차가운 쨍그랑 소리와 겹쳐집니다. ㅋㅋ
보르헤스를 함께 읽었던 모든 사람들 -  가이아, 무긍, ​백조, 오라클, 이응, ​청안, 하파타, 토라진​​,
그리고 장재원님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_^

세미나자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