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오제본기> ~ <은본기> 까지. +2
기픈옹달
/ 2017-01-21
/ 조회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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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2016년 서울 사대부고에서 강의한 자료를 붙입니다. 간단히 일부 내용을 손보았습니다. 1학기에는 <본기> 전부를 2학기에는 <열전> 선집을 읽었습니다.
* 첫 시간이라 전체적 내용을 개괄적으로 나누었습니다. 참고하시어요.
1. 《사기》를 읽는다는 것.
왜 하필 《사기》일까? 그 많고 많은 고전 가운데,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책 가운데 왜 하필 사기일까? 사실 가장 적절한 대답은 ‘우연’과 ‘인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이 책이 선택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사건을 위해 예비된 것일지도 모르지. 따라서 그 이유를 따져 물어보았자 별 대답을 찾기 힘들다. 더 좋은 방법은, 그 장점을 따져보는 것이다. 《사기》를 읽으면 무엇이 좋을까?
무엇보다 ‘중국’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웃한 나라, 이제는 세계 최강의 나라로 탈바꿈한 대국. 게다가 매 해가 다르게 늘어나는 중국 사람들, 그 영향력…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중국’을 제대로 모른다. 그것은 서구적인 시각에 붙들려 ‘중국’이라는 오래된 나라를 해석할 적절한 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을 이해하고 중국과 더불어, 혹은 중국의 그늘 아래 살아갈 것이다. 따라서 중국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적절한 선택이라고 하겠다. 《사기》는 중국을 이해하는데 손꼽히는 책이다.
그러나 이 길은 결코 가볍고 빠른 길은 아니다. 수천년 전 글을 왜 우리가 읽어야 하나? 이토록 딱딱하고 재미없는 글을?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끌어와야 할 것같다. ‘인문학’의 본래 모습이란 이렇다. 딱딱하고 재미없고 지루한. 이는 인문학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그러나 모두가 그 토대 위에 서 있기에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문학은 이 근본 토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활동이다. 따라서 《사기》를 통해 발견해야 할 것은 오늘날 눈에 보이는 중국이 아니라, 그 아래에 놓인 중국의 기틀일 것이다. 그렇기에 거꾸로 우리는 그곳에서 역사, 인간, 삶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다행이다. 책이 결코 쉽지 않아서. 아마 이 낯선 책을 읽고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이다. 모르는 단어도 많고, 게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모르겠고… 그러나 이 낯설음, 쉽지 않은 책이라는 점이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짚어두자. 왜냐하면 가만히 있어서는 도무지 이 책에서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을 것이므로. 사냥꾼의 눈을 가지지 않으면, 광부의 땀이 없이는, 황소같은 우직함이 없이는 이 책은 아무것도 선물해주지 못하리라. 무엇이라도 잡아 채겠다는 날카로운 눈이 필요하다. 이 무거운 말들을 견뎌내는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끝까지 해보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수고를 들여야 할까? 인문학, 나아가 모든 ‘배움’의 목표가 그것이겠지만 ‘사유하는 인간’을 위해 필요하다. 남의 생각이 아닌, 남의 말이 아닌, 남의 삶이 아난 나의 생각, 말, 삶을 위해. 더불어 단순히 물리적 무게가 아니라, 진실호 이 무거운 책을 읽어냈다는 뿌듯함은 아마 이후에 다른 책을 만날 때에도 큰 도움이 되어주리라.
2. 《사기》, 역사의 시작
《사기》는 중국 역사의 첫 시작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사기》보다 앞선 역사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기》는 이른바 ‘중국사’의 첫번째 책에 해당하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 오죽하면 제목도 ‘사기’, 즉 ‘역사 기록’이라는 제목을 얻었을까?
이 책은 중국 고대의 역사를 다룬다. 고대 왕조에서 춘추전국 시대를 지나 진나라와 한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그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넘도 넘은 옛날이다. 이 까마득한 옛날에도 역사를 기록하는 인물이 있었다. 우리의 여정 맨 마지막에 만날 ‘사마천’이 바로 그 인물이다. 그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썼는데 지금의 우리가 보는 편집본으로 환산하면, 약 3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참고로 그는 종이가 없는 시대에 이 책을 썼다. 길다란 나무 조각에 글을 써서 책冊으로 묶었다. 아마 그 분량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 방대한 책은 크게 《본기》, 《세가》, 《열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 《본기》는 나라와 황제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가》는 미쳐 담지 못했던 그 아래 귀족, 혹은 제후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열전》은 갖가지 흥미진진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본기》가 우리가 흔히 읽는 역사의 모습을 가졌다면 《열전》은 그 역사를 살아간 개인들의 삶에 주목한다. 우리는 《본기》와 《열전》을 통해 고대 중국의 변천과 그 험란한 시대를 헤쳐나왔던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사기본기》는 총 12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제목을 보면 이렇다. 오제 - 하 - 은 - 주 - 진 - 진시황 - 항우 - 고조 - 여태후 - 효문 - 효경- 효무 앞서 이야기했듯 이는 역사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 가운데 ‘하, 은, 주, 진’은 나라의 이름이고, ‘오제, 진시황, 항우, 고조, 여태후’ 등은 인물의 이름이다. 나라 혹은 한 시대를 대표할만한 황제의 역사를 기록했다고 보면 쉽다.
다만 주의할 것은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와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과거의 사실 가운데 오늘날 의미있는 것을 추려내어 특정한 흐름에 따라 서술한 것을 역사라고 이야기한다. 이럴 경우 과거는 현재를 위해, 또한 현재는 미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된다. 자연스레 우리는 과거보다 현재가, 현재보다 미래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과거가 현재를 위해 쓰였듯, 현재도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고. 과연 그럴까? 어떻게 보면 그런식의 직선적 발전관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가 가진 오만함이 아닐까?
이 문제는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므로 여기서 줄이자. 다만 《사기》의 모습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역사책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자. 역사책보다는 차라리 어떤 이야기처럼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야기’라고 하니, 드는 질문. 과연 《사기》의 기록은 사실이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일까? 여기에는 많은 논란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점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수 천년전 사건의 사실 여부는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자.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수천년의 시간을 건너 누군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사람들의 경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가? 그것은 아무래도 그들의 삶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삶을 오늘날 우리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다루는 도구와 삶의 형태는 달라졌을지라도, 그들의 살았던 것과 비슷한 고민, 현실에 허덕이며 우리도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나? 답없이, 그러나 좀 지혜롭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수천년을 건너온 목소리라면 좀 나은 길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3. 신화의 시대에서 국가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오제’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혹시나 오해할 수 있는데, 오제 가운데 하나인 황제黃帝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황제皇帝와 다르다. 중국은 자신의 역사를 이 황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가끔 이야기되는 것은 황제보다는 그 뒤에 천하를 다스렸다는 요와 순일 것이다. 그들의 통치는 후대에 큰 귀감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이상적인 세계를 말할 때 ‘요순시대’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가장 평화로운 시대의 큰 특징은 왕권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요는 아들이 아닌 순에게 자리를 물려준다. 물론 순은 요의 사위였으나,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그것은 순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자신의 두 딸을 준 것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여튼 훌륭한 인물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 이것을 선양禪讓이라고 한다. 요는 순에게, 순은 다시 우에게 물려 주었다.
그런데 우임금 다음에는 사정이 바뀌고 말았다. 우는 덕망있는 이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했으나 천하의 사람들이 그 자식에게 몰려갔다고 전한다. 이제 왕위는 자식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자세히 따져보면 꼭 자식에게 자리가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형제에게 물려주기도 했는데, 어쨌건 이제 한 핏줄이 나라의 통치권을 다 손에 쥐게 되었다. 이른바 왕권의 탄생이다.
왕권의 탄생은 결국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버렸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왕의 이야기는 그랬을 때의 위험을 잘 보여준다. 결국 나라는 망하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새나라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탕의 은나라이다. 이렇게 다른 성씨, 혹은 다른 집안으로 왕권이 옮겨지는 것을 ‘혁명革命’이라 하였다. 하늘, 혹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나라의 권력이 뒤바뀌었다는 말이다.
하나라는 망했으나 그 후손은 기杞라는 땅에 모여 살았다. 망한 나라의 후손이니 사람들이 곱게 보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기나라 사람 가운데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단다. 쓸데 없는 걱정. 기나라 사람의 이 어리석은 걱정을 일컬어 ‘기우杞憂’라고 한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많은 단어, 표현 가운데 《사기》에서 빚지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하나 더 소개하려는데, 이번엔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왕을 이야기해야겠다. 그는 화려한 생활을 즐겼는데 어찌나 방탕하게 놀았던지 술로 못을 만들어놓고 수풀에 고기들을 마구 널어놓고 먹고 마셨단다. 바로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폭군의 끝은 결국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결국 은나라의 주왕도 목숨을 잃는다.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등장한 나라가 바로 주나라다. 주나라의 통일에 얽힌 이야기는 더 많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록의 시대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나라 이전까지의 기록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은나라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 갑골문인데, 이는 동물의 뼈에 새겨놓은 글자를 일컫는다. 기록은 기록이되 흔적에 가까운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나라부터는 다르다. 이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펼쳐질 때가 되었다. 당연히 등장하는 인물도 많고, 사건도 많다.
댓글목록
백조님의 댓글
백조
사기를 1년 동안 완독한다는 말씀에 오래전 사놓은 사기전집을 생각하며 당연하다는듯 이끌려 함께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기>일까? 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는데, 선생님의 이 글을 읽으니 이제 좀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직 중국을 제대로 모른다. 서구적인 시각에 붙들려 중국이라는 오래된 나라를 해석할 적절한 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만 모르는 것일까요. 똑같이 우리 자신의 역사와 사상 문화도 서구적인 시각으로 평가하여 폄하하고 언제부턴가 온통 서구문명을 뒤쫓아 따라가려 애쓰고 있지 않은가요.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채...
저는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은 또한 같은 한자문명권이며 오랜 세월 교류하며 살아온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기가 방대한 양과 낯섬으로 다가가기 힘들다 하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냥꾼의 눈은 좀 부족할지라도 황소같은 우직함 하나로 한번 끝까지 가보렵니다.
'남의 생각이 아닌, 남의 말이 아닌, 남의 삶이 아닌 나의 생각, 말, 삶을 위해.'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오오~~ 뒤늦게 달아주신 댓글을 보았어요.
<사기본기>를 읽으며 '중국'이라는 세계의 심층을 탐사할 수 있겠지요.
앞으로도 길이 먼데... ^^ 열심히 읽어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