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알렙 두번째 수업(0110)- 후기 +1
백조
/ 2017-01-15
/ 조회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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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읽다 만나게 된 보르헤스는 처음에는 너무나 낯설어 당황스러웠다. 사전에 미지의 세계로 초대될 거라는 얘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거기는 보르헤스가 만들어놓은 미로여서 어디로 가는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며 이리저리 헤맸던 시간들이었다. 이제 우리가 목표한 두 권의 책들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보르헤스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장재원님이 발제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번에 다룬 여섯 편의 작품들은 모두 죽음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까지 읽은 다른 작품들에도 역시 많은 죽음이 나온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앞의 작품 ‘죽지 않는 사람들’의 강렬한 기억 때문일까? 자꾸 불사(不死)라는 단어가 머리에 맴돌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죽음과 불사-죽지 않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얼마 전 불교를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 사유하는 이진경 선생님의 <불교를 철학하다>를 만나 너무나 반가웠다. <불교를 철학하다> 무아(無我) 편과 윤회(輪廻) 편에서 이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는 몇 구절을 소개한다.
보르헤스가 <죽지 않는 인간>에서 다음과 같이 쓸 때, 그는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모든 사람이 될 것이다. 즉 나는 죽을 것이다.” 무아를 통찰한 ‘나’란 어떤 ‘나’도 ‘나’라고 부를 실체가 아님을 알기에 그 모든 ‘나’가 ‘나’임을 수긍하는 나다. 그래서 무아는 그때마다의 무수한 ‘나’, 무상한 ‘나’들의 긍정이 된다. (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p. 89)
보르헤스가 <죽지 않는 사람들>을 썼을 때는, 명료한 것은 아니지만, 불사의 삶을 말하면서 무아를 말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다. 불사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불락에선 <아라비안나이트>를 필사하는 누군가가 되어 살고, 사마르칸드에서는 수인이 되고, 보헤미아에서는 점성술가가 되어 사는 수많은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삶들을 사는 ‘모든 사람 everybody’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모든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는 ‘아무도 아닌 자 nobody’가 되어야 한다. (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p. 215-216)
‘나’라는 실체가 없을 때에만 윤회하는 삶은 가능하다. 윤회의 시간을 관통하는 것은 수많은 삶, 그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는 ‘아무도 아닌 자’만이 있을 뿐이다. 어떤 누구도 될 수 있는 ‘아무도 아닌 자’, 그것만이 윤회하는 자이다. 그 ‘아무도 아닌 자’는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절대적 가변성을 갖는 어떤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
절대적 가변성을 갖는 이 능력을 ‘무아’라고 한다면, 윤회란 그때마다의 연기적 조건에 따라 수많은 존재자가 될 수 있는 이 잠재적 능력이 펼쳐지는 장이 될 것이다. 이 능력을 ‘생명’이라고 부른다면, 윤회란 니체의 말처럼 영원한 시간을 반복하여 되돌아오는 어떤 동일한 힘이 그때마다 다른 양상들로 펼쳐지는 장이 될 것이다. (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p. 216-217)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르헤스의 한 마디.
아무도 아닌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단 한 사람의 죽지 않는 인간은 모든 죽지 않는 인간들이다. (민음사, 보르헤스 전집 3 알렙 p. 28)
이로써 찰나 찰나 죽음과 삶이 반복되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기꺼이 기쁘게 살아갈 것이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우리가 현재의 시간을 살 수 없게 하는 것은,
1.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라는 방식으로 과거에 붙잡혀 있는 것.
2. '불확실한 시간'이라는 방식으로 불안한 미래로 미리 달려가는 것.
3. '불가항력적인 종말'이라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것이지요.
"나라는 실체가 없을 때에만 윤회하는 삶은 가능하다."
'무아'라는 방식으로 나의 정체성을 해체할 때,
진정한 의미의 윤회-불사가 가능하다는 것은 보르헤스 철학의 중요한 맥락이지요.
보르헤스는 '불멸'이라는 개념을 개체를 넘어서는 삶의 영원성으로 해석하여,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해체하고 있습니다. !!
보르헤스, 그와 함께 한 2달은 이런 생각들을 분명하게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죽음과 삶이 반복되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기꺼이 기쁘게 살아갈 것이다."
백조의 까르페디엠에 동조하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