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고원] 제6장 후기 - '천 개의 고원'이라는 말 +4
희음
/ 2017-01-17
/ 조회 2,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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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고원'이라는 말
“꿰매기와 채찍질이라는 이 두 경우가 동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두 국면을 분명하게 구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의 국면은 기관 없는 신체를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한 국면은 이 기관 없는 신체를 무언가가 순환하거나 통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저자들이 ‘꿰매기’와 ‘채찍질’이라는 놀라운 단어를 추출해낸 것은 미셸 드 뮈장의 마조히즘 사례와 관련된 저작으로부터이다. 탁자 위에 묶어 로프로 동여매고, 100번의 채찍질을 거듭하고, 귀두와 음낭을 꿰매고, 꿰매진 그를 다시 기둥에 묶고, 달궈진 핀을 가슴에 꽂고, 다시 채찍질. 물론 이것은 환상이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일련이 정신분석적인 해석과는 구별되는, 반정신의학적인 '실험'이라는 것임을 저자들이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기억하자.
그렇다. 중요한 건 ‘실험’이다. 옷감들, 저며진 유용한 가죽들을 재봉틀로 박는 것이 아니라, 내 몸, 나의 멀쩡한 신체를 성기게, 못나게 꿰매는 것이다. 즉 나를 거대한 수용소나 정신병원에 그 세계의 질서 안에 붙박아두는 것이 아닌, 차갑고 그로테스크한 실험도구가 즐비한 실험실 안에 던져두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우리 실험자들 만세!!!???)
이렇게 하여 기관 없는 신체는 완성된다. 아니, 완성이 아닌 기관 없는 신체라는 상태가 되는 것. 고착된 몸이 아닌, 유동하는 배치로서만 존재하는, 그 다음의 새로운 배치로 이행하기에 좋은 잠재력 자체인 몸. 이 몸은 끊임없이 ‘다른 것’이 되려고 한다. 배치의 좋은 예로 동소체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소와 오존의 관계를 보면 그것들은 성분, 즉 질료는 같지만 배치는 다르다. 단지 배치만을 통해 그것은 다른 몸이 되고 다른 상태와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산소와 오존을 기관 없는 신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것은 완전한 그것들의 이름으로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대신 ‘동소체적 변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다.
채찍질 또한 꿰매기와 짝패를 이루어 움직여야만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꿰매고 채찍질하고, 꿰매고 채찍질하고. 이것들은 ‘되풀이되어야 하고 두 번 이루어져야 한다’고도 말한다. 기관 없는 몸 위로 채찍질이라는 선이 그어지게 하는 것. 이것은 고통의 강렬도와 고통의 파동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마조히스트의 고통은 쾌락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닌 ‘욕망과 쾌락을 잇는 사이비 결속을 해체’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다.
쾌락은 ‘검은 구멍’일 뿐이다. 중요한 건 욕망이다. 욕망은 결핍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여기서 기관 없는 신체가 강렬도 0의 상태이고, 이에 대해 음의 값을 갖는 것은 없다는 말을 불러올 수 있다. 즉 욕망은 결핍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결핍이라는 마이너스 값을 갖게 되지도 않는 것. 스피노자에 따르면 단지 ‘부적합한 인식’이 있을지언정 ‘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강렬도 0’라는 말을 ‘절대 영도’로 치환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약처럼 추위가 그를 덮친다. 그에게 어떤 이로운 것도 주지 못하는 외부로부터의 추위가 아니라, 그 자신의 내부로부터의 추위 덕분에 그는 얼어붙은 수압 기중기만큼이나 강력한 등뼈로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으며 이때 그의 신진대사는 절대 영도로 저하한다.”
0도에서 물은 얼어붙는다. 아니, 물의 어는점이 있을 때 그것을 0도라고 부른다. 얼어붙는 상태, 그것이 먼저라는 말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이름을 0도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기관 없는 신체를 ‘강렬도=0’이라 말하는 것처럼. 저 인용구문에서 ‘강력한 등뼈’라는 말은 유기체가 아닌 하나의 ‘덩어리’를 말하는 것이다. 얼어붙은 덩어리. 마약이라는 고통의 수단으로부터 야기된 덩어리. 그 덩어리는 기관 없는 신체의 다른 말이다. 또 다르게는 ‘고원’이라고도 부른다.
“하나의 고원은 내재성의 한 조각이다. 각각의 기관 없는 신체는 고원들로 이루어진다. 각각의 기관 없는 신체는 그 자체가 하나의 고원으로, 일관성의 구도 위에서 다른 고원들과 소통한다. 기관 없는 신체는 이행의 구성요소다.”
하나의 고원은 ‘천 개의 고원’이 된다. 천은 상징적인 수다. 무한히 많은 수를 나타내는. 나의 안에도 n개의 성이 있다.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저자들은 주체는 가장 마지막에 태어난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다’가 아닌, ‘그것이 바로 나다’라고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태어날 수 있는 그것, 처음부터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고, 다만 배치를 통해, 접속과 통접과 지속을 통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것. 그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는 말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천 개의 고원’인 것이다.
댓글목록
희음님의 댓글
희음반디 님이 수업 시간에 나왔던 재미난 예시들을 간추려 정리해 주셔서, 저는 본문 정리 위주로 후기를 써 보았습니다.^^
선우님의 댓글
선우
잘 읽었어요 희음 님. 차분히 복습해주시네요.
'채찍질' 음,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두 분이 이렇게 후기를 써주시니, 지난 세미나 시간이 다시 불러 올려지는 것 같습니다.
선우님의 댓글
선우
저녁에 남자친구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오후내내 도서관에 앉아 있어도 책에 집중도 안되고,
붕붕 뜬 느낌이기도 하고,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도 창 밖 풍경과 하나가 되고... ㅎㅎ
희음 님 얘기할 때 깊이 공감했답니다. 옛날 생각나서리...
(근데 아무리 얘기해도 뭔 느낌인지 모르겠다고 자꾸 얘기하는 리좀 님 보며, 결혼이 좋기도 한건데
또 너무 많은 걸 앗아가는구나 했다능...ㅋㅋㅋ 하긴, 이젠 약속하지 않아도 매일 저녁 만나고
간만에 글자들과 하나가 되는 것 같이 책이 읽힐 때도, 스톱하고 밥 해야 하는 내 일상~~~ㅎㅎㅎ)
희음님의 댓글
희음
도서관 얘긴 전혀 다른 글쓰기라는 맥락에서 한 건데
선우 님 기억 속에서 뜻밖의 접속이 일어났나 봅니다.^^
기관 없는 신체의 실례로 저자들이 약에 취한 신비로운 상태를 예시로 들었고
정수 샘의 주도 하에 우리는 우리가 직접 겪었거나 혹은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을 법한
기관 없는 충만한 신체의 상태를 찾아 헤매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죠.
좋은 예시가 많이 나온 듯해요. 제가 든 예시는 정수 샘 욕망에 가 닿지 못했으므로
살짝 미달 수준인 걸로. 앞으로 더 분발할게요.ㅎㅎ
예시들 중 단연 반디 님의 '탱고의 순간'이 최고봉이었다 생각해요.
9센티미터 하이힐을 신은 채로 파트너와 밤새 홀을 돌아도
발의 아픔이 까맣게 지워지고 마는 한 순간.
내가 춤을 추는 건지 춤이 나를 추는 건지 모르게 되는 한 순간.
나는 지워지고 파트너도 지워지고 오로지 춤이라는 동작만 남는 순간.
주호 님의 쎈 얘기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비록 어떤 원칙에 의해 주어진 조건 때문이었지만
쾌락의 끝, 기쁨의 방출을 무한히 지연시킴으로써 몸이 욕망 그 자체가 되었던,
즉 기관 없는 신체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