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알렙 세번째 수업 발제(0117)
백조
/ 20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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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아베로에스의 추적
아랍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아베로에스가 자신의 저서 『파괴의 파괴』를 쓰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학』에 나오는 비극과 희극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여 난관에 부딪혔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른 학자들의 번역본과 몇 가지의 아랍어 사전들을 찾아보았지만 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최초의 아랍어 사전』을 펼쳐들다 아불카심 알-아샤리가 생각나게 되었고 그와 오늘밤 파라취라는 코란의 학자 집에서 저녁 약속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날 저녁 파라취의 집에서 아불카심, 파라취 그리고 시인 압달말릭 등 여러 초대손님들과 종교와 수하이르의 시에 대해 대화를 하고 돌아와서 아베로에스는 풀리지 않았던 비극과 희극의 개념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그의 원고에 이렇게 쓴다. “아리수투는 찬양에 비극이라는 이름을, 풍자와 저주에 희극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뛰어난 비극과 희극들은 『코란』의 책장과 성전의 『알-무할라카트』 곳곳에 가득 들어있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는 모두 이 소설의 작자인 나의 상상의 산물이었다.
“나는 이 글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동안 이 이야기가 바로 나 자신인 그런 어떤 사람에 대한 상징이고,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나는 그 사람이 되어야 했고, 그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이 이야기를 써야 했고, 그런 식으로 그렇게 무한히 계속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자 그는 사라져버렸다.)”
◎ 자이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자이르는 20센타보(센트)에 해당하는 평범한 동전 하나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자이르』에서 평범한 동전 자이르는 진짜 평범한 동전일 뿐일까. 그건 아닐 것이라는 것은 바로 이어지는 괄호 안의 글을 통해서도 금방 알 수 있다.
(18세기 말경 구사렛에서는 어떤 호랑이 한 마리가 자이르였다. ‥‥‥ 페르시아에서는 나디르 샤아가 바다 밑에 던져버린 천체 관측기였다. ‥‥‥ 테투안의 유태인 밀집 지역에서는 한 우물의 밑바닥이다.)
주인공 보르헤스는 속물근성에 마음이 움직여 떠오델리나 비야르라는 여인을 사랑했었고, 6월 6일 그녀가 자살하자 장례식장에 갔다가 돌아가는 밤에 어느 구멍가게에서 술 한잔을 마시고 거스름돈으로 자이르를 받았다.(6월 7일 새벽) 그 순간부터 그는 다양한 시대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에 등장하는 동전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치 어떤 꿈에서처럼 모든 주화들이 이러한 명백한 함축성을 갖는다는 생각은 내게 비록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거대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돈만큼 덜 물질적인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그 어떤 주화가 됐건(예를 들어 20센트짜리 주화) 그것은 다가올 미래의 창고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돈은 추상적이다, 나는 되풀이해 말했다, 돈은 미래의 시간이다.”
나는 그날 밤 괴수 그리핀이 감시하는 주화가 바로 나 자신인 꿈을 꾸었다.
다음날 내가 어제 환상에 사로잡혔던 것이라 마음을 먹고자 했다. 또한 나는 몹시도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그 동전으로부터 해방되기로 마음먹고 무작정 어느 동네로 가서 그 동전을 써버렸다.
그리고 나는 6월말까지 환상적인 단편을 완성해야 하는 작업으로 바빠서 일시적으로 동전에 대한 생각을 잊은 것 같았지만, 사실 그렇지 못했고, 이런 망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나는 8월이 되어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도 받았지만 모두 털어놓지는 않았다.
조금 후 나는 사르미엔또 거리에 있는 한 책방에서 율리우스 바를라흐의 『자이르에 얽힌 사건에 대한 기록』 한 권을 찾아냈다. (번역자 주에 따르면 이 책과 저자는 허구라고 함.)
“자이르에 대한 신앙은 이슬람적이고, 그 기원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 보인다. <자이르>는 아랍어로 <저명한>, <가시적인>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하느님이 가진 아흔아홉 개 이름들 중의 하나이다. 이슬람권에서 사람들은 그 말을 <결코 망각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속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의 형상을 본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어떤 존재, 또는 사물을 뜻하는 무엇>으로 사용한다.”
이에 대한 논박을 불허하는 증거들로는 페르시아의 천체 관측기, 인도의 한 마술적인 호랑이 등이 있다.
“그는 테일러에게 <자이르Zaheer>의 성질을 갖지 않는 피조물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또한 단지 한 가지만이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기 때문에 <무한히 자비로운 하느님>은 두 가지 사물이 동시에 존재하도록 허용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자이르가 있어왔고, <무지의 시대>에는 그것이 <야우크>라는 우상이었고, 그 다음에는 보석으로 수놓은 베일 또는 황금 가면을 썼던 쿠라산의 한 예언자였다고 말했다.”
나는 수차례 바를라흐의 논문을 읽었고, 그 어떤 것도 나를 구원해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 내가 빠지게 된 불행에 대해 내 자신은 전혀 책임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순백한 위안감, 주화가 아니라 대리석 조각 또는 한 마리 호랑이가 자신들의 자이르였던 그 사람들에 대한 질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바를라흐의 논문 내용 중 “『장미의 집』을 주석했던 한 주석가는 자이르를 보았던 사람은 곧 ‘장미’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아타르의 『아스라르 나마(알려지지 않은 것들에 관한 책』에 삽입되어 있는, 자이르는 장미의 그림자이고 ‘베일’의 찢긴 틈바구니이다, 라는 한 시행을 그 증거로서 제시한다.” 라는 구절을 읽고는 기이한 불안감을 느낀다.
“시간은 기억들을 묽게 만듦에도 불구하고 자이르에 대한 기억만큼은 도리어 가중시킨다.
‥‥‥
자이르가 아닌 것은 내게 마치 멀리에 있는 것처럼 올이 촘촘한 형상으로 다가온다. 즉 떼오델리나의 거만한 모습, 육체적 고통처럼. (영국의 시인) 테니슨은 만일 우리가 한 송이의 꽃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들이 누구이고, 우주가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고 말했다. 아마 그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주의 역사와 그것의 끊임없는 인과론적 연쇄를 암시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뜻하고자 하였음이리라.
아마, 마치 쇼펜하우어가 말한 바대로 의지가 각개의 주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시적 세계는 각개의 현상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뜻하고자 하였던 것이리라.
카발라주의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우주의 축소판, 즉 우주의 상징적 거울이다.
테니슨의 말을 좇는다면 모든 것이 그러한 것이리라. 모든 것, 심지어 감내하기 힘든 자이르까지도 말이다.”
“이상주의적 교리에 의하면 <살다>와 <꿈꾸다>라는 동사는 엄밀하게 동의어이다.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영상들로부터 하나의 영상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나는 아주 복잡한 꿈에서 아주 단순한 하나의 꿈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미쳐 있는 꿈을 꿀 것이고, 나는 자이르의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밤낮으로 자이르를 생각하고 있다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일까, 지구 아니면 자이르? ”
◎ 신의 글
마술사인 나, 치나깐은 평생 결코 나가지 못할 감옥에 갇혀 있다. 감옥에서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해내다가 어느 날 밤 중요한 기억을 해냈다.
“그것은 신에 관한 전설 중의 하나였다. 신은 세상의 마지막 날 많은 재난과 화근들이 일어날 것임을 예견하고 <창조>의 첫날에 그러한 불행들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마술적인 문장 하나를 지었다.”
나는 그 문장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재규어가 바로 그 신의 징표라는 것을 떠올렸고, 감옥 옆방에 있는 재규어의 가죽에 새겨진 형상들의 의미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다가 “점차로 숙제로 삼고 있던 재규어라는 구체적인 수수께끼보다 신이 쓴 문장의 본질적인 수수께끼가 나로 하여금 더욱 안달이 나도록 만들었다. 하나의 절대적인 정신이 (나는 자문했다) 문장을 만든다면 그는 어떤 형태의 문장을 만들까? 나는 인간의 언어들에서조차도 우주 전체를 암시하지 않는 발화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즉 <호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를 낳은 호랑이들, 그가 삼켜버린 사슴들과 거북이들, 사슴들이 뜯어먹은 목초, 목초의 어머니인 대지, 대지를 낳은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신의 언어에서 모든 말은 사실들의 바로 그러한 연계를 개괄적으로 진술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 신은 단지 그 말 안에 수많은 말들이 들어 있는 단 하나의 말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에 의해 발음된 그 어떤 말도 우주보다 열등하거나 시간의 총합계보다 적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음성의 그림자 또는 메아리가 하나의 언어에 해당되며, 하나의 언어가 그것들을 최대한으로 포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모든 것>, <세계>, <우주>와 같은 야심적이지만 빈약하기 그지없는 말들이다.”
그리고 어느날 꿈의 미로에서 헤매이다 돌아온 날, 결코 잊을 수 없거니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도 전달이 불가능한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다.
“신성(神性)과의, 우주와의 (나는 이 두 말이 서로 다른 건지 알 수가 없다) 합일이 일어났다. 무아경은 똑같은 상징을 되풀이하면서 나타나지 않는다. ‥‥‥ 나는 지극히 높은 <바퀴>를 보았다. 그것은 내 눈앞에, 뒤에, 또는 옆에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곳에 동시에 있었다. 그 <바퀴>는 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불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리고 그것은 (비록 그 둘레가 보이기는 했지만) 무한했다. 미래에 있을 것이고, 현재에 있고,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서로 얽혀 짜인 채 그것을 형성하고 있었다. ‥‥‥ 거기에는 원인들과 결과들이 함께 있었고, ‥‥‥ 나는 우주와 우주의 심오한 구성방식들을 보았다.”
“나는 유일무이한 행복을 이루어가고 있는 무한한 과정들을 보았고,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또한 호랑이(재규어)에 씌어진 글을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
호랑이들의 몸에 씌어진 비밀은 나와 함께 죽게 되리라. 우주를 엿보았던 사람, 우주의 타오르는 구조들을 보았던 사람은 비록 그게 그 자신일지라도 어떤 한 인간, 그리고 그의 하잘 것 없는 행운이나 불행에 대해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 어떤 사람이 바로 그 자신이었으나 이제 그에게는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일 이제 그가 아무도 아닌 그런 존재라면 그 또 다른 자의 운명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 또 다른 자의 조국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있고, 그래서 어둠 속에 누워 세월이 나를 잊어가도록 가만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