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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공백] 김수영 시 후기 +1
케테르 / 2017-01-19 / 조회 3,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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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공백] 김수영 시 후기

아시다시피 김수영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인입니다.

제가 좀 늦게 도착하여 첫 번째 시의 팽이가 이미 많이 돌고 있었습니다.

(제가 놓친 부분은 희음 님이 보충해주실 것입니다)

주섬주섬 후기를 간단히 올려봅니다.

  

1. 

 

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맟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 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년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세미나 내용]

이 시는 팽이가 도는 장면을 보면서 돌고도는 인생을 묘사한 시입니다

화자의 시선은 처음에는 팽이(fact)에서 - 뺑뺑이 도는 삶으로 - 나아가 스스로 도는 힘(팽이)로 나아갑니다

시인은 들뢰즈가 말한 ‘되기‘를 경험합니다. 일종의 ’팽기 되기‘

팽이가 돈다 / 팽이가 돈다

이 단순한 반복의 표현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고, 영원히 회전하는 듯한 이미지를 주고,

팽이의 회전의 생생함을 느끼게 해주고, 무언가 긍정적 에너지를 느끼게 합니다.

스스로 도는 힘‘ 이것이 이 시에서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 시에서는 비참함, 혹은 냉소적 시선이 보인다는 의견도 있고

전체적으로 긍정적 이미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강력한 의지나 초극의 힘은 아니지만 ‘수동적 긍정’의 분위기가 보입니다. 즉 체념이나 허무적인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시 하나를 공부하는데 1 시간 30분 걸렸습니다. 대화가 끊어질듯 하면서도 계속 이어지며, 팽이가 돌듯이 이 시에 대한 대화와 나눔이 팽팽 돌아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이 시의 마력인 듯 합니다. 

 

2.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시미나 내용]

김수영의 시집 ‘달나라의 장난’에서 이 시도 대표적인 시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제목의 다른 시들도 있습니다(1961년 1월 3일 작, 1966년 1월 29일 작)

 시 속에 ‘젊은 시인’은 누구일까? 김수영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당시 30세?), 모든 시인일 수도 있습니다.

‘눈이 살아있음’ 보다 ‘기침을 하자’에 더 방점이 찍히고 있는 느낌입니다.

 

의견1] 시인은 눈이 ‘희다’는 그 순백의 이미지보다 눈이 ‘살아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견2] 기침, 가래를 통하여 그것을(눈을) 더럽힌다는 이미지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눈을 향하여 약간 경멸하는 듯 합니다. 기침과 가래는 눈의 순백의 이미지를 깨고 있습니다. 마치 죽음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 눈은 살아있다고 표현하는 듯 보입니다.

의견3] 시를 쓴다는 것은 마치 흰 눈 같은 백지 위에 살아있는 백지 위에 기침을 하며 가래를 뱉듯이 가슴에 맺히고 영혼에 고인 것을 쏟아내는 행위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3.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세미나 내용] 

이 시는 고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마치 저항시로 해석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시입니다.

‘풀’은 민중 혹은 민초로, 바람은 민중을 억압하는 외세나 권력 등의 힘으로 해석하여왔습니다. 짓밞히고 휘어질지라도 결코 꺽이지 않는 민초의 생명력에 주목하였습니다. 이는 한때 민중을 강조하는 해석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상투적이고 격식화되고 교과서적인 해석이라는 의견이 다수였습니다.

다들 이 시에서 김수영의 시론, 시인론 같다는 느낌이 읽힌다고 보았습니다.

‘풀’은 시인 자신, 모든 시인, 지성인, 예언자, 활동가, 견디어내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일 수가 있습니다.

‘바람’은 시인을 자극하여 시 활동을 하게 하는 긍정적 에너지일 수가 있습니다.

또한 ‘바람’은 어떤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왜 ‘바람’을 부정적인 실체로만 해석하였을까요?

바람은 기운, 에너지, 기, 몰아쳐오는 어떤 예술적 영감, 이미지 등 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시를 읽고 공부할 때 도식적인 해석을 넘어 창조적인 읽기로, 이념적 해석에서 읽히는 그대로 읽기로 나가면 좋겠습니다.


4.

 

사랑의 변주곡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기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 – 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 거다

  

[세미나 내용]

이 시는 1967년에 씌여진 시입니다.

제목이 ‘사랑의 변주곡’인데 이 시에서 몇 가지 변주가 보입니다.

1) 자기 이야기(자기 세대)에서 아들 세대로의 변주, 2) 나에서 너로 넘어가는 변주, 3) 문체와 화법에서의 변주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 – 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이 행들에 대한 대화들이 열띠게 이어졌습니다.

 

- 이 시에서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혁명’과 연결시키고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 ‘눈을 떴다 감는 기술’에서 본문의 씨앗 이미지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단단하 씨앗들은 그 모양만이 아니라 크기도 눈(eyes)의 크기에 가깝습니다.

- 혁명처럼 폭발하는 사랑이 아니라, 눈 뜬 사람이 아니라, 눈감은 사랑을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 소리내어 혁명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하는 혁명을 말합니다. 저항의 변주, 사랑의 변주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역사 속에서 있었던 ‘혁명’이나 ‘사회적 격변’과 연결시켜 해석하자면,

시적 화자는 역사를 흔들었던 그런 혁명과 같은 사랑만이 아니라, 씨앗처럼 조용히 잠재되어 있고 눈감고 침묵하는 사랑도 살아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 마치 4.19 혁명이 이후의 5.16에 의해 짓밟히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듯 하지만 사랑=진정한 혁명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 ’

- 너의 술이 바닥났습니다. 술은 생명, 에너지 등의 이미지를 줍니다.

- 너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는 이미지의 표현들이 뒤 이어집니다.박소란의 시에서 보았듯이 절망이 지니는 긍정성이란 것이 있습니다.

‘눈을 떳다 감는 기술’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한 번 눈을 뜬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감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아들아, 너도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씨앗이 눈을 뜨고 나오듯이 ~~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무력감과 권태의 극점일 수도 있고, 절망의 극한일 수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의 극한 체험이 지니는 긍정성이 있습니다.

여하한 뒷부분의 역사적 맥락을 드러내는 표현들을 보아,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남녀간의 에로스나 성애라기보다 인류 혹은 역사에 대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여름뜰

 

무엇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뜰이여

나의 눈만이 혼자서 볼 수 있는 주름살이 있다 굴곡이 있다

모오든 언어가 시에로 통할 때

나는 바로 일순간 전의 대담성을 잊어버리고

젖먹는 아이와같이 이즈러진 얼굴로

여름뜰이여

너의 광대한 손(手)을 본다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어라!]하는

억만의 소리가 비오듯 내리는 여름뜰을 보면서

합리와 비합리와의 사이에 묵연히 앉아있는

나의 표정에는 무엇인지 우스웁고 간지럽고 서먹하고 쓰디쓴 것마저

섞여있다

그것은 둔한 머리에 움직이지 않는 사념일 것이다

 

댓글목록

희음님의 댓글

희음

역시 케테르 님 다운, 지난 시간의 핵심적인 흐름이 담긴, 예리한 후기입니다.
당번이 아닌데도 당번 이상의 에너지를 담아 후기 올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시공백 세미나 창립 멤버의 저력이 이렇게 또 드러나는군요.^^
'달나라의 장난'과 '사랑의 변주곡'을 이야기할 때가 가장 좋았던 듯해요.
저마다의 해석이 출물하느라 새로운 대기와 바람이 태어났던 시간.
저도 어서 달나라의 장난에 대한 정리글을 올려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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