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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6 푸코세미나_7강.1978년 2월22일
로거스의짐작 / 2017-01-06 / 조회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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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히브리 전통과 대비되는 그리스도교 사목의 특수성

히브리 문명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엄청난 제도망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사목 이라는 주제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신은 목자로서의 신입니다만 히브리인들의 정치·사회 체제에서는 목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사목은 인간을 인도하고 지휘하며 이끌고 안내하고 손을 내밀어 조종하는 기술, 인간을 뒤따라 다니며 한걸음 한걸음씩 앞으로 밀어붙이는 기술, 이렇게 집단적·개별적으로 인간의 일생에 걸친 매 단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기술입니다.

사목은 인간을 통치하는 기술이고 바로 이 측면에서 통치성의 기원, 통치성이 형성되는 지점, 통치성이 결정화 되는 지점, 통치성이 발아되는 지점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적 주제와 구별되는 특수성 구원,,진실

1.사목은 구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목은 개인을 이끌거나 개인이 구원의 길을 향해 진보하고 발전해가도록 해주는 것을 근본적·본질적 목표로 설정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에 대해서도 그렇고, 공동체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두머리가 무리를 길 잃게 만든다거나 행정관이 도시국가를 잘 지휘하지 못한다면, 행정관의 경우 도시국가를 잃고 목자의 경우 무리를 잃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이 공동체와 더불어 길을 잃습니다. 그들은 이 공동체와 더불어 구원되고, 이 공동체와 더불어 길을 잃죠. 그리스인들에게서도 히브리인들에게서도 발견되는 이 운명 공동체라는 주제는 일종의 도덕적 상호성을 통해 정당화됩니다. 그래서 역사 속 사건으로서의 나쁜 왕이나 나쁜 목자는 도시국가나 공동체의 죄악 탓으로 여겨지거나 그것으로 정당화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공동체와 그 책임자 사이에 놓인 일종의 포괄적 관계, 공동의 운명, 상호책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사목관계는 무리 사이에 상호관계도 존재하지만 목자와 양들의 극도로 미세하고 복잡한 책임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목자는 전체 공동체, 총체로서의 공동체, 일체로서의 공동체 모두의 구원을 보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사목의 역설적으로 분배적인 면모를 보게 됩니다. 왜 역설적으로 분재적이냐면, 이전 언급한(p189) 바와 같이 전체를 구원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경우에 따라서는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지 모를 한 마리의 양을 희생시킬 수도 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파문을 일으키는 양, 그 자신의 부패가 무리 전체를 부패시킬 염려가 있는 양은 내칠 필요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배제하고 쫓아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p187 ‘목자는 불침번 서는 자’) 그러나 이것 역시 역설적인데,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을 구원하기 위해 전체를 구원하는 것만큼의 배려를 해야 합니다. 모든 다른 임무를 중단하고 무리를 포기해서라도 되찾아오려고 하지 말아야 할 양은 없습니다. 즉 배교자, 교회를 부인한 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관건일 때 문제가 된 것이 이것이었죠. 그들은 결정적으로 내쳐야 할까요, 이것이 제가 앞서 말씀드린 목동의 역설이라는 문제입니다.

사목권력의 전적이고 역설적인 배분성의 원칙에 대해 그리스도교는 네 개의 원칙을 추가했다고 생각합니다.

1)분석적 책임원칙: 목자는 배교자를 구별하기 위해 양의 상태를 분석하고 양의 상태를 보고,질문,조사 받아야 합니다.

2)전이의 원칙: 양의 상태가 목자에게 전이되어야 합니다. 목자는 자기 양의 선을 자신의 개인적인 기쁨으로 기뻐해야 하고, 자기 양으로부터 비롯되는 악은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3)희생의 반전원칙: 목자는 양을 구원하기 위해 죽음(위험)을 받아들어야 합니다. 목자는 양의 짐을 대신 짊어지는 자, 양의 죄를 짊어지는 자, 양의 양심을 지도하는 자, 목자는 타인을 위해 자신이 죽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구원되는 자. 즉 가치의 반전되므로 희생의 반전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목은 자신을 희생하며 양심의 지도자가 되는데 양심의 지도자가 되면서 권위자로 반전 되므로 이것을 희생의 반전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4)교대적 대응의 원칙: 목자는 양들이 위험에 빠질 때 일을 하며 평안을 얻을 때 공덕이 쌓이므로 위험과 평안이 교대로 대응하며 목자는 이를 관할합니다.

 

2. 사목의 특이성 법

시민들은 오직 두 가지 것에 의해서만 지휘를 받았다고, 즉 지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말입니다. 법과 설득, 즉 도시국가의 명령을 통하거나 사람들의 수사를 통해서 말이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종이라는 일반 범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두 개의 권역이 있는데 어느 쪽이든 꼭 복종이라는 차원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1)법의 존중이라는 권역: 민회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과 행정관의 선고를 존중하는 것

2)간계의 권역: 궁리해 계획된 행동과 효과의 권역이 있습니다.

이렇듯 두 개의 권역이 있습니다. 법을 존중하는 것과 누군가가 자신을 설득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즉 법과 웅변술이 존재합니다.

그리스인에게는 복종의 범주가 없으나 그리스도교의 사목은 그리스적 실천과는 완전히 다르고 이상한 무엇인가를 조직한 듯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목은 순수한 복종의 심급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을 조직했죠. 일원화되고, 그 자체 안에 존재이유의 본질을 갖는 매우 가치화된 품행[이끌림]으로서의 복종 말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신의 의지, 개별자 각각을 위한 신의 의지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목자는 법학자도 법을 대표하는 자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자의 행위는 늘 임기웅변식이고 개별적입니다. 근본적으로도 일차적으로도 목자는 판사가 아닙니다. 목자는 본질적으로 의사로서 각각의 영혼과 그들의 질병을 책임져야합니다. 목자는 각각의 양을 개별적으로 돌보는 자이고,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필요한 배려를[베풀어주며] 각자의 안녕을 위해 불침번을 서는 자라고 말입니다. 목자는 그 자신의 특징에 따라 각각의 사례를 법률가보다 훨씬 더 배려하는 자라는 이 주제에 덧붙여, 저는 양을 이끄는 자와 양떼의 관계가 전면적 의존관계라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의 사목에 고유한 특성입니다.

 

의존관계의 세 가지

1.복종관계이지만 이때의 복종은 법·질서원칙·이치에 합치하는 엄명에 대한 복종도 아니고, 이성에 의해 도출된 어떤 원칙이나 결론에의 복종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하는 복종의 관계입니다. 엄격한 개인적 관계, 지휘하는 개인을 지휘를 받는 개인과 서로 관계 짓는 것은 그리스도교적 복종의 조건일 뿐만 아니라 원칙이기까지 합니다. 그리스도교의 복종은 누군가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맡기는 원칙입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그분?(?,리더?)이라는 점, 바로 이것이 그에게 자신을 의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완벽한 복종이란 이치에 맞기 때문에 따른다든지, 맡겨진 임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따른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데도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적 복종, 곧 목자에 대한 양의 복종은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하는 전면적 복종인 것입니다. 이것은 전면적 예속관계입니다.

 

 

2.전면적 의존관계란 최종 목적이 없는 관계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복종의 실천이 취하는 결말은 겸손입니다. 여기서 겸손이란 자기 자신이 최후의 인간임을 느끼고,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복종관계 역시 끊임없이 연장시키며, 각자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는 데 있습니다. 성 베네딕투스는 훌륭한 수도사를 정의하기 위해규칙5권에서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자유의지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타인의 판단과 지배에 따라 걸으며, 누군가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가를 갈망한다.”

정념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수동성을 더 이상 갖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모든 운동··격정을 자신에게서 제거하는 것입니다. 정념을 갖지 않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에서 무엇을 의미할까요? 본질적으로 이기주의를 버리는 것, 자신의 독단적 의지를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의존관계의 세 번째이자 그리스도교 특이성 세 번째인 진실

사목과 진실의 관계는 그리스의 교육과 닮은 상황을 보입니다. 즉 목자에게는 자신의 공동체를 교육할 임무가 있습니다. 목자는 자신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삶을 통해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의 교육 특징

1) 가르침은 일상적 품행의 지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일반 원칙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일상적 변조를 통해 가르치는 것이 관건이죠. 또한 이 가르침은 관찰과 감시를 거쳐야 하므로 일상생활은 실제적으로 감시되어야합니다.

2) 양심지도, 목자는 양심을 지도해야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양심지도는 완전히 의지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적어도 항상 의지적이지 않습니다.(수도사의 양심지도는 의무적) 아울러 양심지도는 상황적인 것이 아니며 항구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양심의 점검은 양심지도를 위한 도구의 일부가 된다. 즉 양심의 무게는 지도자에게 고백 할 수 있는 것, 없는 것으로 분류 되므로 양심점검은 의존의 도구가 된다.

이로써 사목은 법과의 간접적인 관계를 통해 개별적이고 망라적이며 총체적이고 항구적인 유형의 복종관계를 창출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독창성·특수성을 이루는 것은 구원,,진실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 절대적 복종, 숨겨진 진실의 생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목에서는 그동안 구원··진실과 관련해서 정확히 파악될 수 있었던 완전히 특수한 양태로 개인화가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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