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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공백] 박소란 시 세미나 후기
케테르 / 2017-01-10 / 조회 2,367 

본문

기억을 더듬어 후기를 올립니다. 막 지은 밥처럼 따끈한 후기를 올리지 못하여 죄송하네요 ^^

 

1. 시인 박소란

 

박소란 시인은 1981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경남 마산에서 자라났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9년 [문학수첩]으로 등단하였다고 합니다. 2015년 4월 첫 번째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을 내었으며, 2015년 제33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고, 2016년 12월 후배작가들이 뽑은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받는 등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시인입니다.

 

박소란은 ‘사회적 약자와 시대적 아픔을 개성적 언어로 끌어안았다’는 좋은 평을 받고 있으며, 서정시가 아니라 해체시 혹은 자유시 기풍의 시를 쓰면서도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농도 깊게 들추어내는 시를 쓰고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어떤 사회운동적 맥락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이고 문학적인 작업의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교보문고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의 시집을 평가합니다. “등단 6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생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포착해내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도시적 삶의 불우한 일상을 감성적인 언어로 면밀히 그려낸다. 체념과 절망뿐인 비참한 현실 속에서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슬픔을 연민의 손길로 다독이며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곱씹는 내밀한 성찰과 사유의 깊이가 돋보이는 시편들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2. 세미나

 

그의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은 3부로 구성되어 총 52편(제1부 14편, 제2부 21편, 제3부 17편)의 시를 싣고있는데 이번 세미나에서는 모두 6편의 시를 다루었습니다.

모두 9명이 참석하였고, 열띤 분위기에서 수준 높은 토론과 나눔이 가득한 세미나였습니다. 아마 박소란의 시에 우리들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 나 자신의 이야기로 혹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 느껴지는 콘텐츠(contents)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 노래는 아무 것도

 

노래는 아무것도

 

폐품 리어카 위 바랜 통기타 한 채 실려간다

 

한시절 누군가의 노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을 맴돌던 말

 

아랑곳없이 바퀴는 구른다

길이 덜컹일 때마다 악보에 없는 엇박의 탄식이 새어나온다

 

노래는 구원이 아니어라

영원이 아니어라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라

 

다만 흉터였으니

어설픈 흉터를 후벼대는 무딘 칼이었으니

 

칼이 실려간다 버려진 것들의 리어카 위에

나를 실어보낸 당신이 오래오래 아프면 좋겠다

 

[시에 대하여]

폐품 리어카 위에 실려가는 통기타가 덩컹거리며 울려내는 엇박자 소리를 통해 노래가 칼이 되어 시적 화자의 상처=흉터를 후벼파는 칼로 느껴진다. 버려진 통기타와 폐품처럼 버려진(이별) 자신을 동일시 하고 있다.

 

[세미나 개요]

- 2연 2행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을 맴돌던 말”이라는 표현 여기에서 이 시집의 제목이 나왔습니다. 시집 제목의 출처가 첫 시에서 등장합니다.

- 기타는 노래를 만들어내는 도구인데, 덜컹거리는 상태에서 나오는 소리를 찌르는 소리가 되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기타에 투사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기타를ㅡ 폐품처럼 버린 ‘당신’이 칼에 찔려 아팠으면 좋겠다는 화자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 비명이 담겨 있고 가학이 담겨 있습니다.

- 이 시에서 사랑과 이별의 정서를 읽었습니다.

- ‘무딘 칼’이 더 아프고 흉터가 크고 오래갑니다. 더 흉한 흉터가 됩니다. 이 시가 비명처럼 들립니다.

- 엇박의 탄식, 어설픈 흉터, 무딘 칼 등의 표현에서 무언가 완성도 낮은 혹은 어설프고 미숙한 사랑이라는 뉘앙스를 느낍니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로 열띤 대화들이 이어졌습니다.

 

2) 주소

 

주소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안간힘으로

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닿는 꼭대기

 

그러니 모두

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시에 대하여]

종점에서 사는 화자의 실존을 통하여 삶의 주변부 혹은 벼랑(도시의 외곽)에 거거하는 베제된 사람의 이야기와 정서를 잘 드러내는 시이다. 실제로 박소란은 삼양동 25번지 버스 종점 에 살았다고 한다. 이 시는 문단과 독자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고 인용되고 있는 시이다.

 

[세미나 개요]

-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 여기서 ‘왜’가 도드라집니다.

자기가 바꿀 수 없는, 운명지워진 자신의 존재와 실존을 느끼게 하는 표현입니다.

- 마지막 연 ‘그러니 모두 / 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우리가 경험한 이별이라는 평범한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 ‘모두 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의 마무리는 앞선 시의 마지막 부분 ‘나를 실어보낸 당신이 오래오래 아프면 좋겠다’와 동일한 정서입니다.

- 발제자가 ‘정서적 마조히즘’이라고 표현한 그런 정서가 느껴집니다

- 고통의 이유를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사를 나눌 때, ‘어디 사세요?’라고 질문하기도 하고, 이에 대해 난처하게 대답하기도 하는 우리들의 경험을 나누면서 장소, 주소지, 공간성과 관련하여 역시 열~~~~띤 대화를 했습니다. 어디 사느냐?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 지위을 담고 있고, 사는 곳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배제하고 판단받는다는 느낌이 오가는 문화, 그에 따라 사람들이 가지는 상처나 위축감 등의 정서적 감정적 문제 등을 나누면서 ~~

 

 

3) 용산을 추억함

 

용산을 추억함

  

폐수종의 애인을 사랑했네 중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용산우체국까지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한강로 거리를 쿨럭이며 걸었네 재개발지구 언저리 함부로 사생된 먼지처럼 풀풀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시의 몸 구석구석에선 고질의 수포음이 새어나왔네 엑스선이 짙게 드리워진 마천루 사이 위태롭게 선 담벼락들은 저마다 붉은 객담을 쏟아내고 그 아래 무거운 날개를 들썩이던 익명의 새들은 남김없이 철거되었네 핏기 없는 몇그루 은행나무만이 간신히 버텨 서 있었네 지난 계절 채 여물지 못한 은행알들이 대진여관 냉골에 앉아 깔깔거리던 우리의 얼굴들이 보도블록 위로 황망히 으깨어져 갔네 빈 거리를 머리에 이고 잠든 밤이면 자주 가위에 눌렸네 홀로 남겨진 애인이 흉만의 몸을 이끌고 남일당 망루에 올라 오 기어이 날개를 빼앗긴 한 마리 새처럼 찬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꿈이 머릿속을 낭자하게 물들였네 상복을 입은 먹구름떼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네 깨진 유리창 너머 파편 같은 눈발이 점점이 가슴팍에 박혀왔네 한숨으로 피워낸 시간 앞에 제를 올리듯 길고 긴 편지를 썼으나 아무도 돌아올 줄 모르고 봄은 답장이 없었네 애인을, 잃어버린 애인만을 나는 사랑했네

 

 

[시에 대하여]

눈내리는 겨울, 용산 한강로 거리의 풍경을 담고 있는 시이다. 입원한 애인을 방문하고 거리를 걷는 시인의 경험을 담고 있는데, 추억이라기보다 참혹한 기억의 영상이 이어지고, 죽은 애인에 대한 기억이 일종의 제의적인 추념의 스토리가 되고 있다.

 

[세미나 개요]

- 원래 이 시는 연과 행이 나누어져있는 시인데 시집에 수록하면서 1행의 시로 바꾸었는데 더 시를 살려내고 있는 구도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 시를 읽으면서 풍경이 주욱 떠오른다는 것이 이 시의 매력입니다.

- 용산참사와 겹쳐지는 시입니다.

재개발지구, 폐수종, 붉은 객담, 남일당 망루 등이 마치 화염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듯 합니다.

- 박소란 시인의 삶의 자리가 철거당한 사람들과 더 깊이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됩니다.

- 용산참사를 다루 시라는 단서가 이 시에 많습니다. 특히 ‘남일당 망루’가 그것입니다. 용산참사의 최전선이자 공간적 상징입니다.

- 애인의 죽음과 용산참사가 겹쳐지고 있는데, 용산참사를 애인의 죽음처럼 느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깊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 시인에게서 느껴지는 ‘의지’가 있는데, 그것은 “잃어버린 애인만을 사랑했네‘라는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 그것이 시인의 기본적인 정서입니다. 어둠, 기억에서 빠져나오겠다는 의지를 가지기 보다, 고통 안에 계속 마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평론가들에 의해 크게 호평받는 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인이 이 시를 쓸 때 용산 인근에서 근무했고 용산참사를 직접 목격했다고 합니다. ‘용산’이라는 단어와 ‘장소성’의 의미가 젼혀 다르게 읽혀지고 무겁게 느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시선과 분노를 담아 풍성한 담론이 이어졌습니다.

 

 

4) 안부 

 

안부

 

소도시 원룸의 아버지는 요 며칠 부쩍 꿈자리가 사납다고

일장춘몽이라 했느니, 딸아

모쪼록 너는 안녕히 잘 지내거라

 

언제부턴가 세상의 모든 인사는 작별 인사

 

수화기 저편 아버지는

무거운 이불 속으로 더 무거운 몸을 끌어다 묻는다

그 곁에 붉은 흙냄새를 풍기는 잠이 별안간 찾아들 것이다

 

오늘 나는 수첩 한 페이지를 열어 때늦은 유언을 적는다

만원버스 구석에 앉아 졸음을 토할 때나 허겁지겁 숟가락을 들 때

사랑을 나눌 때조차 가방 한쪽에 숨죽이고 있을 유언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그만 기민한 어제가 된다

 

처음이자 마지막 봄볕이 성에 낀 창가를 잠시 두리번거리다 멀어진다

일장춘몽이라 했느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안녕하지만은 못했던 날들이

구태여 잠잠히 흘러간다

 

 

[시에 대하여]

아버지의 안부전화를 받고서 그 대화를 죽음을 앞둔 작별인사로 생각하고, 안녕하지 않은 화자의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는 시이다. 

 

[세미나 개요]

- 이 시에서도 죽음의 정서가 흐르고 있습니다

-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상상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안부인사가 자기 자신에 대한 안부인사로 이어집니다.

- 아버지의 죽음을 나의 신체성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예정된 죽음이라는 것이지요

- ‘일장춘몽’이 이 시에서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가 시적 화자 속에 계속 메아리칩니다. 시=시적 화자의 체념적 운명적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나로 이어지는 대물림이 ‘삶’의 대물림만이 아니라 ‘죽음까지’ 대물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 시적 화자에게 죽음이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함께 읽은 다른 시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4연에서 졸음(수면욕), 숟가락(식욕), 사랑(성욕, 관계) 등의 단어 등이 즉음과 연관됩니다. 이들은 삶의 에너지이자 본능인데 그 순간에도 유언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 정신적으로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나의 삶이 죽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화자에게는 오늘이 없습니다.

시간성이 과거에 고착되어 있습니다.

 

매우 뜨거운 대화들과 고상하고 차원높은 담론들이 이어졌는데, 아마도 죽음과 삶을 다루고 있기도 하고, 세미나 회원들 중 여러 분들이 우리 실러험자들의 ‘정신분석 세미나’를 공부하셨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시의 분위기는 어두운데 세미나 분위기는 정말 Up이었습니다.

 

 

5) 체념을 위하여

 

체념을 위하여

 

희망과 야합한 적 없었다 결단코

늘 한발 앞서 오던 체념만이 오랜 밥이고 약이었음을

 

고백한다 밤낮 부레끓는 숨과 다투던 폐암 말기의 어머니

악착같이 달아 펄떡이던 몸뚱이를

일찍이 반지하 시린 윗목에 안장한 일에 대하여

마지막 구원의 싸이렌마저 함부로 외면할 수 있었던 조숙한 나약함에 대하여

방 한 귀퉁이 중고 산소호흡기를 들여놓고

새벽마다 동네 장의사 명함만 만지작거렸다

그 어떤 신념보다 더욱 견고한 체념으로, 어김없이 날은 밝아

먼 산 기울어진 해도 저토록 가쁘게

가쁘게 도시의 관짝을 여밀 수 있음을 알았다 습관처럼

사랑을 구하던 애인이 어느 막다른 골목에서 뒷걸음질쳐 갈 때도

시험에 낙방하고 아무 일자리나 찾아 낯선 가게들을 전전할 때도

오로지 체념, 체념만을 택하였다 체념은 나의 신앙

그 앞에 무릎 꿇고 자주 빌었으며 순실히 경배하였다

체념하며 산 것이 아니라 체념하기 위해 살았다 어쩌면

이제 와 더 깊이 체념한다 한들 제 발 살 려 다 오

끝까지 매달리던 어머니의 원망 같은 무덤이 핏빛 흉몽으로 솟아오르고 안부조차 알 길 없는 애인이 허랑한 시절이 막무가내로 뺨따귀를 갈긴다 한들

행여 우연히 한번쯤 더듬거리듯 옛날을 불러세운다 한들

절망은 여전히 온 힘을 다해 절망할 것이고

나는 기어이 침묵으로 순교할 것이다 다시 체념을 위하여

도망치듯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굳센 체념을

 

 

[시에 대하여]

어머니, 애인과 관련된 화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체념의 고착화를 다루고 있는 시이다. 폐암 말기의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키워지고 굳어진 체념, 헤어진 애인의 실직과 그와의 이별의 경험을 통해 깊어진 체념이 화자에게 신앙이 되고 신념이 되고 있다. 체념의 찬가이다.

 

[세미나 개요]

- 체념은 나의 종교이다 경배한다 신앙이다 등등 종교적 표현으로 체념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 체념하지 않곤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삼포세대 오포세대 등의 용어가 생각났습니다, 청년세대들의 체념을 표현하는 ‘흙수저’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 (희망을 말하면서 더 아파하고 절망하는) 희망고문보다 훨씬 더 솔직한 시입니다. 살아갈 힘을 주는 시입니다.

- 우리가 희망을 가질 때 더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화자는 어머니가 죽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준비합니다. 오히려 체념하는 것이 더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선택할 것이 없으면 체념을 선택하였을까

- 이 시는 시대성이 있는 시입니다. 흙수저가 체념의 정서를 잘 드러내는 말입니다. ‘나는 흙수저야’라고 하는 것이 더 좋듯이, 그게 더 강하고 더 당당합니다.

- 체념이 나를 꺽어놓았는데, 이제는 내가 체념을 끌여당겨 체념을 위하여 살겠다는 것입니다.

- 나의 삶이 희망을 말한 적 많았는데 희망과 야합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절망이 금기어가 되는 교육계에서 희망의 마약주사를 놓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아픔을 알아야 하고, 참 배움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시는 어떻게 하든 절망은 여전하고 체념이 숙명이 되는 우리들의 삶의 자리와 정서를 잘 드러내고 있어서 참 재미있게들 대화했습니다.

 

 

마지막 시 ‘정전’은 시간이 모자라서 다루지 못하였고, 세미나 후 신년모임을 가지며 간단히 식사와 풍성한 대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리더로 수고한 희음님과 모임을 풍성하게 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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