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알레프 발제 (2017년 1월 10일) +1
장재원
/ 2017-01-11
/ 조회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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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알레프 «전사와 여자 포로에 관한 이야기», «타데오 이시도로 크루스의 전기», «엠마 순스», «아스테리온의 집», «또 다른 죽음», «독일 레퀴엠»
여섯편의 이야기는 모두 죽음을 다루고 있다.
드록툴프트는 생을 기꺼이 바칠만한 충동에 호응했고
타데오 이시도로 크루스는 죽기전에 ‘진정한 나’를 발견한 행운아였으며
엠마 순스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오랜 숙제를 풀게하는 계기가 된다.
아스테리온에게 죽음(해방)은 줄곧 생의 원동력이었고
다미안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은총을 받았다.
그리고 린데는 스스로가 새 시대를 위한 재물이라는 믿음 속에 죽음을 기다린다.
보르헤스와 14
1922년 1월 14일, 엠마 순스는 ‘타르부흐 & 로웬탈’ 방직 공장에서 집에 돌아와……
- 엠마 순스(알레프)
원문은 ‘열네 개’라고 말하지만, 아스테리온의 입에서 그 수량 형용사가 ‘무한’을 의미한다고 유추할 수 있는 이유는 너무 많다.
- 아스테리온의 집(알레프)
그것은 무작위로 선정된 열네 개 단어들로 이루어진 글이다.
- 신의 글(알레프)
1941년 1월 14일, 마리아 후스티나 루비오는 백살이 된다.
- 노부인(브로디의 보고서, 칼잡이들의 이야기(민음사))
1986년 6월 14일 Jorge Luis Borges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망
+ 추가
보르헤스의 시집 '앞의 달(luna enfrente), 1925'에 14의 시(versos de catorce)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깜빡했네요.
전사와 포로에 관한 이야기
도시와 문명을 접한 롬바르드족 용사 드록툴프트가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로마의 정복자에서 로마의 수호자로 변신했을때, 나는 이 이야기가 문명과 야만에 대한 것이며 보르헤스라면 여기서 다시한번 이야기를 뒤집어 문명을 비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만의 삶을 받아들인 영국인의 이야기에서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잠깐동안 미쉘 투르니에의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에 나오는 ‘방드르디’를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을 깨고 보르헤스가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충동이었다.
나는 나의 충동을 충분히 응원하며 살고 있을까.
좀 더 막 살아야겠다.
타데오 이시도로 크루스의 전기
내 소원은 내가 저세상 가기전에 내가 어떤사람인지 아는거야
- 노희경, 꽃보다 아름다워
그즈음에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자기 자신을 행복한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었다.
만족하는 순간 우리는 진짜행복 보다는 가짜행복쪽에 더욱 가까워진다.
금욕주의가 사실은 끊임없이 더 큰 욕망을 쫓는 행위인것 처럼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야 말로 누구보다 더 큰 행복을 쫓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해서 나의 운명을 발견할 수 있다면.
하지만 운명을 받아들이기에는 어느것이 진정한 나의 운명인지 알 수 없으니… 그나저나 마르틴 피에로는 항상 바쁘다.
엠마 순스
피카소가 고전주의 회화를 그려서 내민 것 같다.
+ 추가
스페인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일부 발췌. 발번역 주의)
보르헤스는 애인 세실리아 인헤니에로의 영향으로 엠마 순스를 쓰게되었으며(책의 후기에서 언급), 작가의 친구인 아돌포 비오이 카세레스에 따르면 보르헤스가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내 모든 작품들이 사라지고 엠마 순스만 남게된다면, 나에겐 아무작품도 남지 않는 것이다.’
엠마순스는 보르헤스의 작품 중에서도 특출나게 작가의 일반적인 주제와 구조(불한당, 결투, 끝없는 도서관, 미로와 상상력 등)를 벗어나 있으며, 어조나 용어도 다소 직접적이고 보수적(평범하다)이다.
- 인물들의 이름의 체계
엠마 순스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이름으로 보아( 엠마의 친구인 크론푸스 자매, 타르부흐, 가우스, 마이어 등) 독일계유대인 이민자 집단에 속해있다.
특히 주요인물 3인방의 이름은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아론 - 로웬탈의 이름. 구약에서 모세의 형으로 등장. 히브리어로 ‘높은 산’, ‘계몽된 자’를 뜻한다.
엠마 - 독일계 이름으로 ‘힘’을 의미하며, 엠마누엘의 여성형 애칭이기도 하다.
엠마누엘 - 예수의 이름 중 하나로, ‘우리와 함께하는 주님’이라는 뜻이다.
아스테리온의 집
Non, je ne suis jamais seul avec ma solitude.(고독과 함께있으니 나는 혼자가 아니네)
- Georges Moustaki, Ma Solitude
보르헤스의 세상속에 사는 나르시시스트 미노타우로스 이야기. 그에게는 기다리는 이(구원자)가 있기 때문에 고독을 견뎌낼 수 있다.
그때부터 나는 고독이 고통스럽지 않다. 그건 나를 구해 줄 사람이 살고 있고, 마침내 그가 일어나 먼지 위로 강림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 추가
책의 후기에 따르면 영국의 화가 조지 프레데릭 와츠(George Frederick Watts)의 그림이 아스테리온의 성격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첨부했어요.
또 다른 죽음
한 남자가 오랫동안 길러오던 콧수염을 자른다.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그의 얼굴을 본 아내는 아무 반응이 없다. 장난이라고 생각해보지만 그의 친구들도, 직장 동료들도, 어느 누구도 그의 콧수염을 기억하지 못한다.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남자. 이제는 그 조차도 자신이 콧수염을 길렀다는 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 영화 콧수염<La moustache>
기억은 사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일종의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언제든 다른 것으로 대체가능하며 거짓이든 환상이든 빈 공간을 메꿔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느님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 그런 은총을 내려주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무엇이 망설여졌을까.
독일 레퀴엠
스스로를 새 시대, 새로운 질서를 열기 위한 재물이라고 믿는 자, 자신의 희생을 기꺼이 선물로 받아들이는 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사면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받고 싶다.
요즘이기에 더더욱 겹쳐지는 한 사람이 있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14는 보르헤스의 숫자다. 그는
자기 작품을 추상하는 스타일 요소로 14라는 숫자를 삽입했다. 사례가 말하듯.
사실 그것이 14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고, 숫자가 아니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책(작품)을 서사가 아니라 스타일로 추상하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말이다!
보르헤스는 14일에 죽음으로써 자기 작품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내 휴대폰번호에 14가 들어있다는 것으로,
내가 보르헤스 혹은 그의 작품과 거미줄같은 것으로라도 연결되어 있다고 우기고 싶다. 쿄쿄쿄
흥미로운 텍스트에 덧붙이는 사족이었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