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세미나 후기 -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창비 세계문학 폴란드 편 +4
토라진
/ 2016-12-27
/ 조회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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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또 하나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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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폴란드 문학 중에서 <우리들의 조랑말>과 <빌코의 아가씨들>이란 작품에 대해 세미나를 진행했다.
우선 <우리들의 조랑말>은 빈곤한 가정환경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그 시간들을 헤쳐 나가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이가 화자가 되었을 경우, 대부분의 문학 작품에서 아이는 지나치게 위악적이거나 어른스러운 측면이 부각되곤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화자와 그들의 형제들은 천진하기만 하다. 팔려나간 물건들로 텅 비워진 집안에서 새로운 놀이를 발견하기도 하고 배를 곯아 영양실조에 걸린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어대기도 한다. 심지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조차 그들은 슬픔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오히려 현실적이다. 세미나 회원들 역시 비슷한 경험들을 앞 다투어 말하며 공감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를 어른으로 자라게 했던 것은 조금은 무딘 감각과 망각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지하거나 느낄 수 없는 고통의 사각지대가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유년의 시간들이 아련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었던 사금파리 같은, 반짝이는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고통과 함께 섞여 들여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변하고 않고 늘 반짝일 테니까. 사금을 캐고 그것을 정제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문학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작품이었다.
<빌코의 아가씨들>에서 삼십대 후반이 된 빅토르는 15년 전 빌코에 살던 여섯 명의 자매들을 다시 찾아가 기억을 반추하며 청춘에 대한 회한을 갖는다. 여섯 명의 여인들 모두 빅토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빅토르는 당시 어느 여인과도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 전쟁 후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빅토르에게 빌코의 여인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기억 속의 라라랜드(꿈의 나라, 비현실적인 세계)였다.
앞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억은 어떻게 불러오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아련한 아름다움과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 이 작품에서 각 여인들과 빅토르의 관계는 스칠 듯 말 듯한 포옹처럼 짜릿하기도 하고 신 풋사과처럼 아리고 상큼하기도 하다. 빅토르 자신의 철학적인 사유가 군데군데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작품에 무게를 두기 위해 일부러 매달은 추처럼 보일 뿐이다. 결국 남는 것은 ‘빌코’로 상징되는 리비도의 공간과 그가 현실에서 맞부딪힌 죽음이 혼재되면서 빚어내는 아이러니이다. 그것은 프로이드가 말한, 죽음충동이 에로스에 의해 추동되고 섞이고 혼재되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빌코’라는 공간은 여인들이 살고 있는 환상의 공간이자 실현되지 못한 빅토르의 욕망이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빌코’라는 장소로, 그 공간 자체로 인격화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간의 인물화. 이 작품이 성취해낸 것은 아마도 이런 점에서일 것이다.
댓글목록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세미나 후 오랜만의 뒷풀이.
'김동률'카페에서 서로의 떨리는 음성들이 빗소리에 섞여 들었다는.....
.맥주와 사과차의 달콤 쌉쓰름함이 찬조출연 했다는.....
기억, 혹은 엇갈린 마음들이 길을 찾고,
늦은 저녁, 각자의 집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는.......
전설의 시간.
(전설 출연자 : 삼월, 자연, 주호, 토라진)
ㅋㅋㅋㅋㅋㅋㅋ
주호님의 댓글
주호
전설이 되었군요. 기분 좋습니다.
역시 문학세미나는 뒷풀이가 메인?!
삼월님의 댓글
삼월
자연님이 뽑아놓은 문장들을 읽고 기억에 관해 생각하면서
이 글을 클릭하니 마침 제목이 '기억은 또 하나의, 지금'이군요.
절묘합니다.
올해가 하루 밖에는 남지 않은 밤,
기억의 힘에 대해, '기억과 우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라진님의 댓글
토라진
망각의 징검다리 사이에 흐르는 기억의 물결들을 들여다보는 요즈음입니다.
징검다리를 너무 성급하게 건너지 않기를.....기도하는 마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