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발제 - <안전, 영토, 인구> 6강
토라진
/ 2016-12-27
/ 조회 1,540
첨부파일
관련링크
본문
<푸코 세미나>, [안전, 영토, 인구]
<?xml:namespace prefix = o />
6강. 1978년 2월 15일
푸코는 사목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이집트, 아시리아, 히브리인들에게 중요했던 ‘사목’의 개념이 그리스인들에게는 그만큼 중요하기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리스 문헌과 사유에서 사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피고 있다. 또한 인간에 대한 통치인 사목의 역사와 그리스교도와의 밀접한 관련성을 밝힌다. 마지막으로는 ‘영혼의 통치’로서의 사목 권력을 특징을 지적하면서 서구에서 사목권력과 정치권력과 구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1) 그리스 문헌과 사유에서 목자의 은유는 희귀한 것이었다.
그리스에서 목자에 대해 다루어진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리아스]의 아가멤논과 [오뒷세이아]에서 ‘백성의 목자’라는 제의적 칭호로 왕을 지시하는 예가 있으며 피타고라스학파의 텍스트에서 법의 집행자로서 목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법의 집행자는 행정관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목자로서 열의와 배려로 충만한 자였다. 하지만 이런 피타고라스학파의 전통은 제한적인 전통일 뿐이었다. 전통적인 정치의 어휘로 이뤄진 텍스트들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아르키타스의 단편들을 살펴보면, 목자의 은유는 그리스인들에게서는 거의 볼 수 없고 히브리인들의 영향이 있는 곳에서만 나타난다. 하지만 들라트는 정치적 위인으로서의 목자라는 주제가 흔했다며 이에 반박했다. 그에 의하면 목자라는 주제는 수사법과 어휘에 등장하는 상투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준거는 전혀 없다. 이소크라테스가 [아레오파고스 연설]에서 목자의 의미와 가장 근접한 ‘행정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고전기의 정치 어휘에서 목자의 은유는 희귀한 은유였던 것이다.
2) 중대한 예외, 플라톤의 [정치가] : 행정관 개념 비판, 의사• 농부• 체육교사• 교육자에 적용된 목자의 은유
- [정치가]를 제외한 플라톤의 텍스트에 나타난 목자에 대한 은유
1) 시대의 불행이나 험난함이 인류의 조건을 바꿔버리기 이전에 인류에게 행복과 안락을 제공했던 신의 권력 양상 2) 현재의 험난한 시기의 행정관으로서의 목자 – 이는 경찰과 도시국가의 진정한 주인이나 입법자 사이에 있는 어중간한 자로 단지 관료로서 보조적 기능으로 표상될 뿐이다. 3)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 진정한 목자 - 오직 자신의 무리에 헌신할 뿐 자신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는 자(피타고라스 학파의 목자 개념을 참조)
- [정치가]에서 목자의 개념
실제로 정치는 목자–무리의 관계라는 형식에 부합되는 것일까? 플라톤은 아니라고 답한다. 정치가란 행위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특정한 인식과 기술로서 명령과 지휘를 하는 자이다. 요컨대 정치가는 인간의 목자, 즉 도시국가에서 인구를 구성하는 생명존재 무리의 목동인 것이다. 그런데 ‘행정관=목자’를 정의의 불변항으로 둔 채 대상을 생명존재로 다변화한다면 가능한 모든 동물을 분류할 수 있을 테고 일종의 동물 유형론으로 뻗어가 근본적인 물음을 진전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불변항이라고 여겨져 온 것을 가변항으로 취급해 이 문제를 다시 접근해보자. 그러면 목자는 일단 한 명이며 여러 가지 다른 임무를 수행한다는, 목자의 이런 단독성, 단일성에 대한 반론이 제기된다. 농민이나 빵집 주인, 의사, 교육자도 목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가 목자라고 주장할 수 있고 정치가의 경쟁자는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치(가)의 본질 자체를 파악할 것인가? 플라톤은 모든 종의 동물 중 특수한 무리인 인간의 무리가 있고 그 무리의 선두에 목자, 즉 신이 있다고 말한다. 위협도 곤란도 없는 이 행복한 무리를 신이 지휘하기 때문에 정치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정치는 세계가 역방향으로 돌아 역경의 시대가 시작될 때 나타난다. 신들은 후퇴했고 인간은 서로를 인도해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들(정치가들)은 신처럼 인간들 위에 있을 수 없다. 그들 자체는 인간의 일부이지 신이 그랬던 것처럼 목자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신-목자의 시대가 끝난 시기에 정치가의 역할과 함께 명령을 내리는 기술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살펴봐야 한다. 목자 모델 대신 직조 모델이 여기에서 대두된다. 한마디로 정치가는 직조공이다. 정치는 직조공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보조적이거나 예비적인 몇몇 행위에 근거해야만 한다. 정치가를 돕기 위한 보조적 기술 (전쟁, 판결, 웅변술 등)이 정치 수행의 조건이 되었으며, 직조공이 씨줄과 날줄을 엮는 것처럼 정치가는 교육에 의해 형성된 적절한 요소들을 서로 엮고 다양한 형태의 의견과 대립하는 사람들의 기질을 엮는다. 이때 도움을 주는 것이 공통 의견이라는 북(방추)이다. 그러므로 왕의 기술은 목자의 기술이 아니라 직조공의 기술, 사람들을 ‘융화와 우애에 기초한 공동체’로 결합시키는 기술이다. 플라톤은 이 경이로운 직물의 주름 속에 모든 국가의 모든 주민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플라톤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설령 사목이 존재한다고 하더라고 도시국가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활동이라는 것이었다.
3) 사목의 역사와 그리스도교의 불리불가능성 : 18세기까지 사목에서 일어난 변화와 위기
사목의 역사는 그리스도교와 함께 시작되었다. 교회로 구축된 종교 공동체는 구원을 이룬다는 구실로 현실의 삶에서 인간들을 통치한다. 한 종교가 교회로 제도화됨으로써 다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권력 장치가 형성된 것이다. 이 사목 권력의 형태는 기원후 2~3세기경부터 18세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고 통합되었으며 사목 권력에 대한 투쟁과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서구세계를 관통한, 사목성을 둘러싼 이 거대한 전투는 결국 사목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종교개혁으로 나뉜 개신교 세계와 반종교개혁 세계에도 사목은 존재했으며 오히려 사목 권력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봉건제에 반대하는 혁명은 존재했지만 사목에 반대하는 혁명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스교도 초기부터 사목은 단순히 필요한 제도로서만 여겨진 것이 아니었다. 사목에 방대한 사유가 존재했고, 이 사유는 법과 제도에 대한 성찰로서만이 아니라 이론적 성찰, 철학적 가치가 있는 성찰로서도 존재했다. 나지안소스의 성 그레고리우스는 사목을 통해 인간을 통치하는 이 기술을 ‘기술 중에 기술’, ‘지식 중의 지식’으로 정의한 최초의 인물이다. 이 정의는 ‘영혼의 통솔’, ‘영혼의 통치’로 18세기까지 전해진다.(성 그레고리우스 이전의 ‘기술의 기술’은 철학이었다) 즉 일상적 통치, 사목적 통치, 바로 이것이 1천 5백 년 동안 학문 중의 학문, 기술 중에 기술, 지식 중에 지식으로 고찰되었다.
히브리인들에게 목자는 신이었고 모든 것이 사목적이었다. 그러나 목자는 신이 인간과 맺은 다양한 관계의 양상 중 하나에 불과했다. 또한 히브리인들에게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사목제도가 없었다. 군주제의 창설자 다윗을 제외하면 누구도 인간의 목자라고 지칭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목자라는 주제는 신과 인간의 모든 관계를 포괄하며 자체의 법, 규정, 기술 절차를 갖는 사목 내에서 제도화되는 일정 유형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므로 사목은 독자적은 것, 포괄적인 것, 특유한 것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목자의 임무가 대두되었다. 목자는 무리를 신에게 데려가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이며 무리 전체뿐만 아니라 각각의 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이다. 모세의 주제(위험에 빠진 한 마리의 양의 구제하기 위해 무리 전체를 희생하기로 함)는 교회조직 전체의 근간이 된다. 최초의 목자는 분명히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사도들과 주교들 역시 목자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소교구의 조직을 설치하고 중세에 소교구의 명확한 영토성을 설정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주임사제를 목자로 볼 수 있는가가 문제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목자이다, 아니다의 끊임없는 논쟁이 있었지만, 어쨌든 교회의 조직 전체가 그리스도부터 교구사제나 주교에 이르기까지 사목제도라는 체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성사(聖事)의 권력, 세례의 권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영적 양식을 부여한다는 것과 재판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사실 재판권이야말로 병이나 스캔들로 무리 전체를 오염시킬지 모를 양을 추방할 수 있도록 주교에게 허락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권력은 사목 권력이다.
4) ‘영혼의 통치’의 특징 : 포괄적이고 교회조직과 외연을 같이 하며 정치권력과 구별되는 권력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사목적 통치의 특성은 무엇일까? 사목적이라 할 수 있는 권력은 그리스도교 시대 내내 정치권력과 분리되어 있었다. 이는 사목 권력이 영혼의 인도라는 차원에서 어떤 개입, 곧 일사의 품행과 생활의 관리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 재산, 부, 사물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을 포함하는 한에서만 개인의 영혼을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주교는 개인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를 돌봐야 하는 것을 보면, 사목 권력은 하늘을 목적으로 삼지만 땅의 권력 형태이다.
그렇지만 서방교회에는 정치권력과 완전히 구별되는 사목 권력이 남아 있다. 사목권력과 정치권력 사이에 일련의 간섭,지지, 중개, 충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목권력은 18세기까지 정치권력과 다른 특수한 권력으로 남아 있게 된다. 왕은 왕이고, 목자는 목자였다. 목자는 권력을 신비함 방식으로 행사하는 자로 남아 있었고, 왕은 권력을 제왕적인 방식으로 행사하는 자로 남아 있었다. 그리스도교 사목과 황제적 주권의 구별과 이질성은 서구의 특징 중 하나이다.
5) 서구 정치권력과 사목권력의 관계 문제 : 러시아 전통과의 비교
안드레이 시냐프스키가 고골에 관해 쓴 책에서 보면 고골은 차르가 무엇인지, 차르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정의하기 위해 러시아제국의 미래를 환기한다. 고골에 의하면 군주는 모든 이를 한 사람처럼 사랑해야 하며 나라 안의 모든 것을 자기 몸처럼 아껴야 한다. 군주가 군주로서(카이사르=시저=통치자)의 최고 의미를 획득하는 곳, 즉 군주가 그 자체로서 사랑이신 지존하신 분의 모습을 지상에서 획득하는 곳, 그곳에서만이 민중은 완치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구에서 주권자와 목자가 구별되어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서구에서 주권자는 카이사르이며 목자는 그리스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