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근대철학] 칸트의 비판 철학 :: 0727 후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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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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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비판철학 두번째 시간 (2장/3장초반)
칸트의 3대 비판 중 순수 이성 비판에서는 인식의 문제를, 실천 이성 비판에서는 도덕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지난 시간에 마무리 못했던 선험적, 초월적, 초재적 등 나올 때마다 헷갈리는 용어들부터 정리 했습니다. 책마다 다른 말로 번역되기도 하고 심지어 서로 교차해서 사용되어 더 헷갈립니다. 맥락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하지만 맥락이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 요즘 칸트 전집 번역에서 이 용어들에 대한 논쟁이 한창입니다. 이 용어들을 이해하는 것이 칸트, 나아가 들뢰즈의 철학을 이해하는 첫 단추로도 보입니다.
1. 선험적/초월적/초재적
용어 |
| 다른 번역어 | 반대의미 |
선험적 先驗的 | a priori 아 프라이오리 | 선천적 | 후험적 |
초월(론)적 超越論的 | tranzendental transcendental | 초험적, 초월적, 선험적 |
|
초재적 | transzendent | 초월적, 초험적 | 내재적
|
선험적은 선천적이라는 말로 쉽게 해석됩니다. 관건은 transzendental과 transzendent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초월론적(transzendental)과 초월적(transzendent)으로 구분되어 쓰입니다. 세미나 교재인 『칸트의 비판철학』의 텍스트를 기준으로 초월적(transzendental)과 초재적(transzendent)으로 정리 해봅니다.
초월적(transzendental)
이성 자신을 재판하는 재판관으로서의 이성, 즉 내재적 비판은 초월적이라 부르는 방법의 본질적인 원리이다. (서론/초월적 방법, 18쪽)
칸트는 ‘초월적(transzendental)’을 “대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 일반’에 관한 우리의 선험적(a priori) 개념들을 다루는 모든 인식”이라고 정의합니다. 내재적 비판은 이성 외적 요소를 통해 이성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에 의한 이성 비판입니다. 칸트에서 초월은 ‘이성 안에서 경험을 뛰어넘는’ 내재적 초월이라고 합니다. (18쪽 주석)
초재적(transzendent)
이성의 초재적 사용은 우리에게 지성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을 명령하는 것이고, 지성의 초월적 사용은 그저 단순히 지성이 자신의 고유한 한계를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 초월적 가상, 『칸트의 비판철학』 재인용 58쪽)
칸트는 능력의 내재적(규제적, 합법적)사용과 초재적(구성적, 비합법적) 사용을 구분합니다. 지성이 개념을 경험적 현상에만 적용해야만 하는데 그 대신 물자체에 적용하려는 것이 지성의 ‘초월적 사용’입니다. 이성이 지성 개념에 따르려 하지 않고 직접 대상에 적용되기를 시도하는 것이 ‘초재적 사용’입니다. 지성의 초월적 사용은 단지 지성이 상상력관의 관계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므로 그리 심각하지 않으나 이성의 초재적 사용은 이성 자신을 입법하는 지성의 한계를 뛰어 넘을 것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초월적은 자기 할일을 하면서 다른 것을 좀 더 해보려는 것, 그러니까 자기 영역이나 주어진 것을 아예 벗어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초재적은 자기 영역 자체를 벗어남, 넘어감이라는 뉘앙스로 보입니다. 이런 사변 이성의 착각과 이성이 야기하는 그릇된 문제를 비판하는 것이 순수 이성 비판의 요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초재적이란 능력들이 자신의 영역의 한계로 주어진 것을 넘어서는 비합법적 사용을 말합니다.
지난 세미나 교재였던 진은영샘 책만 보아도 transzendent를 초험적, transzendental을 선험적이라고 사용했습니다. “초월적인(transzendental) 것은 내재적이다.”는 일상의 언어 감각적으로는 아이러니하기 때문에 “선험적인(transzendental) 것은 내재적이다.”이라고 썼다고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용어들은 각각의 저자들이 그 용어를 사용하는 용법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기에 그 텍스트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할 듯합니다.
2. 공통감각
도덕법칙이 각자의 주관적인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 원리’로서 여기도록 우리에게 명령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각자의 주관적인 의지가 보편성을 담보할까요? 그것을 누가 보증 할까요?라는 물음이 생깁니다. “칸트는 도덕법칙은 치밀한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가장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이성 사용에 근거를 둔다.”고 자주 말했다고 합니다. 지성의 활동조차 아무런 선행하는 교육도, ‘과학도, 철학도’ 전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74쪽) 칸트가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에게는 선의지와 같은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칸트가 내세우는 것이 공통감각입니다. 이것은 경험론자들이 말하는 어떤 느낌이나 직관 같은 특수한 감각은 아닙니다. 칸트는 공통감각(sensus communis)을 공통적 인간지성으로 지성의 자발성이 발동되기 위한 근원적 전제로 봤습니다. ‘감각에 의존하는 공통성’(부록2,167쪽)인 공통감각은 비지성적 즉 지성 없는 상태의 공동체와 같습니다. 이 인식의 소통 가능성인 주관적 조건은 말 그대로 상식(commnon sense)입니다. 칸트가 자칭하는 최고의 철학은 상식 이상의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천적 관심에서 도덕적 공통감각은 이성의 입법 아래서 지성과 이성의 일치입니다. 순수 이성 비판에서는 인식의 논리적 공통감각이 지성의 입법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앞의 두 비판서에서는 공통감각이 능력들의 일치의 결과라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즉 임의적 전제로서만 이야길 할뿐, 일치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들뢰즈는 칸트가 말년의 저서 판단력 비판에서 숭고를 통해 일치의 발생을 밝힌다고 말합니다.
입법한다는 것은 자기의 원리를 자기 자신에게 강제하는 것입니다. 도덕적 실천에서 다른 것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이성의 판단 하에서 무엇이 옳은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럴 때 이성이 입법한다고 합니다. 칸트는 자유를 행위의 준칙을 보편적 입법 원리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자유는 감성적 자연의 인과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작할 수 있는 능력', 외부적 원인 없이도 가능해야 하는 능력입니다. 의지의 준칙의 보편성은 검증은 내용의 선악의 판단이 아닙니다. 지성의 형식에 따른 논리적인 검증만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도덕법칙은 감정이나 정념의 노예가 아닌 상태에서 스스로 시작하는 의지의 자유에서 수립되어야 합니다.
칸트는 도덕법칙을 통해 고대 스토아학파에서 추구했던 것처럼 덕과 행복의 일치를 이야기합니다. 자기입법, 자기가 따를 도덕법칙을 스스로 만드는 창조 작업입니다. 궁극의 목적은 도덕법칙을 통해 덕과 행복을 통일입니다. 초감성적 세계 즉 자신의 유토피아를 현실의 세계인 감성적 세계에서 실현해야하기 위해서입니다. 니체의 입법하는 자와 통하는 지점입니다. 칸트, 읽어 갈수록 매료되는 부분도 있고 너무 타이트해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알지도 못하면서 오해만 하고 있었던 분이네요^^
댓글목록
선우님의 댓글
선우잘 읽었어요 개구리 님. 시험 보기 전에 보고 싶은 모범생 정리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