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백래시> 0721 세미나 후기 +1
이사랑
/ 2018-08-09
/ 조회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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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남자 품귀 현상과 불모의 자궁_후기
여아 낙태율 최고점을 찍은 90년도에 태어난 나에게 남자 품귀 현상이란 단어는 참 낯설게 느껴진다. 미국에서의 남자 품귀 현상은 망상이었던 걸로 밝혀졌지만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여자가 많던 적건 여자 탓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결혼과 임신을 둘러싼 언론/미디어의 오지랖은 두 사회가 참 닮았다.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80~9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뱀띠, 용띠, 호랑이띠 여자는 재수없고 인생이 험난하며 드세고 시집을 못 간다는 미신이 있었다. 1990년생 백말띠 여아들에게 이 미신은 더 잔인하고 강하게 적용되었는데, 이때의 성비가 116이다. 정부가 보기에도 이때의 여아감별낙태가 특히나 심각했는지, 통계청은 1990년부터 출산 순위별 성비에 대해 통계를 내기 시작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출산을 하기 시작하면서, 출생아수는 급격히 증가하는데 성비는 붕괴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부산이나 대구 등 남아선호사상이 심한 지역은 1994년 320, 310의 셋째아이상 성비를 기록했다. 셋째아이 이상의 여자아이는 3명 중 2명이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자연적 성비는 105 정도이다.)
출처 : 페미위키 https://goo.gl/bXfACL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는 ‘잘 팔리는’ 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결혼 시장에서 내 존재감을 어필하기 위해, 좋은 신부감이 되기 위해, 남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이런 저런 강의도 다녔었다. 나라는 사람의 교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몸무게를 줄이고, 인형처럼 웃고,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옷들을 입고.. ‘나’라는 사람은 없어지게 된다. 나중에 알게 됐다. 결혼시장에 남자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여아감별낙태가 있었다는 것을. 내 나이 또래 남자 6명중 하나는 결혼을 못한다는 글을 읽었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내가 선택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냥, 당연히, 의심 없이, 나는 선택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이미지와 생각이 만들어지는 데에 미디어와 언론의 역할이 크다. 눈 앞의 현실보다 사실과는 전혀 다른 편견을 믿게 된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속에 다른 쪽의 상상력은 힘을 잃고 만다.
아이를 낳고 싶었던 때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모성애에 관한 다큐를 공부하듯이 봤다. 엄마로부터 받은 트라우마들을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자식에게 실행하게 된다는 즉, 모성애는 대물림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다큐에 아빠는 등장하지 않는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은 엄마 홀로 해야하고, 그 책임 또한 엄마에게 있다. 요즈음은 세상이 변해서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많지만 여전히 그 책임은 엄마에게로 향한다. 맘충이라는 신조어는 우리 사회를 제대로 반영한다.
책에서는 편견이 만들어지는 과정, 만들어진 편견이 공고히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너무 뻔한 패턴이 반복된다. 근거자료가 없는 가설들은 삽시간에 퍼지고 진실이 되어버린다. 이 진실을 거절하기는 힘들다. 결혼/임신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사회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비혼을 결심한 이후 나는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을 경험했다. 더이상 결혼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아닐 때, 나는 좀 더 ‘나’일 수 있었다.
이제서야 백래시가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지, 내가 어떻게 휘둘려왔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백래시는 파도가 아니다. 조금씩 젖어 드는 가랑비다. 최근에 일어나는 일들은 한층 더 복잡하다. 미투와 무고죄, 불법촬영과 워마드, 퀴어와 페미니즘, 성산업과 성노동.. 백래시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 책에서의 사례는 통계치로 금방 뒤집어질 가설들이었다면,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수치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교묘하게 파고드는 백래시에 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시해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소리님의 댓글
소리
정말 깊이 와닿는 후기였습니다. 백래시는 파도가 아니라 조금씩 젖어 드는 가랑비라는 표현이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여혐의 모습이 그러하듯, 백래시의 모습도 그렇게 교묘하게 천천히 나를 잠식해가고, 그렇게 '나'부터 바꿔갑니다.
현재의 사회를 찬찬히 살펴보면 그 모습이 30년 전 과거의 미국의 모습과, 책에 나오는 모습과 소름돋게도 닮아있었습니다.
꼭 시나리오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여혐에는 좌우, 서동양이 따로 없나봅니다.
이럴수록 우리가 우리 안의 여혐과 더욱 솔직하게 마주하고, 불편하고 힘겨운 진실을 감내해야만 하겠지요.
나에게서부터 솔직해지기 위해 우리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니까요.
말은 참 쉬운데, 이처럼 어려운게 또 없습니다. 타인에게 솔직하기는 쉽고, 타인의 모습을 보기도 쉬운데
여혐의 장막을 헤치고 나에게 솔직하고, 나를 바라보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천천히 한 발 한 발 나아가 봅시다. 함께 책을 읽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