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알레프 12월 27일 세미나 후기 +3
장재원
/ 2016-12-26
/ 조회 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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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후기
2016년의 마지막 보르헤스 세미나에서 무긍은 제때 발제문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의 신탁에 의한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그것은 아직까지 긴장의 끊을 놓을 수 없는 몇몇 미발제자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역시 ‘매는 먼저 맞는게 낫다’라는 고대 수메르인들의 격언을 떠올리게 했는데, 후기 역시 지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실때문에 나는 예수생일을 긴장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당일의 허술한듯 하면서도 치밀하게 진행되었던 뒷풀이의 기억을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다시 한번 발제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알레프의 번역자 중 한사람인 송병선의 오역, 또는 미흡한 해설을 공격할 반박문의 작성자로 셀프 임명되었는데 이것은 퇼른으로 보내진 반박문의 사본이다.
산악 지대에서 수레바퀴와 뱀은 이미 십자가를 대체한 상태였다. - p.45
역자 송병선은 각주를 통해 여기서의 뱀이 에덴동산의 유혹자, 루시퍼, 악의 정신을 나타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뱀의 의미를 십자가에 대응하는 악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너무 나이브한 해석이다. 환상파가 주장하는 순환과 영원의 맥락으로 볼 때 여기서의 뱀은 영원회귀를 상징하는 꼬리를 물고 있는 뱀, ouroboros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요한은 아마도 프로크루스테스식의 주장과 뱀보다 더 무시무시한 테리아카로 환상파 교도들을 바로잡을 작정이었다. - p.46
각주는 테리아카를 아편성 해독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어 triaca는 일반명사일 때 해독제, 약을 뜻하며 영문판에서도 « remedies more terrible than the Serpent itself »라고 하며 remedy로 번역해놓았다. 물론 역자의 설명처럼 과거 triaca라는 이름의 마약성 해독제가 존재한 사실은 있지만 여기서는 (뱀의) 독에 대응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해독제라고 보는것이 더 자연스럽다.
우상 숭배자가 ‘자연의 빛’을 더욱 의미 있게 여긴다는 불명예스러운 사실을 비난했다. - p.48
여기서 자연의 빛이 단순히 ‘자연광’을 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은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스페인어 원문을 참고해서 약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는데, 보르헤스는 원문에서 ‘자연의 빛’을 굳이 라틴어인 lumen naturæ로 표기하고 있다. 우리는 데카르트의 저작에서 이와 동일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에게 자연의 빛이란 사물의 존재를 인지하고 의심하며 확신에 이를 수 있게 밝혀주는 신의 부여한 빛, 즉 이성의 빛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오리게네스처럼 수족을 절단했으며, 또 다른……. - p.52
오리게네스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금욕주의 기독교 교부로 성욕을 절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 거세를 했다. 하지만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자기 거세가 중범죄로 다루어졌으며, 다른 사제들은 정신적인 단련을 통해 금욕을 수행해온데 비해 오리게네스는 비교적 쉬운 방법을 택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수족을 절단했다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동사 mutilarse는 불구가 되다, 팔다리를 잃다라는 의미이지만 ‘오리게네스 처럼’ 이라는 수식 때문에 자른 부위를 ’수족’으로 한정짓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연금술 서적에는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동일하고, …… - p.52
연금술 서적은 los libros herméticos(스페인어), the hermetic books(영어)의 번역인데 헤르메스주의 서적라고 번역하는 것이 의미상 더 적절하다. 헤르메스주의는 실제로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상응하고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는 것과 상응한다. 그리하여 하나인 존재의 기적이 이루어진다.”와 같은 주장을 하기도 했다.
헤르메스주의가 연금술 또한 다루었기 때문에 hermetic이 연금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연금술로 번역하는 것은 문맥상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의미상으로도 너무 한정적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미흡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었으나 정작 보르헤스에게는 그의 해석이나 나의 해석 모두 ‘니들 둘 다 그거 아닌데’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쯤에서 2016년의 후기는 마칠까 한다. 2017년의 후기는 2016년 후기의 반복일 수도 있지만 아닐수도 있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재원님의 후기를 2016 마지막에 보게 됩니다. 보르헤스의 해석에
깊이를 더해주었던 스페인 원어 해석과 더불어 다양한 가능성이 신선했습니다.
뱀이 십자가를 대체했다는 대목에서 니체와 완벽히 겹쳐진다고 생각합니다.
니체는 선악의 기준으로 양심을 심판하고, 십자가로 원죄를 강요한는 기독교에 맞섰지요.
그리고 인간의 자기극복을 위한 열쇠로 영원회귀를 가져왔고, 뱀은 그것의 상징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상 숭배자가 ‘자연의 빛’을 더욱 의미 있게 여긴다'는 것에서
(재원님의 글이 짤려서 뒷부분은 읽을 수 없지만서도...)
자연의 빛이란, 신의 빛과 대칭적인 의미에서 쓰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예수생일을 긴장하게 만들었다고 하니... 후후후 그도 나쁘지 않네요 쿄쿄쿄
보르헤스를 마지막으로 재원님 못본다고 하니 벌써부터 그리워지네요ㅠㅠ
이응님의 댓글
이응
튈른으로 보내진 반박문의 사본이군요 ㅋ 반박문이 너무 훌륭.
막상 튈른에 계신 보르헤스는 "니들 둘 다 맞아ㅋ" 라며 좋아하셨을듯.
저는 역자의 해설이 있어서 보르헤스의 농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자세한 해설이 미결정의 여백을 채워버리는 아쉬움도 있네요.
동시에 그걸 발견하고 반박하는 재미도 있구요.
허술하고 치밀했던 뒷풀이 후기도 올려주시나요? ㅋ_ㅋ
2017년 보르헤스도 기대기대 ~
벌어야했어님의 댓글
벌어야했어
이게 다 바벨탑 때문입니다. ㅋ
게으른 탓이겠지만, 번역된 텍스트를 볼 때 어딘가 찝찝해도 웬만하면 그냥 넘기고 특별히 계기가 없으면 그대로 잊고 마는데, 그렇게 참 많은 것을 놓치는 것 같아요.
보르헤스 텍스트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래도 재원님 덕분에 그냥 놓치고 지나칠 뻔했던 부분들 다시 한번 보게 되네요.
2017년의 후기 기대하고 있을게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