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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후기... 보르헤스 더듬어 짜깁기 하기 +2
가이아 / 2016-12-18 / 조회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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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르헤스는... 황홀하다

'황'은 너무 밝아서 흐릿한 상태이고, '홀'은 어둠 속에서 흐릿해진 상태라 한다.

보르헤스 작품의 그 누구도 보르헤스가 아니지만,  모두가 보르헤스이기도 하다.

이제 '픽션들'의 마지막 부분을 공부하며 나는 어둠 속에서 또는 빛 속에서 그의 조그만 일부분을 본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내가 본 보르헤스는 다른 이가 본 보르헤스와는 다르다.

우리는 자신만의 경험과 인식치로 자신만의 보르헤스를 보고 느낄 뿐이다.

우리는 때로 어긋나고 서로 다른 보르헤스를 말하며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타인이 답답하기도 하다.

보르헤스도 경험이 말로 표현될 수 없음을 이렇게 말한다.

'말이란 함께 공유된 기억을 필요로 하는 상징이다.'..................[의회]

게다가 보르헤스는 작품 곳곳에 끝없이 갈라지는 미로를 만들고  거울을 설치하고 안개를 뿌려 두어서

우리는 각자가 만난 보르헤스를 이야기하며 짜깁기해 볼 뿐이다!!

 

2. 보르헤스는... 냉정한가?

보르헤스 작품은 아무리 읽어도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다.

단편적인 특징이나 상황이 제시될 뿐 그를 둘러싼 환경이나 심리묘사는 아예 없고 생김새 조차도 모호하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혼자만의 작업을 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또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고,

심지어 불사조 교파처럼 아무런 특징도 없고 공통된 하나의 기억도 없다.

나는 그 누구와도 동화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가 결국엔 뒷통수를 맞는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다.

'자의적이며 추측적이지 않은 우주의 분류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주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주라는 야심적인 말이 보여주는 유기적이며 단일적인 의미가 담긴 우주가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또 보르헤스는 흄을 인용하여

'세상은 아마도 어떤 유치한 신이 자신의 작업이 결함투성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만들다가 포기한 초보적인 스케치다.'

아마도 보르헤스에게 세계는 신이 만든 커다란 혼란이고 미로이며 환상인 것이다.

유치한 신이 만든 미로 같은 세상에서

세상을 설명해 줄 단 한권의 책 같은 건 없는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남부]에서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침이나 살아 있다는 사실에 비하자면 훨씬 덜 경이로운 것이다.

그러한 행복감이 그로 하여금 셰헤라자데와 허망한 기적들로부터 눈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달만은 책을 덮었고, 그저 살아 있도록 자신을 내버려 두었다.'

내가 보르헤스에게서 찾은 해답은 여기까지이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말이란 함께 공유된 기억을 필요로 하는 상징이다.
:: 말이란 상징일 뿐이다, 함께 공유된 기억을 필요로 하는.

'자의적이며 추측적이지 않은 우주'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주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주라는 야심적인 말이 보여주는 '유기적이며 단일한 우주'가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 우주란 '유기적이며 단일한 우주'가 아니라, '자의적이며 추측적인 우주'일 뿐이다,

세상은 아마도 어떤 유치한 신이 자신의 작업이 결함투성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만들다가 포기한 초보적인 스케치다.
:: 세상은 유치한 어떤 신이 만든 결함투성이의 작업이며 초보적인 스케치다.

보르헤스는 '절대적 진리, 완전한 신, 자아의 정체성, 직선적인 시간'에 대한 조롱이며,
'아침이나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 삶의 자유로움에 대한 찬사입니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가로지르는 가이아의 해답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_^

벌어야했어님의 댓글

벌어야했어

말이란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을 필요로 하는 상징이다...
정말 깊이 와 닿는 말입니다. 이 말이 상징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수없이 많으니까요.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부자와 빈자... 서로 공유할 수 없는 삶의 기억들을 지닌 이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대화는 자주 쉽게 어그러지고 말지요.
그런데요,
이는 단지 우리가 진정 소통을 원할 때 좀 더 노력해야 함을 말해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의 상징의 바탕이 되지만 공유할 수 없는 기억이 언제나 존재할 수 있음을 잊지 않고, 대화가 어그러지려할 때 친절함과 상상력으로 대화의 틈을 메우려 노력해야 함을요.
그래도 완벽한 소통은 쉽지 않을 것이고, 소통은 결국 실패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 이러한 노력 속에 관계는 좀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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