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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좀비소설을 쓰자 (11/23 세미나 후기) +2
삼월 / 2016-11-29 / 조회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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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르 뿌슈낀, 니꼴라이 고골, 레프 똘스또이, 안똔 체호프, 이렇게 네 명의 작가들을 만났다. 춥고 황량한 땅 러시아에서 이들이 백 년 전, 혹은 이백 년 전에 보낸 위로들을 읽는다. 러시아의 바람은 이들의 피부와 폐 속으로 스며든다. 인간이라는 것이 놀라워서, 그렇게 스며든 바람을 어느새 데운다. 들숨은 에이는 듯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날숨은 온기와 함께 부드러운 습기를 머금고 있다. 그 부옇고 미지근한 형상이 글자를 이루어 내 손 아래 닿는다. 이게 리얼리즘이다. 이 세계에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유령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는 리얼리즘.

 

  솔직히 말하면 뿌슈낀은 조금 무겁고, 똘스또이의 논쟁과 교훈은 지루하다. 그래도 뿌슈낀의 <한 발>은 여전히 묵직하다. ‘총알은 무겁거든, 암만 해도 이건 결투가 아니라 살인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나는 무기 없는 사람을 겨냥하는 데 익숙하질 않아서 말이야.’ 이 대사는 어떤 무기보다 묵직해서 싫어할 수가 없다. 결투와 살인을 구분하는 명민함이 그 무게를 받아들이게 한다. 똘스또이는 교장선생처럼 오래 설교를 하지만(심지어 단편소설에서도!), 사실 틀린 말은 없다. <무도회가 끝난 뒤> 삶이 시작된다는 말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누군가의 잔인한 이면을 볼 때 우리가 수치심을 느끼고, 그 수치심이 어떤 아름다움이나 사랑도 흐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없다. 맞는 말이다. 조금 지루하지만,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남는 이는 고골과 체호프이다. 누군가 왜냐고 묻는다면, 사실 이건 정말로 계급을 반영한 취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나는 고골과 체호프가 가진 감성을 표현할 다른 말들을 찾기가 어렵다. 러시아에서 농노가 해방되기 일 년 전 농노의 자식으로 태어난 체호프가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연민은 귀족이었던 똘스또이가 보여주는 연민과는 다르다. 그 시선의 각도와 거기에 담긴 온도를 표현할 말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찾기가 힘들다. 체호프 자신은 조상과는 다르게 의사로, 그리고 작가로 지식인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그가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진 가난한 마부의 이야기를 전할 때, 우리는 그 슬픔이 똘스또이의 글에서처럼 유창하게 표현되지 않는 것을 느낀다. 슬픔은 제대로 표현되지 않기에 진정 슬픈 무엇이 된다. 무수하게 반복되는 말줄임표들이 온통 목 메임과 흐느낌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자신의 말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마지막 문장의 뒤에도 말줄임표가 따라붙는다. 슬픔의 본질을 꿰뚫는 이 감성에서 나는 모든 소수자, 이방인, 병자의 냄새를 맡는다.

 

  그 냄새는 고골에게서도 숨길 수 없다. 시골마을에서 당시 러시아의 최대도시 뻬쩨르부르그로 온 고골은 화려한 도시의 어둠 속에서 유령의 냄새를 맡는다. 먼저 관청의 9급 서기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와 그의 이름에서 무엇인가를 엿본다. 이 이름의 뜻은 아까끼의 아들 아까끼이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매한가지로 이름도 필요 없이 유령처럼 살아가는 곳이 바로 대도시이다. 몇 달 동안 저녁을 굶은 돈으로 마련한 <외투>를 강도에게 빼앗긴 아까끼와, 그의 외투를 재봉한 가난한 애꾸눈 재봉사, 아까끼의 외투를 빼앗은 강도와 죽은 아까끼 대신 관청의 서기로 들어온 또 다른 남자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유령의 냄새가 난다.

 

  이들은 유령이 되었을 때 비로소 누군가에게 두려운 존재가 된다. 도시는 이들의 생존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이들이 공격성을 드러내는 순간 괴물로 규정한다. 유령이나 좀비 같은 괴물. 도시가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다. 화려한 도시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기 때문이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마지막 날숨이 토해낸 괴물, 그 부옇고 미지근한 형상만이 고위층 인사의 외투를 빼앗고 어깨를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의 리얼리즘에 대해 이야기하자. 유령이 된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이야기를 단지 환상으로 치부하지 말자. 그리고 우리 스스로 괴물이 되자. 촛불좀비가 되든, 뭐가 되든. 그것도 아니면 좀비소설을 쓰자. 죽여도 죽지 않고, 징글징글하고 끈덕지게 달라붙는 좀비 이야기를 써서 누군가에게 겁을 주자.

 

댓글목록

훔볼트펭귄님의 댓글

훔볼트펭귄

얼마 전, 동생네 집들이 갔다가 조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더랬는데 사진 컨셉이 좀비였거든요. ㅎㅎ
우리 스스로 괴물이 되자. 좀비가 되자. 누군가에게 겁을 주자.
요거이 확 꽂히네요^^

삼월님의 댓글

삼월 댓글의 댓글

좀비로 변한 훔볼트펭귄님을 상상해봅니다. ㅎㅎ
좀비가 되지 못하면 좀비가 되는 상상을 글로 남기면 되니,
이럴 때 문학은 얼마나 강한 것인가요!
허무와 좌절을 물리치는 힘 또한 그 강함 속에 포함되어 있겠지요.
확 꽂히는 공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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