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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104 후기 +1
유택 / 2016-11-08 / 조회 1,309 

본문

https://www.youtube.com/watch?v=QYtb4aCJN2c

노래 한곡~


정작 발제와 후기 본인 주간에 제가 너무 바빠서 어째 꼼짝을 못하겠네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가 앞 번 책들에 비해 어려운 거 맞죠? ㅎㅎ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말로 나와지지가 않네요. 이번주 분량도 아직 못 읽었는데 첩첩이 근무라 조심스레 금요일까지는 이번주 세미나 분량은 다 읽을 수 있을거라 기원해봅니다. 지난주 뒷풀이 하면서 꺼낸 이야기인데 한 번 적어볼게요.

 

수유너머N에서 토요인문학(장소성의 정치철학) 강좌를 매주 토요일 오후에 듣고 있는데요. 지난주는 <재일시인 김시종, 디아스포라를 산다는 것>에 대한 주제로 재일시인 김시종의 작품 세계와 역사/삶을 공부하는 시간이었어요. 예습 차원으로 소개해준 여러 책 중에 눈에 띄는 책은, 윤여일 번역의 <조선과 일본에 살다 : 나에게 8.15 4.3이란 무엇이었나>라는 자전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윤여일의 3권짜리 여행책(여행의 사고/돌베개)을 몇 년전 우연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였어요. 사실 김시종의 시집을 직접 읽는게 제일 좋은데, 워낙 시는 읽어도 이해를 못하니 시인의 삶이라도 알고 수업을 듣자는 생각이었죠.

 

한 장 한 장 자전책을 조심조심 경건하게 읽어나가는데.. 왜 이리 김시종의 이 책이 거북스러울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거북하지? 왜 이리 부담스럽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황국소년으로 제주도에서 자라서 좌익 청년기와 4.3을 겪으며 역사의 최전방에서 온 몸으로 현대사를 관통한 사람, 그리고 일본으로 망명, 그리고 지금까지 일본에서 (일본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본어로 자신의 작품세계 그리고 이 자전책을 일본어로(한국말을 못 하심) 적어 내려갔다는 것. 20년전 <태백산맥> <아리랑>의 서사에 무척이나 감동을 하는 나였는데 나 지금 왜 이러지? 이런 의아함도 생기면서.

 

며칠전 은유의 한겨레 칼럼을 인상깊게 읽었는데 거기에서 이런 말이 나왔어요.

 

일전에 남성 철학자의 책을 읽었는데 서문에는 방대한 저서를 집필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걸렸고 몸이 어떻게 탈진됐는지 병명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빵집 아줌마 얘기를 들었다. 김밥집에서 수년간 일한 그는 김밥을 하도 말아 손목 관절이 손상돼 그만두고 시장통 빵집에 겨우 취직했다. 담고 거스름돈 내주는 일이 망가진 손목으로 있는 최소한의 동작인 탓이다. 어떤 직업은 노동의 결과물이 보존되고 과정의 수고로움이 기록된다. 존경과 동경을 받는다. 어떤 직업은 아니다. 노동의 성과가 사라지고 고충이 음소거된다. 폄하와 무시를 당한다. 사회적 무지와 몰이해. 그것이 직업의 귀천을 만들고 구조적 불평등을 낳는 아닐까. 대부분의 직업이, 몸이 축난다는 점에서 단순직이고, 자기가 있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전문직이다. 누드모델 응시하듯 누군가를 깊게 들여다본 없는 우리는, 서로 동등한 동료시민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원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7850.html

 

김시종 시인도 장결핵으로 책을 집필하면서 너무 힘겨웠고 심지어 신장결핵으로 신장을 제거하며고생을 한 이야기까지 책 뒷 편에 아니나 다를까 탁 나와서 깜짝 놀랬답니다. 자전책을 읽다가 하도 불편해서 신문을 뒤적이다가 은유의 이 칼럼을 읽고 탁~ 소리 나게 탁자를 쳤어요. 그래 이 느낌.. 내가 말하지 못했던 이 말! ^^;;; 하도 답답해서 삼월이한테 물어보니 말하는 새로운 주체/계급/주제의 탄생을 말하며 푸코 세미나와 연관성이 있다고도 하네요. 깜짝 놀람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우리는 그림 속의 여자를 보며 말하지만,
시인은 그림 속의 여자가 우리를 보며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선과 대화의 대상이었던 여자가 어느새 말하는 새로운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인종이든, 민족이든, 계급이든, 중요한 점은 지금껏 말하는 주체가 아니었던 누군가가 말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말하는 주체가 달라지면, 말하는 주제도 달라집니다.
이것을 반란이고 전쟁이라고 한다면, 이는 불행한 이들이 기존질서에 도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적 필연성에 따라 사회질서에 대답하며, 절대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모든 소수자와 개별인간들은 그렇게 사회질서를 만들고, 인간에 대한 이해범위를 넓히는 데 기여해왔을 겁니다.
우리도 자신의 진실을 말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을 테고요.
그것이 혹 김밥집에서 일하다가 손목관절이 망가졌다는 흔하고 빤한 이야기일지라도.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누군가의 진실들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좋은 칼럼을 소개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지난 주 발제가 유독 어려웠던 듯 한데 제대로 걸려서 고생하셨습니다.
도무지 방심할 틈을 주지 않는 푸코선생!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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