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창비세계문학-일본편 <이상한 소리> 10/12 발제문 +2
삼월
/ 2016-10-19
/ 조회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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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 단편선 - 일본편 1 사실과 독백의 문학
1. 쿠니끼다 돗뽀 (1871 ~ 1908) 《대나무 쪽문》
회사원 오오바 신조오는 도쿄 교외에서 노모와 아내, 딸, 처제 그리고 하녀인 오또꾸와 살고 있다. 옆집에는 아주 가난한 정원사 부부가 살면서 이 집에서 물을 얻어 쓰고 있었다. 어느 날 정원사 부부가 드나들기 편하게 쪽문을 하나 내달라고 하여 허락하니, 정원사는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쪽문을 만들어 달아놓는다. 하녀 오또꾸는 정원사의 아내 오겐과 즐겨 수다를 떨지만, 가난한 정원사 부부에게 인정을 베풀지는 않는다. 어느 날 오오바네서 탄을 훔치다가 들킨 오겐은 부끄러움 속에 괴로워한다. 그날 밤 오겐이 남편에게 가난을 한탄하며 부지런히 살기를 종용하지만, 남편은 뛰쳐나가 탄 자루를 훔쳐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겐은 목을 매어 자살하고, 정원사는 그 후에도 다른 아내를 얻어 비슷하게 살아간다.
- 메이지유신(1853) 이후 일본사회의 계급문제, 가난과 인간의 심리에 대한 따가운 통찰
2. 나쯔메 소오세끼 (1867 ~ 1946) 《이상한 소리》
나는 옆 병실에서 밤마다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우연히 다시 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마침 옆 병실의 간호사를 만나게 된다. 간호사는 오히려 나의 병실에서 새벽마다 들리던 소리에 대해 묻는다. 역습을 당한 나는 그 소리에 대해 말해주고, 옆 병실의 소리에 대해서도 묻는다. 대수롭지 않는 대답을 들은 나는 죽은 그 남자와 살아있는 자신의 차이에 대해 생각한다.
- 나쯔메 소오세끼의 유려한 문장, 심각한 와중에도 아이러니와 함께 찍는 마침표
3. 시가 나오야 (1883 ~ 1971) 《오오쯔 준끼찌》
오오쯔 준끼찌는 감상에 사로잡힌, 게으르고 무능력한 대학생이다. 아버지를 비롯한 기성세대에 반항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해낼 것이라 장담하지만, 실은 무엇에도 자신이 없다. 사랑과 연애에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먼저 호감을 표시해도 망설이며, 핑계를 댄다. 사교에 서툴고 까다로운 척하지만, 사실은 다른 남자들과 경쟁하는 게 두렵다. 집에만 쳐박혀 있던 오오쯔는 느닷없이 하녀 찌요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청혼한다. 찌요가 별로 예쁘지 않고 신분이 낮아 망설였으나, 이를 통해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제대로 반항해보려 한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강하게 반대할수록 오오쯔의 흥분은 커진다. 오오쯔와 친구는 이 일을 계기로 청년기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자신들의 야심과 현실 사이의 불균형에 대해 생각한다. 찌요를 진정 사랑하지는 않는 오오쯔는 가족들의 반대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무시당한다는 모멸감만을 느낀다.
- 청년기의 찌질함에 대한 공감,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세대 부모들에 대한 자식 세대들의 열등감, 부모세대에 대한 반동으로 오오쯔에게서 미약하게 드러나는 서양 문물과 군사문화에 대한 거부감
4. 미야모또 유리꼬 (1899 ~ 1951)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마을 지주의 딸인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가난한 아이들은 그 동정을 불쾌해하며 나를 공격한다. 가난한 어른들도 필요할 때는 아첨하며 도움을 요청하지만, 죄책감 없이 도둑질을 하는 등 건실한 삶을 살려는 의지가 없다. 나는 누군가가 잘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이 굶주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 믿으면서, 어떻게 하면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소한 자선을 베풀던 나의 시도는 대부분 실패하여 마을의 가난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도둑만 들어났을 뿐이다. 의기소침해진 나는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찬찬히 지켜보며, 자신이 그들과 같아질 수 없다고 판단한다. 병든 딸을 방치하고 사치품을 사들이는 부부, 가난과 장애의 대물림 앞에 모든 희망을 버린 노파, 돈 몇 푼 때문에 아들을 비방하고 다니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회의감을 느낀다.
그때 읍내의 중산층 부인들이 교회에서 모금을 시작하여 마을의 가난한 이들을 돕는 행사를 연다. 곱게 단장한 부인들이 고상하게 동정을 표시하며 돈 봉투를 건네고, 가난한 이들은 봉투를 받아들기 무섭게 뒤에서 그들을 조롱하기 시작한다. 존경과 감사를 받길 원했던 부인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난다. 이를 본 나는 동정과 자선에 허영과 자만이 섞여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부인들이 마을에 뿌린 돈으로 마을의 술집은 성황을 이루고, 광인 하나가 주정뱅이가 되어 태풍 속에서 늪에 빠져 죽는다. 돈만 밝히는 이가 아닌 예전 따뜻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병자 하나도 숲에서 목을 매어죽는다. 나는 그들의 죽음을 보고 그들의 삶이 죽음보다 무엇이 나은가 고민한다. 또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과 고민이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더불어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그들을 위해 할 일을 더 찾아보겠다고 다짐한다.
- 가난한 이들의 삶과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 그리고 나의 고민과 독백이 이어지는 부조화 속의 조화, 교훈적이지만 솔직한 표현들
5. 사실과 독백이 가진 힘
대부분의 문학평론가나 이론가들은 사소설의 형태가 일본만의 독특한 문학양식이라고 말한다. 동시대 서구의 자연주의 문학에 대한 오해가 이 사소설이라는 형태를 낳았다는 것이다. 또 현재까지 일본 문학은 이 사소설이 지배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소설이라 불리는 일본의 근대소설들을 읽어보면 동시대 유럽이나 러시아의 문학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느낄 수 있다. 시점도 단순히 1인칭의 고백형식이 아니라, 도스또옙스끼처럼 1인칭과 전지적 시점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소설도 있다. 이는 근대문학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의 특징이다.
일본 사소설의 특징으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회나 정치에 대한 설명 없이 개인의 체험 위주로 기술한다는 점을 꼽는데, 사실 개인의 체험에는 언제나 사회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있다. 급격한 경제발전으로 인한 계급 양극화와 그로 인한 갈등,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 근대화를 이끈 세대와 그들의 자식 세대가 겪는 갈등, 서구 문물의 활발한 보급과 군사주의 문화에 대해 느끼는 당시 일본인들의 정서가 글 속에 잘 녹아 있다. 별 이유 없이 군인들에게 호통을 치는 《오오쯔 준끼찌》의 주인공에게서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미약한 반감을 읽을 수 있고, 1년 사이에 탄값이 두 배로 올랐다고 하는 《대나무 쪽문》의 기술을 통해 전쟁 태세로 돌입한 당시 일본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사실을 기록하는 일 자체가 사회에 대한 기술이고, 이것이 어떤 형태로든 사회의 진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엥겔스의 ‘리얼리즘의 승리’가 일본 사소설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일본 소설들은 독백의 형태로 인간의 내면을 낱낱이 털어놓고, 샅샅이 훑어본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타인의 행동과 감정에 대해서도 냉혹하게 느껴질 정도로 날카롭게 표현한다. 때문에 변화무쌍한 줄거리나 복잡한 사건이 없어도 우리는 이 소설들에서 진한 삶의 아이러니나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다.
* 늦었습니다. 후기는 내일 중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흑흑
댓글목록
희음님의 댓글
희음
새 세미나 문을 열기에 차고 넘쳤던 정갈하고 아름다운 발제문과 발제, 그리고 진행에 박수를 보냅니다.
잊을만 하면 하트가 새롭게 뿅뿅 솟아나게 하는 반장님이라니까요!^^
새로 오신 훔볼트펭귄 님도 너무 환영합니다. 늘 맛난 과일도 준비해 오시고 넉넉한 웃음과 말씀 더해 주셔서 고맙고요~
삼월님의 댓글
삼월
늘 열심히 세미나에 참여하고, 칭찬도 아주 열심히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열심 속에 희음 님의 진짜 매력이 있는 듯도 합니다. 열심을 일상처럼 하는 사람!
며칠째 후기에 목을 매고 있는 이유는
사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니 제 발제문보다 그날 우리가 세미나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이 참 좋았어서
그 이야기들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았는가 싶은 마음이 많이 생겨서 그랬습니다.
그날도 희음님이 열심히 목소리를 보태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좋은 건 기록해서 남겨놔야 하는데...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