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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진리와 방법> 10/5 세미나 발제문
삼월 / 2016-10-11 / 조회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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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과학에서 인문주의 전통이 지니는 의미

    

 

2) 인문주의의 주요개념들

 

③ 판단력

18세기 독일에서 발전한 공통감각 개념은 판단력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공통 오성’이라고도 불리는 ‘건전한 인간 오성’은 사실상 판단력을 통해 그 성격이 규정된다. 판단력의 유무는 분류와 적용의 능력으로 알 수 있다. 18세기 ‘판단력’이라는 단어의 도입은 판단 개념을 재현하기 위해서였는데, 판단 개념은 정신의 기본적 덕으로 간주될 수 있다. 영국의 도덕철학자들은 도덕적 내지 미적 판단이 감성의 성격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특수자를 보편자에 포섭시키는 판단력, 즉 어떤 것을 규칙의 한 경우로 인식하는 판단력의 활동은 논리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칸트의 지적처럼 판단력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훈련되는 것이며, 일종의 감각과 같은 능력이다.

독일의 계몽철학은 판단력을 정신의 고차적 능력이 아닌 저급한 인식능력으로 여겼다. 이는 스콜라철학의 전통 계승이고, 미학의 입장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미학’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바움가르텐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판단력이 인식하는 것은 감각적 개체이고 개개의 사물이며, 판단력은 개개의 사물에서 그것의 완전성 내지 불완전성을 판단한다. 중요한 것은 보편적인 것의 작용이 아니라 내적 일치이다. 칸트가 말한 감성적 판단 작용이 여기서 나타난다. 어떤 개념도 미리 주어져 있지 않고, 개체는 ‘내재적으로’ 판단된다. 바움가르텐이 감성적 판단력을 취미라고 부른다면, 칸트는 완전성에 대한 감각적 판단을 취미라고 부른다.

규정적 판단력과 반성적 판단력에 대한 칸트의 구별은 문제가 있다. 공통감각은 훈련을 통해 획득되는 능력 이전에 판단 자체와 판단기준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 공통감각이 ‘건전한 이성’이라고 한다면, 옳고 그름 및 온당함과 온당치 않음은 판단 자체에서 드러난다. 건전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물을 올바르고 정당하고 건전한 관점에서 바라볼 줄 안다. 판단능력의 보편성은 칸트가 말하는 것처럼 ‘공통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통감각은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에 대한 판단과 ‘공통의 이익’에 대한 관심을 의미한다. 이것은 로마적 전통 속에 살아있던 인문주의의 정치적·사회적 계승이다.

칸트의 개념에는 근본적인 도덕적 의미를 위한 논의가 없다. 칸트에 의해 공통감각 개념은 도덕철학에서 배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도덕적 명령의 무조건성은 감정에 기초하지 않으며, 반성을 배제한다. 도덕법칙을 의지의 결정에 적용하는 것은 판단력의 과제다. 칸트는 여기서 순수 실천이성의 엄격한 법칙을 어떻게 인간의 마음에 연결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를 제기한다. 칸트는 실천적 판단력을 연마하고 형성하는 감성적 작용들을 도덕철학의 영역에 맡겨버린다. 칸트가 추구하는 실천이성 비판의 자세는 느낌의 단순한 공통성이 아니라 지도적이고 실천적인 이성행위를 토대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가 말하는 건전한 오성은 결코 공통감각이 아니다. 공통감각과 달리 판단력의 보편적이고 논리적인 사용은 그 자체의 고유한 원리가 없다. 칸트에게 남은 감각적 판단 능력의 영역은 감성적 취미 판단뿐이다. 칸트는 감성적 취미와 인식의 관계를 의심하면서도, 감성적 취미가 감각적이면서 보편적인 동의의 요구를 고려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따라서 칸트에게 있어 참된 공통감각은 취미이다. 이제 ‘좋은 취미’는 교양의 유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④ 취미

칸트가 공통감각의 개념을 취미로 제한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취미 개념 자체를 제한하는 것도 문제다. 역사를 살펴보면 취미 개념은 원래 미학적 개념이라기보다 도덕적 개념이었다. 취미는 원래 진정한 인간성의 이상을 나타냈고, ‘학교’의 독단론에 대항하여 극복하려는 노력에 기인했다. 이 개념사의 시초에 있는 발타사르 그라시안은 우리 내면의 동물적이고 감각적인 취미라 하더라도 이미 사물에 대한 정신적 평가에서 수행되는 식별의 싹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취미의 감각적 식별은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감각적 본능과 정신적 자유의 중간에 있다. 그라시안은 취미에서 ‘동물성의 정신화’를 보며, 정신뿐 아니라 취미도 형성가능하다고 암시한다. 그라시안에게 취미 개념은 사회적 이상을 형성하는 출발점이고, 교양인은 완전한 지점에 도달하여 인생과 사회에 거리를 두는 올바른 자유를 획득하여 식별과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라시안의 교양 이상은 기독교적 궁정인의 이상을 대치하여 교양과 신분적 특권과의 관계가 무관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교양사회의 이상은 절대주의의 역사를 뒤따라 제3신분이 나타난 곳에서 피어난 이상이었다. ‘좋은 취미’는 새로운 사회가 내세우는 이상이며, 여기서 나중에 ‘좋은 사회’라 명명될 무엇이 형성되었다. 좋은 사회는 출신이나 지위가 아니라 사회가 내리는 판단의 공통성에 의해 승인되고 정당화된다. 여기서 취미 개념은 일종의 인식방식이다.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사적인 편애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취미는 본질상 사적인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다.

취미가 내리는 판결은 고유한 결정성을 갖지만, 취미의 문제는 논증가능하지 않다. 여기에는 보편적 개념 척도가 없으며, 있더라도 정당하지 않다. 취미는 언제나 좋은 취미이려고 하며, 취미의 판단은 타당성에 대한 요구를 포함하기 때문에 결정적이다. 좋은 취미는 본질상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취미이며, 근거를 탐색하지 않는 수용과 거부이다. 취미는 근거로부터 나온 지식을 우선 사용하지 않는 감각과 같은 것이며, 가장 큰 확실성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확실성이 방지하는 것은 ‘나쁜 취미’가 아니라 몰취미이다. 좋은 취미의 반대는 취미가 없는 것이다.

유행은 취미와 다르다. 유행을 구성하는 것은 경험적 일반화, 타인에 대한 고려와 비교, 그리고 자신을 일반적 관점에 세우는 것이다. 유행이 산출하는 것은 우리의 사회적 의존성이다. 취미는 일종의 정신적 식별능력이고 공동성에서 활동하지만, 공동성에 종속되지는 않는다. 취미 개념에는 유행에서 절도를 지키며, 유행의 요구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판단력을 작동시킨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것이 ‘스타일’이다. 아름다운 것을 인식하는 것뿐 아니라 모든 아름다운 것이 적합해야 할 전체를 주시하는 것 또한 취미의 문제이다. 취미는 경험적 보편성이나 타인의 판단에 일반적으로 일치해야 한다는 의미의 공동체적 감각은 아니다.

유행의 전횡에 비해 확고한 취미는 특수한 자유와 우월성을 지킨다. 좋은 취미의 이념은 독특한 규범의 힘을 갖지만, 유행에 의한 취미의 규범화와는 대립된다. 취미는 판단력과 마찬가지로 개별자가 전체와의 관계에서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루거나 ‘적합한지’를 평가한다. 취미는 자연이나 아름다움의 영역에 제한되지 않으며, 도덕과 예절의 전 영역을 포괄한다. 법의 원칙이 개별 사례들로 늘 보충되는 것처럼 도덕도 개별 사례들의 생산성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판단력의 생산은 자연과 예술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또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도덕적 현실에까지 뻗어있는 아름다움 전체에 의해 보충되어야 한다.

순수 이론이성이나 실천이성을 통해 개별자를 보편자 아래 포섭하는 경우에도 여기에는 미적 평가가 포함되어 있다. 규칙을 올바르게 다루는 것은 언제나 미적 계기를 포함한다. 문제는 논리적 판단력뿐만이 아니라 미적 판단력까지이다. 개별성에 대한 판단, 특수한 경우에 대한 판단은 보편자의 기준을 규정하고 보충하며 수정하는 작업까지를 포함한다. 결국 모든 도덕적 결정은 취미를 요구한다. 또한 이성을 훈육시키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논증될 수 없는 감지력의 성과이다. 취미가 도덕적 판단의 근거는 아니지만 그 최고의 완성이다.

17세기 취미 개념은 사회적 기능과 결합되어 고대까지 소급되는 도덕철학과의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다. 기독교에 의해서 규정된 도덕철학 내에서 작용하는 것은 그리스의 인문주의적 요소이다. 이 그리스의 윤리학을 좋은 취미의 윤리학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주장이 생소하게 들리는 것은 취미라는 개념에서 관념적이고 규범적 요소를 간과하고 취미의 차이에 대한 상대주의적이고 회의적인 논의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칸트의 선험철학적인 미학이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성과가 있다. 전통의 단절과 새로운 발전의 시작이 된 것이다. 먼저 취미 개념을 판단력의 고유한 원리로 제한시켜 인식의 개념을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이성 사용에 한정시켰다. 여기에는 문헌학적이며 역사적인 연구가 그 안에 살아있다. 그러나 이 연구들이 ‘정신과학’의 이름으로 새로운 방법을 정초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칸트의 선험적 문제설정은 이 전승이 지닌 고유한 진리의 요구를 승인하지 못하게 했다.

칸트가 미적 판단력 비판을 통해 정당화하고자 했던 것은 심미적 취미의 주관적 보편성이며, ‘순수예술’의 영역에서 모든 규칙미학을 넘어서는 천재의 우월성이었다. 낭만주의적 해석학과 역사학은 이 천재 개념에서 자기이해를 위한 실마리를 찾는다. 칸트가 수행한 미학의 주관화는 이렇게 정신과학이 자연과학의 방법론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정신과학의 가능성을 더 열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제 미학의 문제를 경유해야 한다. 더불어 예술작품과 진리의 관계를 물을 때 이는 예술의 현상뿐 아니라 역사의 현상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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