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읽는 텍스트]첫 번째 <진리와 방법> 2016.10.12 발제문 올립니다.
gkpaul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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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읽는 텍스트]첫 번째 <진리와 방법>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2016.10.12 발제 장석관
1부 예술경험에서 발굴하는 진리 문제
1 미적차원의 초월
1. 정신과학에서 인문주의 전통이 지니는 의미
1) 방법의 문제
2) 인문주의의 주요 개념들
(1) 교양 (2) 공통감각 (3) 판단력 (4) 취미
2. 칸트의 비판을 통한 미학의 주관화
1) 칸트의 취미론과 천재론
(1) 취미의 선험적 특성
칸트는 취미의 토대와 관련 경험적 보편성을 초월하는 경험독립적 계기를 발견하고 이를 일종의 경이로 느꼈는데 이러한 통찰의 산물이 판단력 비판이다. 그런데 비판의 가능성을 총괄적으로 항상 정당화시켜주는 경험독립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미의 가치는 보편적 원리에서 추론 또는 증명될 수 없으며 좋은 취미는 결코 현실적, 경험적 보편성을 지니지 않는다. 감성적 취미 영역에서 모범, 표본, 실례가 탁월한 기능을 발휘하고 길을 인도 하지만 취미 고유과제를 빼앗아가지는 않는다. 취미는 그 자체의 고유능력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미학을 취미판단에 정초시킴에 있어서 경험적 비보편성과 보편성에 대한 경험독립적인 요구를 충족시킨다. 그는 취미에 그 어떤 인식 의미도 인정하지 않고 공통감각을 주관적 원리로 환원시킨다. 하여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대상들은 그 어떤 것도 인식되지 않으며 다만 주체가 느끼는 쾌감이 이들 대상과 경험독립적으로 상응한다고 주장될 뿐이다. 칸트는 이 감정을 대상의 표상이 우리 인식능력 일반에 대해 지니는 합목적성에 정초시킨다. 대상에서 얻는 즐거움의 근거는 구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유희, 즉 인식 일반에 상응하는 주관적 관계이다. 이 합목적적인 주관적 관계는 사실 이념상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며, 따라서 보편적으로 전달 가능하고, 취미 판단이 보편타당성을 요구할 근거를 마련해 준다. 이것이 칸트가 미적 판단력에서 발견한 원리이고 미적 판단력은 그 자체가 법칙이다.
따라서 취미의 대상들에 있어서 단순한 감각 경험적 일치와 합리주의적인 규칙 보편성의 중간에 위치한 미의 경험독립적 작용이 문제가 된다. 취미란 곧 반성적 취미다. 칸트는 이런식의 취미를 진정한 공통감각이라고 부름으로써 앞서의 도덕적, 정치적 위대한 전통은 더 이상 고려하지 않는다.
그의 공통감각 개념은 첫째 취미가 지닌 보편성(모든 인식능력의 자유로운 활동의 결과, 어떤 특수한 영역에 제한되지 않음)과 둘째 공동성이라는 두 계기가 통합되어있다. 칸트에 의하면, 취미는 자극이나 감동이 나타내는 것과 같은 주관적인 개인적 조건을 모두 배제한다. 이 감각(공통감각)의 보편성은 양방향에서 결성적으로 규정된다. 즉 그것이 배제하는 것에 의해서 결성적으로 규정되며, 공통성의 근거를 마련하고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적극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성적으로 규정된다.
(2) 자유미와 부속미에 관한 이론
칸트는 순수한 취미 판단과 지성화된 취미 판단의 차이를 논하는데, 이런 차이는 자유로운 아름다움과 의존된 아름다운의 상반성과 상응한다(자유미는 대상의 개념을 전제하지 않는 것-꽃, 새, 조개 등-이고, 부속미는 이러한 개념을 전제로-남자, 전사 등- 한다). 이것은 예술의 이해를 위해서는 매우 위태로운 이론이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자연미와-예술 영역에서의_장식이 그 자체로서 아름답다는 이유로 순수 취미 판단의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취미라는 척도가 단순한 전제 조건으로 격하되지 않은 채 순수 취미 판단(객관적 합목적성에 기초하지 않는다. 대상이 개념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모호하다.)에 미학을 정초시킬 경우, 예술의 인정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판단력 비판 뒷부분에 천재 개념을 도입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나중에 이루어진 중점 이동일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순수취미의 입장은 감성적 판단력의 본질을 다 드러낼 것을 요구하며, 또 이러한 감성적 판단력을 지성의 척도를 통해 제한하지 못하도록 보호해줄 것을 요구한다.
인간에게 문신을 허용하지 않거나 교회에 특정한 장식을 허용하지 않는 제한행위는 칸트에 의해 비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칸트는 감성적 쾌감에서는 손해를 보지만, 도덕적 관점에서는 이득을 얻는다는 평가를 내린다. 자유미의 사례들은 결코 본래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호감 그 자체가 사물의 완전성에 대한 평가는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줄 뿐이다.
우리는 순수한 취미 판단의 입장을 초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 초월해야 한다. 즉 오성의 특정한 개념이 구상력을 통해 도식적으로 감각화될 경우에는 결코 미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다만 구상력이 생산적일 경우에만 미에 대해 언급할 수 있다.
(3) 미의 이상에 관한 이론
미의 이상은 오히려 인간의 형체에서만 찾을 수 있다. 윤리적인 것의 표현 없이는 대상이 보편적으로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즉 어떤 것이 예술작품으로서 호감을 주려면 취미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동시에 그 이상의 것을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목적들은 그 개념을 통해 불충분하게 규정되거나 확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목적성은 모호한 아름다움의 경우처럼 거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인간의 형체에만 미의 이상이 있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목적 개념에 의해 확정된 미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빙켈만과 레싱에 의해 구축되었는데, 이것은 칸트 미학의 정초에서 핵심적 기능을 담당한다.
미의 이상에 관한 이론은 표준 이념과 이성 이념 또는 미의 이상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된다. 미의 표준 이념은 자연의 모든 종에서 나타난다. 표준 이념의 현시는 미의 원형이 아니라, 다만 적정성의 원형일 뿐이다. 이것은 인간 형체의 표준 이념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인간의 형체에 있어서 미의 참된 이상은 도덕적인 것의 표현에 있다.
인간은 본질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자신의 존재에서 도덕적 이념을 표현한다. 헤겔이 미학 강의에서 도덕적인 것의 표현을 정신성의 현현이라고 옮겨놓은 것을 보면 그는 이러한 점을 완전히 파악했다.
메마른 쾌감을 추구하는 형식주의는 미학의 합리주의 뿐 아니라 모든 보편적(우주론적) 미의 이론을 결정적으로 해체한다. 미의 표준 이념과 미의 이상을 고전주의 방식으로 구분함으로써 칸트는 완전성의 미학이 모든 존재자의 완성된 감각적 현시에서 유일한 아름다움을 찾게 되는 근거를 파괴한다. 이제 비로소 예술은 자율적 현상이 될 수 있다. 예술의 과제는 이제 자연의 이상을 묘사하는 데 있지 않고,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과 인간적,역사적 세계에서 자신을 만나게 하는 데 있다.
(4) 자연과 예술에 있어서 미에 대한 관심
칸트가 미에 대하여 경험적이 아니라 경험독립적으로 갖게 되는 관심에 관해 묻는다면, 이 물음은 감성적 쾌감의 무관심성에 관한 근본적인 규정에 비해 새로운 물음이며, 취미의 입장에서 천재의 입장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관심이 깃들인 미의 의미는 칸트의 미학이 원래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이다.
칸트는 처음에는 예술미에 대한 자연미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자연미는 순수한 미적 판단에서만 우월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미는 우리의 인식능력 일반에 대해 표상된 사물의 합목적성에 근거한다. 이점은 자연미에서 명료하게 드러나는데 자연미는 그 어떤 내용적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취미 판단을 지성화 되지 않은 순수성에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은 도덕적 관심과 동질적이다. 이 관심은 모든 관심으로부터 벗어난 우리의 쾌감과 자연의 무의도적 일치를 인지함으로써-따라서 우리에게는 자연의 경이로운 합목적성이 인지됨으로써-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인 우라, 즉 우리의 도덕적 규정을 지시한다. 여기서 완전성 미학에 대한 거부는 자연미의 도덕적 의미와 매우 훌륭하게 결합된다. 우리는 자연에서 그 어떤 목적 자체도 만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즉 쾌감의 목적에 부합되는 합목적성을 만나게 된다.
예술의 언어는 엄격한 언어로서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고 일정하게 말을 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요구가 우리의 감정을 구속하지 않으며, 우리의 인식능력 작용에서 자유의 유희 공간을 진정 올바르게 열어놓는다는 사실은 예술의 놀랍고 신비로운 점이다.
칸트에 의해서도 예술은 사물의 아름다운 표상 이상의 것이다. 예술은 미적 이념, 즉 모든 개념을 초월하는 그 어떤 것의 표현이다. 천재 개념은 칸트의 이러한 통찰을 표현하고자 한다.
(5) 취미와 천재의 관계
칸트에게 천재 개념은 사실상 감성적 판단력에 대한 그의 관심을 선험적 의도에서 보완하는 것일 뿐이다. 천재는 자연의 총아이다.
판단력은 오성과 이성간의 교량 역할을 한다. 취미가 지시하는 예지계, 즉 인간의 초감각 기체는 자연 개념과 자유 개념을 동시에 매개해 준다. 이것이 칸트에게는 자연미의 문제가 지니는 체계적 의미다. 자연미가 목적론의 중심적 위치를 정초한다. 예술이 아닌 자연미만이 자연의 평가를 위한 목적개념의 정당화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체계적인 근거로 인해 순수 취미 판단은 제3비판의 필수적인 토대가 된다.
자연 혹은 예술의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주관성에 깃들인 동일한 경험독립적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