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뮨주의 선언-발제] 5장 코뮨주의와 휴머니즘 +1
라라
/ 2016-10-10
/ 조회 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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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코뮨주의와 휴머니즘 (휴머니즘 이후의 코뮨주의)
*인문주의(人文主義, humanism) 또는 인본주의는 인간의 존재를 중요시하고 인간의 능력과 성품 그리고 인간의 현재적 소망과 행복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정신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 따른 인류 사회의 존엄, 가치를 중시한다. 신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신본주의, 모든 사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 및 기타 샤머니즘, 피상적으로 관찰된 자연의 원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자연환원주의에 반대한다. 인본주의에 근간한 정치 사상이자 사회 사상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주의, 휴머니즘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인문주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을 인문주의자, 인본주의자, 휴머니스트 등으로 불린다. -위키백과 사전-
1. ‘인간의 죽음’ 이후
[1] 알튀세르의 휴머니즘
마르크스는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노예가 된다.” 그 특정한 관계가 달라지면 그는 노동자가 될 수도 있고,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지’가 아니라 ‘어떤 인간인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의 모순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모순이 아니라 다양한 외부적 조건들이 기본모순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모순은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지만, 어떤 때는 농민들과 지주의 모순이, 또 어떤 때에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인민의 모순이 사회 전체의 중심으로 부상하여 다른 모순들이 그 모순에 응축되어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1845년에 한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피지배계급의 입장에선 당연히 거짓된 의식, 허위의식이다. 그래서 지배/피지배가 사라진다면 그런 허위의식과 허위의식으로서 이데올로기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포함하여, 이런저런 생각(표상)들을 방향짓고 미리 규정하는 무의식적 ‘표상체계’라고 본다. 그런 한에서 그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가 되어도 이데올로기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없다면 개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을 사회가 요구하는 주체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이데올로기인 것이고, 따라서 어떤 주체도 이데올로기 없이는 불가능하며, 어떤 사회도 이데올로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푸코의 휴머니즘
푸코는 ‘인간’이라는 개념(인간학적 사유)은 인식론적 배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사유의 경계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인간은 다양한 인식의 객체이자 주체로 사고방식이나 경험적 연구로 접근해야 할 경험적 존재이자 연구의 전제로 선험적 존재라고 규정한다.
=>모든 사고방식이 응집되어 있는 경험적-선험적 이중체(객체성의 에피스테메, 인간학적인 인식론적 배치)
[3] 2가지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
인간학적 사유는 하나의 명료한 이론체계나 통일체가 아니다. ‘인간’이란 하나의 이론적 근거가 무너지면 다른 이론적 요소들이 보충되는 일종의 콜라주나 아상블라주이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갖다 부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개념을 교환하고 변형해 다시 보충하고 결합하는 이론적 지반위에서 가능하다. 인간으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구성하고 작동하게 하는 이론적 요소들의 배치가 ‘인간’이란 개념을 만들어 낸다. 휴머니즘이 사라진 자리에 코뮨주의가 출현한게 된다.
2. 휴머니즘의 이론적 요소들
*휴머니즘이란 ‘인간’을 모든 것의 근거로 삼는 사유로 ‘인간’을 사유의 출발점이자 사유의 방향을 잡는데 가치 내지 목적의 위치에 놓아두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 하이데거와 푸코 >
하이데거 : ‘존재자’를 근거로 삼아 모든 것을 설명. 휴머니즘을 해체하고 비판하지만 이는 인간을 더 높은 위치에 두기 위한 목적
푸코 : 우리의 삶과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근대’라는 역사적 조건과 결부시키는 휴머니즘. ‘인간’이란 근거를 정당화하려는 태도와 인간에 대한 지식이나 과학을 만들어 내는 태도가 근대적 휴머니즘이라고 말한다. 또 생명이나 노동이 표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객체적 실재로서 인식론적 배치(에피스테메)의 중심에 있다고 말한다.
< ‘인간’ 개념 형성에 영향을 준 세가지 >
*‘인간’의 개념 : 근대적 지식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호 보충하며 만들어낸 복합적인 관념(‘소유욕’, ‘탐욕’, ‘경쟁’, ‘고상한 이념’, ‘지고한 가치’)
[1] 생물학-자연과 인간의 관계 (생명체로서 인간, 이성이나 노동, 언어등을 갖는 동물로 파악)
① 생명의 정의 : 생명은 생물체의 각 부분을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 통합하는 실체이자 각각의 기관들은 생명의 지속을 위해 종속되는 ‘목적인’이다. 생명은 죽음에 저항하는 기능들의 총체, 죽음으로 한계 지어져 있는 유한성의 영역
② 각각의 기관이 하나로 통합되는 유기체는 죽음이라는 경험으로 분리되는 단위이다. 그래서 유한하고 숙명적인 인간 개념을 만들어냄.
③ 그 자체로 하나의 전체이면서 다른 것과 근본적으로 분리되는 개체(individual)라는 개념이 인간 생명 활동의 개념을 만들어냄.
④ 환경에 적응하고 이용하는 능력으로 정의되는 진화는 인간을 ‘가장 진화한 존재-발전의 종착점’,‘다른 생물과의 척도’로 인간 개념을 만들어냄
[2] 경제학-사회와 인간의 관계 (노동하는 인간, 경제라는 ‘토대’에서 사회 내지 인간관계를 근거로 파악)
① 노동의 정의 : 애덤스미스-교환을 규제하는 가치척도 / 데이비드 리카도-모든 가치를 생산하는 기원이고 근원
② 경제활동, 가치 생산이 ‘인간’의 개념을 만들어냄
③ 노동함으로써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이용하여 세계(Umwelt 환경)를 자기화(Aneignung, 영유)하는 인간의 개념을 만듬
④ 생물학적 진화 발전 과의 차이점 : 생물학적 진화는 인간 발전을 종착점에 두고 항상-이미 완결된 과정이라고 보고 진화의 역방향으로 인간의 동물적 기원을 생각한다.-생물학적 전체성은 직접적, 생명의 활동은 개체적 / 경제학적 발전은 ‘노동’을 기원으로 종착점을 열어두고 이윤율이 소멸하는 극한적 ‘종결’을 예상한다.-노동의 전체성은 매개적, 노동은 사회적, 집합적.
⑤ 경제학적 인간 개념은 생물학적 개체주의(individualism)에 침윤되며 경제학적 ‘개인주의’로 번역된다. 개체라는 생명의 단위 개념이 사회적인 개념인 노동을 경제가 개인의 어떤 ‘본성’으로 만들어냄. 노동하는 개인을 사회와 분리된 별도의 존래로 만들어 ‘개인’의 노동 자체를 ‘개별적인’ 활동 개념으로 만듬.
⑥ 로크-신체와 소유, 노동의 개념을 계열화 : 나의 신체는 나만의 자연적 소유물이고 이 신체가 만들어낸 노동의 결과는 나의 소유이다. 생물학적 개체 관념이 노동하는 신체를 개인주의로 밀고 간다.
*소유(property)의 개념이 경제적 의미뿐만 아니라 개체의 ‘고유성’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
⑦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경제적 희소성의 개념이 노동이나 활동에 끼어들어 시장에서 개체들의 경쟁의 장이 된다. 개체의 생존 경쟁 개념을 생물학으로 바꿈. (가공된 경제학적 자유가 적자 생존의 원리가 되어 생물 일반의 생존원리, 진화의 원리가 됨)
[3] 철학-사유와 인간의 관계 (사유하는 인간, 사유의 목적이자 기원인 인간 자체의 근거로 파악)
*철학은 사유와 행동을 다룰 때 항상-이미 ‘인간’의 사유와 행동을 다룬다.
① 인간의 정의(칸트) : 칸트의 선험적 존재 이전부터 항상-이미 사유의 실질적 전제이자 출발점이다. 인간은 언제나 이미 이성적인 존재, 정신적인 존재 / 동물적 생존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보편성을 지닌 존재 / 인간은 동물적인 생존 욕구와 인간적인 이성을 지닌 이중체(철학에서 인간)
② 칸트-도덕적인 방향으로의 초월적 존재 : 인간은 동물이지만 동물적 욕구를 넘어선 행위를 할 수 있는 존재로 파악 / 인간을 실천적 행위로 이끄는 ‘소질적 요소’ (동물성, 인간성, 인격성) - 동물성 소질은 생명체로서 지니는 소질, 인격성 소질은 이성적이며 책임 능력을 지닌 존재로서 소질(그 자체로 존엄한 목적 자체의 인간), 인간성 소질은 생명체와 이성적 존재라는 이중성을 지닌 존재자로 양자 사이에 존재 (이성적이지만 계산하는 이성, 평등을 추구하지만 시기와 질투, 경쟁심과 항상 뒤섞이는 존재)
③ 사드(Marquis de Sade)-욕망이 이끄는 방향으로 초월적인 존재 : 인간 신체의 욕망은 도덕이나 이성의 통제를 초과해서 존재 / 인간의 삶은 도덕적 선이 반복해서 불행을 야기하며, 도덕적 악이 오히려 성공으로 귀착된다.
④ 헤겔 : 인간의 이성적 활동을 인간 차원에서 신적인 것으로 확장(이성적인 합목적성에 따라 자연을 변형시키는 활동=>절대정신, 외화) / *외화(Entauβerung):자신의 목적성에 따라 자연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형시키는 활동으로 애덤스미스의 경제학에서 ‘노동’의 개념에서 유래한 것이다. 세계를 변형시키는 ‘노동’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노예가 노예의 활동으로서 노예의 지위를 벗어나는 계기로 등장한다. / 역사란 절대정신이 자신을 외화해서 자연을 변형시키고 세계를 자신의 의지대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노동을 통해 자연의 목적으로서 인간의 의지 아래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해 가는 과정을 ‘역사’,‘역사적 발전’이라고 부름(목적론적 과정) / 생물학적 사유가 ‘목적론’이란 이름으로 기계론이나 화학론에 대비되는 논리학적 사유 방법으로 일반화되고 인간 활동이 목적론적 과정을 추동하는 주체의 자리를 차지한다.
⑤ 헤겔을 비판하던 포이어바흐나 청년마르크스도 인간의 ‘고유성’을 인간을 한 종으로 묶는 생물학적 관념을 함축하는 ‘유적 본질’로 정의
=>철학적 인간이란 초월성과 보편성, 합목적성 및 발전의 개념이 뒤섞여 발견됨.
3. 휴머니즘의 이론적 공간
[1] 생물학의 개체주의 - 경제학의 개인주의
생물학은 개체주의를 경제학에 제공했다. 활동하고 노동하는 개별적 신체는 유입의 통로로 제공하고 소유의 개념이 추가되면서 ‘개체주의’는 개인들의 자연적 분리와 더불어 사회적·법적 분리를 내포하는 ‘개인주의’로 변형되었다. 개인 간의 관계는 생존을 생물학과 결합하면서 ‘생존을 위한 경쟁’의 개념으로 변형되었다.(생물학적 개체주의, 경제학적 개인주의)
개체주의는 진화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들 간의 생존 경쟁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여기서 ‘적자 생존’,‘자연 도태’등의 개념이 파생되고 생물학적 진화의 원리가 생존의 일반원리로 승격된다.
17~18세기에는 종들이 공시적으로 나열되는데 그치나 근대에서는 시간에 따라 개체나 개체군이 경험하는 경쟁과 도태의 과정에서 분기하거나 소멸된다. 가장 진화한 존재로서 인간은 철학적 인간학에 의해 ‘존엄한’ 인간의 형상으로 대응되어 생물학적 자연성을 얻는다. 철학적 인간학이 갖는 ‘하등’과 ‘고등’의 관념이 생물학적 ‘발전’이나 ‘진보’의 개념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생물학적 유기체의 관념이 목적론적 논리학뿐만 아니라 철학적 통일성, 총체성의 관념에 영향을 주었다.(헤겔의 국가와 사회의 유기체 관념, 홉스와 루소의 갖는 개인의 ‘원소’성)
[2] 철학의 목적론 - 생물학의 적자생존 - 경제학의 영유
철학적 인간학에서 목적론적 발전의 개념은 생물학적 관념(자연도태,적자생존)이 아니라 경제학적 영유의 개념에 가깝다. 또한 인간의 ‘적응능력’ 확장이라는 생물학적 관념을 발견할 수도 있다. 철학자들의 미래를 낙관한 것은 노동 개념 이상으로 진보와 쉽게 등치되는 19세기 진화의 개념 덕분이다.
하지만 생물학의 개념도 인간과 자연을 대응시키는 철학적 관념, 인간의 행위가 동물적 행위와 구별하려는 인간학의 관념이 생물학에 영향을 주었다. 합목적성에 따르는 세계의 변형과 영유(경제학)가 인간이 가장 진화한 위치, 척도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된 근거가 될 수 있다.
경제학과 철학을 잇은 교환 경로가 노동이라는 ‘활동’을 통해 인간을 개념화하는 변으로 기능했다면(자기화/영유)철학과 생물학을 잇는 선은 존엄함, 목적, 진화 등의 ‘가치’의 관념을 통해 인간을 개념화하는 변으로 기능했다.(목적) 생물학과 경제학 사이에 있는 변은 개체간의 만남의 양상, 인간들 간의 관계 양상을 통해서 인간 개념의 형성과 변형에 개념화하는 변으로 기능했다.(경쟁) 그리고 소유(property)와 고유성의 개념이 공통의 공리처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종적인 고유성, 인간의 고유성, 경제적 소유)
[3] 정치학 :: 정치경제학, 생명정치학, 정치철학
인간에 대한 통치 기술로서 정치학은 삼각형 주변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경제학의 다른 이름 ‘정치경제학’은 노동의 관리, 부의 관리를 위한 학문에서 탄생한 것이다. ‘레세 페르(자유방임주의)’의 자유주의 슬로건은 경제를 정치와 분리하려고 하지만 부와 노동의 관리에 관한 연구라는 점에서 항상-이미 정치경제학이다.
‘건강’이라는 이름하에 작동하는 생명-권력 또는 신체적 욕망을 정상성의 코드로 길들이는 훈육-권력, 인간을 ‘개체군(population 주민)’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통해 ‘인구(population)’로 변형시켜 관리하는 인구 관리는 생명-정치학이다.(생활 깊숙이 침투한 정치)
생물학과 경제학의 자원들이 모여 철학학적 인간학으로 변환되는 지점에 ‘인간’이라는 정체성(identity, 동일성)을 관리하는 통치 기술로서 정치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칸트처럼 동물적인 삶을 인격적인 삶으로 변환시키는 도덕형이상학, 개개인을 민족/국민이나 국가라는 동일성의 형식 안에서 ‘인간화’하는 정치철학(생물학적 자원이나 경제학적 자원이용, 파시즘, 전체주의, 나치즘?) 푸코는 동일자와 타자를 가르는 근대의 가장 일반화된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인간은 이론적 공간에서 일정한 유사성에 의해 서로 연결된 이질적 관념들의 집합이다. 이론화의 방향에 따라 상반되는 의미나 위상을 갖는 잡다한 관념들의 복합체이다. 이론적 공간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목적과 동원된 자원에 따라 ‘인간’의 개념을 만들고 ‘인간’의 가치 척도를 부여하고 실천적 행위의 중심으로 정립하려는 태도를 ‘휴머니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 휴머니즘과 개인주의
여기에 추가할 것은 인간이란 보편적 이성을 지니고 스스로 개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보편적 개념이지만 죽음이라는 결정적 한계 때문에 분리된 개체이다. 즉 인간은 ‘인간’인 동시에 ‘개인’인 것이고 보편적 존재인 동시에 개별적 존재이다. 보편자로서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성의 어원 ratio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이해/관심을 위해 계산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휴머니즘은 개인주의/개체주의를 항상-이미 함축한다. 코뮨주의가 개인주의가 아닌 것처럼 휴머니즘도 아니다.
보편적 범주로서 인간과 개별적 범주로서 개인 사이에 개인들을 ‘보편적인’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주는 개념이 두 개 있다. 생물학적의 ‘종개념’과 ‘사회’이다. 17~18세기 이론가들은 ‘계약’으로 개인적 행위에 의지했고 19세기는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설명했다.
[5] 휴머니즘과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로 정의한다면 다수 대중이 지배한다고 해도 ‘전체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에 가깝다. 민주주의란 양적인 다수성으로 개인적 의지를 사회적 일반 의지로 승격시키는 통치 체제다. 즉 민주주의는 개인주의를 의미하는 자유주의가 표현할 수 없는 사회적 집합성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프랑스 혁명에 명시된 인권(인간의 권리)의 경우 보편적 권리이자 개인적 권리이다. 인권은 개인 간의 대칭성과 대립을 포함하는 ‘평등’의 개념을 요청하지만 어떤 개인도 집합적이고 일반적 의미일 수가 없다.=>자유주의 딜레마
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절차적 민주주의(다수결의 원리)가 도입되지만 개체와 인간의 간극, 개별과 보편 사이의 이율배반을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을 넘어설 수 있다면 민중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이다.
4. 휴머니즘의 경계
*그림 참고 p219
*휴머니즘이란 인간이라는 보편적 이름으로 모든 것을 사유하는 이념으로 나타나지만 이면에는 개인들을 ‘인간화’하기 위해 관리하고 통합하는 권력이 작동하고 있는 통치의 장이다. 즉 이론적 배치인 동시에 권력의 배치이다.
[1] 마르크스의 한계
- 정치경제학 비판
- 계급이나 ‘특수 신분’으로 해체된 대중을 통합하여 국민적 정체성 또는 인간적 동일성을 부여하는 시도에 투쟁.
- 인간의 개념을 만드는 생물학,경제학,철학을 하나로 엮는 ‘소유’의 개념이 부당하게 전제되어 있어 역사적 조건에서 인간의 ‘본성적인 요구’나 자연적인 ‘고유성’으로 가정되어 있음을 비판
- 노동을 자본주의적 관계와 결부하여 ‘노동력이란 상품의 사용가치이다’라고 정의함으로써 ‘노동’을 다시 사유. ‘인간’이라는 보편적 개념의 허구성 지적하며 인간에 내재하는 균열과 적대, 대립과 투쟁을 역사의 실질적 동력임을 보여줌
- 경쟁은 공동체로 살던 사람들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개인들로 분해하여 만든 역사적 조건의 산물임을 보여줌
- 맬서스의 ‘인구법칙’도 자본주의가 만든 결과임을 보여줌(자본주의적 축적법칙의 결과)
*맬서스의 인구법칙 :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생존 물자는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구 1인당 생존물자(=생존물자의 양/인구수)는 감소할 수밖에 없으므로 빈곤은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주장.
- 생산자와 생산 수단이라는 개념 자체에 휴머니즘이 작동한다.
[2] 푸코의 한계
- 생명정치학 비판
- ‘정상성’이라는 동일자로 대중을 근대적 주체로 통합려는 통치를 비판.
- 생명 권력의 작동이 건강한 신체, 건강한 주체를 만들어냄
- 생명 권력에 대한 저항의 지점을 찾고자함.
[3] 생명과 노동의 개념 자체와 대결한다는 것
- 마르크스나 푸코의 비판은 모두 근대와 자본에 대한 근본적인 것이었다. 근대 내지 자본의 질병적 요소나 비정상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야기하는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형태와 맞서려고 한 것이다.
- 그러나 마르크스와 푸코는 좀더 밀고나갔어야 했다. 우리는 생명과 노동의 개념 자체와 대결하며 휴머니즘의 이론적 공간 자체를 전복해야, 개인주의를 넘어서고 경쟁과 도태의 상징적 관념을 벗어나 올바른 코뮨주의를 사유할 수 있다.
- 현대의 생산 발전은 기계 자신이 생산자이다. 인간의 노동없이도 가치가 산출된다.
- 생명력 자체가 자본에 의해 ‘가치화’되고 생산으로 조직된다. ex)무어의 항체 상품화
- 생산자와 생산수단을 말할 때 휴머니즘 때문에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이제 생산자와 생산수단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인간과 인간 아닌것(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해야 한다. 코뮨주의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근본부터 변환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을 변혁하여 자연이나 사물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생산자들의 새로운 관계를 위해 생산 수단을 공유하지만 여기서도 목적과 수단이 바뀌는 것에 부당함을 느낀다면 휴머니즘적 관념 때문이다.
5. 휴머니즘 없는 코뮨주의 (혹은 코뮨주의적 휴머니즘)
*휴머니즘의 이념없이 코뮨주의를 사유할 수 있을까?
- 인간들 간의 관계(다른 방식으로 생산하는 인간관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 인간과 자연, 동물, 식물, 기계, 공간, 사물 등이 코뮨의 특이점으로 구성하고 코뮨 전체의 본성에 참여/분유할 수 있다.
- 구성적 활동에서 주체와 대상,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선을 구별하지 않는다.
- 능동적 성분은 모두 ‘주체’이고 그저 참여하며 함께 나아가는 성분은 ‘대상’이다. ex)활동에 나무나 공간이 실질적 역할을 한다면 여기서 ‘주체’는 나무와 공간이다.
- 어떤 것이 만들어지고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지는가의 구체적 양상에 따라 모든 성분은 생산자가 되기도 하고 생산 수단이 된다.
- 존재하는 모든 것이 목적이나 수단이 될 수 있다. 어떤 조건에서 무엇이 수단이고 무엇이 목적인지 아는지가 중요하다. 목적의 자리에 존엄성을 부여할 것이 아니라 수단에 존경과 감사의 예를 표시해야한다.(존재의 일의성-목적이든 수단이든 나름대로 동등한 의미를 지님)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지난 시간에서는 어떻게 휴머니즘을 넘어설 것인가를 공부했습니다.
코뮤니즘은 휴머니즘 없이, 특별한 지위를 지닌 '인간'이란 개념 없이 사유해야 한다!
인간의 개념을 해체하고, 휴머니즘의 이념 없이 코뮨주의를 사유할 수 있을까?
좀더 인간화된 세계,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 없이 코뮨주의를 사유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개념을 통하지 않고 코뮨주의를 사유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특별한 지위를 해체하는 방식의 휴머니즘!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해체하는 휴머니즘!
인간을 다른 존재와 동등한 위치에서 존재의 일의성으로 사유하는 휴머니즘!
인간을 목적의 자리에 두면서 결국은 인간이 자본을 위한 도구가 되는 자본의 휴머니즘이 아니라,
인간의 특권적 자리를 해체하여 결국은 모든 존재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코뮨적 휴머니즘 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