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틀러] 젠더허물기 4장 발제(07/12)
준민
/ 2018-07-12
/ 조회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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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젠더 진단 미결정
진단내려지는 성 정체성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은 미국 정신의학 협회가 발행하는 책이다. 현재는 제 5판까지 나와있으며 5판은 2013년 5월 18일에 출간되었다. 버틀러가 이 장을 쓸 때, DSM 4판에 젠더 정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를 계속 수록할지 말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계속 수록하자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은 이 진단이 성전환에 필요한 다양한 의료적, 기술적 수단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또한 성전환이 ‘의료적으로 필요하다’고 확정할 수 있다면 몇몇 보험회사들은 매우 비싼 성전환 수술 비용의 일부를 충당해줄 것이다. 수록을 반대하는 입장의 사람들은 GID에 진단 받는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으로 판명되고, 질병으로 판단받는 것이라며, 트랜스섹슈얼리티는 질병으로 생각되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여지껏 GID 진단은 개인에게 의료적 처치, 법적 지위를 주기 때문에 트랜스 자율성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되어왔다. 내 목표가 성전환이라면,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진단은 나의 자율성 행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버틀러는 이 진단이 확실히 성전환을 원하는 개인에게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지 물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자율성의 한계
GID 진단을 받는 것은 정말 개인에게 자율성을 행사하게 해주는가? 이 진단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힘의 영향을 받는다. 의사들은 그들에게 망상이나 위화감이 있다고 전제하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정상적인 가족생활이 어떤 것이고 어때야 하는지 주입한다. 버틀러는 개인을 사회적 조건과 사회적 수단에 의존하지 않는 것으로 설정하는 자율성의 개념에는 구체적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젠더 규범을 위반하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의구심이 정신과 담론 및 제도, 젠더에 대한 의료적 접근, 재정 지원과 의료 혜택을 받을 자격과 가능성 등의 법적 기관과 재정적 기관을 만든다. 인간의 선택은 사회적 조건과 제도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한 레즈비언은 한 쪽 가슴에서 암을 발견해 제거했고, 재발을 막기 위해 다른 한 쪽 가슴도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보험사에선 병에 걸리지 않는 가슴을 제거해주는 것이 트랜스섹스 수술비를 대준 선례로 남을까봐 우려했다. 그가 나머지 한 쪽 가슴을 절단할 수 있는 방법은 이 가슴에도 암이 걸리거나, 자신의 젠더 욕망을 의료적이고 정신의학적인 검사 대상이 되게 하는 것 뿐이다. 그의 가슴을 때어낼 권리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게 있다.
GID 진단의 매커니즘
GID 진단의 뿌리는 1973년 동성애를 질병으로 보는 진단을 없애고, 1987년 예전의 정의가 남은 ‘자아 비친화성 동성애’를 없애기로 한 것이다. 몇몇은 GID 진단이 예전 동성애 진단이 하던 일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했다. 자아 비친화성 동성애라는 것은 뭘까? 남성 자아에 친화적인 성적 경향은 여성을 좋아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이 남성을 좋아하는 것은 비친화적이다. 소위 전환론자들은 젠더 정체성이 성적 경향을 유발한다는 큰 실수를 범한다. 어떤 사람은 트랜스 남성이 된 뒤 남성을 원할 수도 있고, 트랜스 여성이 된 뒤 여성을 원할 수도 있다.
저항의 방법들
당장 GID 진단을 배척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부자라면 성전환 수술에 수만 달러의 돈을 쏟아부을 수 있겠지만,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 트랜스섹슈얼들은 그 비용을 다 감당할 수 없다. 버틀러는 이 진단을 순수한 도구, 즉 목적을 달성할 매개로 활용할 수는 있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들은 자신이 아프거나 정상성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면서 내면화하는 복종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보험 적용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 젠더 정체성을 병리적이지 않은 것으로 만들라고 요청하는 것은 대부분의 의료계, 보험계, 법조계 종사자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장애에 관해 이야기해야만 성전환 기술의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 진단이 사용하는 언어에 복종하고, 이런 규범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심리 담론에 순응할 수 있는 척을 해야한다. 그 언어를 들여다보자.
첫 번째는 젠더 교차적 동일시가 있어야 한다. 버틀러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DSM은 사람의 정신생활 속에서 어떤 정체성이 작용하는지 행동으로 읽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 젠더 교차적 동일시는 다른 성 ‘이고 싶은 욕망’ 혹은 다른 성 ‘이라는 주장’으로 정의된다. 이것은 자신이 다른 성이라고 반드시 주장하지 않더라도 ‘다른 성’이 되고 싶을 수 있다는 뜻을 암시한다. 그러니 누군가 자신이 다른 성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다른 성 ‘이고 싶은 욕망’을 가지는지 결정한 방법이 있다면 젠더 교차적 정체성이 발생 중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이 다른 성이라고 주장하는 발화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성이 되면 얻을 것으로 인식되는 문화적 이점에 대한 욕망이어서는 안된다. 버틀러는 이런 주장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한다. 문화적 이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런저런 성이 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는가? 성은 문화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자신의 ‘성’을 고유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혹은 고유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 우리가 더 큰 사회적 존재 구조의 일부가 되는 출발 점일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자율성의 패러독스이며, 이것은 젠더 규제가 젠더 주체성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할 때 강화된다. 그때야말로 개인의 선택은 조건에 의존하고, 사회 세계의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