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전집읽기] 반시대적 고찰3 :: 4~5장 후기
오라클
/ 201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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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문화를 향한 힌트로서 '니체의 자연'
반시대적 고찰1/2가 당시 독일의 저급문화에 대한 공격이었면, 반시대적 고찰3/4는 고급문화를 향한 힌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문화의 관념을 자연과 연결시키는 점입니다. 먼저 '속물 교양'과 다른 '진정한 교양'을 자연의 모방이고 숭배이며 자연의 완성이라고 합니다.(반시대적 고찰3. 1장) 또한 근대가 정립한 3가지 인간상을 자연에 대한 태도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반시대적고찰3. 4-5장)
루소적 인간 (활동적 인간의 경우) - 신성한 자연 :: "오만한 계급과 무자비한 부에 억압당하고 짓눌렸으며, 사제와 나쁜 교육으로 타락했으며, 우스꽝스러운 풍습으로 수치심을 느끼면서 루소의 인간은 곤경에서 '신성한 자연'을 큰소리로 불러댄다." 이처럼 루소적 인간이 근대적 삶에 대한 냉소에서 찾게 되는 '신성한 자연'이란 목가적 자연일 것입니다. 그는 기존 질서와 근대적 인간에 비판적이지만, 결국 인간 이전의 동물적 자연으로 회귀하고 있는 듯합니다.
괴테적 인간 (명상적 인간의 경우) - 좋은 자연 :: "괴테 자신은 청년 시절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을 다 바쳐 '좋은 자연'이라는 복음에 매달렸다. ...... (그는) 이제까지 존재했던 위대한 것과 사유할 만한 것들을 먹이로 수집하고 살아간다." 명상가로서 괴테적 인간의 '좋은 자연'이란 복음이며, 품격 높은 사유와 명상일 것입니다. 그는 기존 질서에 순응적이고 근대적 인간을 유지하고 견디는 것이며, 이 경우 현재의 인간적 한계에 갇히고 말겠지요.
니체적 인간 (진실한 인간) - 자연적 인간, 인간화된 자연 :: "모든 자연이 인간에게로 달려들 때, 자연은 암시한다. 즉 자연이 동물적 삶의 저주로부터 구원되려면 인간이 필요하다. 인간이 행복을 요구하듯 삶을 요구하는 동안, 그의 시선은 동물적인 것의 지평을 넘어서지 못한다. ...... 자연이 그토록 오랫동안 인간을 동경하여 획득한 후, 슬그머니 다시 본능의 무의식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듯 말이다. ...... 진실한 인간들, 더이상 동물이 아닌 사람들, 철학자-예술가-성자들이 나타남으로써 결코 도약하지 않는 자연이 단 한번 도약한다. 자연이 이제 처음으로 목표에 도달했다고 느낀다. ...... 우리의 안과 바깥에서 철학자-예술가-성자의 탄생을 장려함으로써 자연의 완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 모든 자연은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화를 추구한다."
니체적 인간의 자연이란, 자연적 인간인 동시에 인간화된 자연입니다. 동물성을 넘어서는 동시에 기존 질서와 근대적 인간을 극복하는 자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은 차라투스트라의 위버멘쉬와 연결됩니다. "인간은 동물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이다. ......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인간의 극복은 동물성이 아니라 위버벤쉬를 향하는 것이고, 최고의 인간화야 말로 자연의 완성이라고 할 것입니다.
■ 당시 독일문화와 학문, 대중의 삶의 태도에 대한 니체의 비판
니체는 당시 독일의 문화와 학문, 교양인을 비판하고 있는데, 우리 시대와 같아서 놀라게 됩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머리의 연기와 증기에서 탄생되었다면, 그것은 다시 연기와 증기로 사라져야 하지 않는가, 책 안에서 더 이상 타오르는 불이 없다면, 불이 그 일로 책을 단죄해야 한다. 그 후의 세기에는 우리 시대가 암흑시대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시대 사람들이 자기 작품들로 가장 열심히 난로를 데웠기 때문이다."
"학문은 절도도 없이 맹목적인 자유방임 속에 수행되어, 확고하게 믿어왔던 모든 것을 분해하고 해체한다. 교양계급과 국가는 천박한 화폐경제에 마음을 빼앗겼다. 세상이 이렇게 세속적이었던 적이 없었고 사랑과 선의가 빈약했던 적은 없었다. 학자계층이 이 모든 세속화의 혼란 가운데서 등대도 피난처도 될 수 없다. 그들 자신이 매일매일 더 불안해하고, 생각도 사랑도 점점 잃어간다."
"교양인은 교양의 가장 큰 원수로 변질되었다. 교양인은 일반적인 병이 없다고 거짓말 ...... 그들이 행복하다는 사실은 너무 믿기 힘들기 때문에, 행복한 척 위선을 부리는 그 방식은 때때로 큰 감동을 준다. ...... 개인은 조급증을 내면서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한다. 어떤 인간도 이제까지 그 정도로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만 행복을 붙잡아야 한다면, 행복사냥은 가장 성행할 것이다."
특히 우리가 자신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피하고 있으며, 삶이 말하는 소리를 두려워한다는 지적은 섬뜩하게 합니다.
"마치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 정신없이 열중하여 중노동에 몰두하지만, 이는 사리분별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각자가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는 중에 있기 때문에 조급함은 보편적이며, 사람들은 겉으로 만족스럽게 보이고 싶어서, 이 조급함을 부끄러워 감추려는 태도도 보편적이다. 새롭게 울리는 단어의 방울을 가지려는 욕망도 보편적이다. 그것을 달면 삶도 시끄러운 축제 분위기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불쾌한 기억이 갑자기 엄습하면, 격렬한 동작과 소리로 그것을 잊어버리려 했던 이상한 상태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 삶의 매 순간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우리는 이 허깨비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혼자 조용히 있을 때 무언가 귀에서 속삭이는 것이 겁이 난다. 그래서 우리는 고요함을 싫어하고 사교로 귀를 먹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