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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세미나] 분석가의 현존(9/30 후기) +3
선우 / 2016-10-04 / 조회 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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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이와 충동>의 장으로 넘어왔습니다. 라캉은 우선 전이가 통상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지적합니다. 긍정적 전이다, 부정적 전이다 라는 말은 전이를 ‘정동(감정)’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분석가를 사랑하는 마음, 분석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전이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지요. 또한 전이란 분석가라는 타자와 맺는 모든 특수한 관계를 구조화하는 것으로, 이 관계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모든 사유의 가치는 특별한 유보 조항의 표시를 붙여 생각해야 한다고 합니다.(188) 피분석가에게 전이 현상이 보이면, 그에 대한 정신분석 치료는 요원해진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피분석가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이 전이를 중심으로 재편성되었기 때문이지요. 피분석가의 무의식의 원인을 알기가 더 어렵게 되었다고 느끼는 것이겠지요.

  라캉은 전이라는 것이 분명 분석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 분석 상황에는 환자가 있고, 분석가가 있습니다. 라캉은 분석가의 현존을 그 자체로 무의식의 현시물로 보고 있습니다. 무의식이란 주체가 시니피앙의 효과들을 통해 구성되는 수준에서 말이 주체에 대해 발휘하는 효과들의 총체입니다.(192) 주체는 미리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니피앙의 효과들을 통해 구성됩니다. 라캉은 무의식이 출현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전이’라고 봅니다. 분석가의 현존이 무의식 개념에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이지요.

  무의식은 시간적인 박동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이며, 열렸다가도 바로 닫히는 것입니다. 전이는 본질적으로 저항적이어서 무의식의 소통이 중단되도록 만드는 수단입니다. 전이에 의해 무의식은 닫혀 버립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무의식이 닫힐 때 환자 무의식의 ‘원인’이 열린다는(출현한다는) 것입니다. 무의식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상실된 원인으로 간주됩니다. 전이적인 영향력은 우리가 그 원인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됩니다.(194) 이 원인(영원히 어긋난 만남, 놓쳐버린 기회)이 바로 ‘반복’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고요. 반복 속에서 원인이 출현하면 무의식을 구성하는 기표들의 효과들은 정지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분석 상황에서 일어나는 전이는 피분석가의 무의식의 원인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지, 통상적으로 생각하듯이 은폐시키는 것이 아닌 셈이네요. 전이는 장애물이 아니라, 환자 치료 상황에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치유가 그 환자의 무의식의 원인을 밝히고 해석하는 것에서 일어난다면요. 이 전이 속에서 무의식이 반복된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나 이마고, 정서가 회귀한다는 말이 아니라, 무의식의 구조가 반복된다는 말입니다. 이 반복되는 무의식의 구조 속에 분석가가 특정한 위치와 역할을 점유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따라서 다시 한 번, 분석가의 현존은 무의식 개념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요소입니다.

  전이는 우리로 하여금 주체가 확실성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전이 관계 속에서 주체는 확실한 것을 기대하며, 분석가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과도한 감정을 투여하게 되는 것이지요.

 

  왜 이렇게 분석가의 역할, 분석가의 현존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것의 효과는 무엇일까요?(결국 이 질문이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수샘은 라캉이 이렇게 분석가의 현존을 강조하는 게 묘하게 신학적인 구조를 전제하는 느낌이라고 하셨는데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분석가는 아버지이자 주인이며 신으로도 확장될 수 있거든요. 권위, 권력의 토대를 곤고히 하는 걸로 보이지요.

  푸코는 정신요양원에서 요양원 경영자가 아니라 왜 ‘의사’가 책임자였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합니다. 알고 있어서인가? 경영자도 의사만큼, 아니 그보다 더 요양원 체계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의사여야했고, 의사가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탐구하는데요, 정신요양원 내부에 의사의 신체를 현전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푸코의 말입니다. “정신요양원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정신요양원이 필연적으로 의학적 장소로 표식되어야 한다고 생각됐던 이유는, 지식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지식의 표식이 합법적으로 부여하는 보충적 권력 효과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하면 의사의 내부에 지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식을 통해, 그리고 그런 표식의 작용을 통해서만 의학적 권력은 그 지식의 실질적 내용이 어떤 것이든 간에 상관없이, 정신요양원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의학적 권력으로서 기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푸코, <정신의학의 권력>, 268쪽) 나아가 푸코는 정신의학의 권력이 정신분석학의 실천 내부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에서 정신분석가로의 이동이겠지요. 사제의 위치이기도 하고요.

 

 

# 어려워도 이렇게라도 더듬더듬 해보아야 잡힐 것 같아 적어봅니다.^^

 

 

댓글목록

lizom님의 댓글

lizom

라캉 세미나와 푸코 세미나를 절묘하게 소통시키는 선우님의 공부법에 박수를 보냅니다.

선우님의 댓글

선우 댓글의 댓글

고맙습니다 샘~  힘이 납니다^^

삼월님의 댓글

삼월

여기서 푸코를 만나는군요. ㅎㅎ
얼마전 목사의 성폭력 문제를 다룬 기사에서 본 피해자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어릴 때부터 남편과 아버지와 목사를 신과 같은 존재로 보아야한다고 배웠다고. 그러므로, 강하게 저항할 수가 없었다고.
관념 속의 권력이 어떻게 현실을 통제하는 힘이 되는지 푸코를 읽으면서 더 많이 보게 됩니다.
누군가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거라는 확신 혹은 기대,
거기서 권력은 비로소 힘을 발휘하고, 우리의 비판적 사유를 멈추게 하겠지요.
주체는 확실성의 감옥에 갇혀버릴테고요.
선우님의 간결한 후기 덕분에 라캉을 곁눈질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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