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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마지막 세미나 - 후기 +3
토라진 / 2016-09-09 / 조회 2,096 

본문

얼마 전 미술관 도록을 살펴보다 눈에 띠는 문장을 만났다.

"끝은 끝이다. 시작이 아니다."

 '끝은 새로운 OO  이다.' 라는 공란에 나도 모르게 채워왔던 '시작'이  내 안에서 반항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래, '끝은 끝이다.' 

그렇다면, 그러므로 장장 몇 개월여 동안 읽어왔던 우리의 <모비딕> 은 끝인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끝이다.

 

<모비딕>을 읽으면서 사상 유래없는(역사적인 사실과 통계를 들이민다면 할 말은 없다. -  삼월이는 자신이 어렸을 때 이보다 더 더웠던 때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모두들 아니라고 올해가 가장 더웠다고 했지만 기억력이 남다른  삼월이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우겼다. 똑똑한 삼월이 ! ㅋㅋㅋㅋ) 2016년의 여름을 견디었다.

 여름이 끝나고 있으며,  드디어 <모비딕>도 끝이 났다. 끝나길 바랬던 여름이었으며 끝내기 아쉬웠던 '모비딕'이었다. 그렇다면 여름의 끝과 <모비딕>의 끝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사실 다른 것은 없다. 둘 다 끝이다.  끝에 대한 우리의 감상만이 다를 뿐.  그것이 아쉬움이건 안도이건 간에, 또는 절망이건 희망이건 간에......우리는 성급하게 새로운 시작을 말하기 전에 불온하고 위험한, 그 단호하고 냉정한 단정을 견디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름을, 모비딕을 끝까지 집요하게 응시하고 목도했다. 함께 끝에 왔다. 함께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끝에서 서로에게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되어주었던 모든 문학세미나 회원들께 화이팅을 전한다.    

 '끝은 끝이다. 시작이 아니다. 아직은.'    

 

 

 

나와 싸우듯이

(정지돈의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의 변용)

 

이제 <모비딕>과 함께 한 항해가 끝이 났다. 모두 사라지고, 모비딕과의 싸움을 기억할 수 있는 최후의 목격자 이스마엘만 남았다. 그리고 끝내 사라지지 않을 ‘모비딕’ 그리고 다시 우리가 유예되었다.

유예된 것들은 언제 벌어질지 모를 싸움을 늘 준비하면서, 작살과 창을 매일 가다듬으며 ‘모비딕’을 기다린다. 아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견디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거대한 존재, 그것은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내 안의 또 다른 괴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안의 ‘나’는 세계 안의 ‘세계’와 같다. 결국 운명이란 세례를 나와 세계는 공평하게 나눠 갖게 될 테니까.

 

형언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고, 이 세상의 것 같지도 않은 불가사의한 이것은 도대체 뭐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만적인 주인, 잔인하고 무자비한 황제가 나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사랑과 갈망을 등지도록 강요하는구나......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헤브인가? 신인가, 아니면 누구인가? 하지만 위대한 태양도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는 심부름꾼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면, 스스로 회잔할 수 있는 별은 단 하나도 없고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모든 별을 움직인다면, 이 보잘 것 없는 심장은 어떻게 고동칠 수 있고, 이 작은 두뇌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우리 인간은 저기 있는 양묘기처럼 세상에서 빙글빙글 돌려지고 운명은 그 기계를 돌리는 지레라네. -646

 

에이해브의 독백처럼, 모비딕과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찾을 수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모비딕의 이마에 힘껏 뱃머리를 갖다 대고 끝까지 싸우는 일 뿐이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는데도, 그 견고한 버팀벽 같은 하얀 이마는 드디어 오른쪽 뱃머리에 부딪쳐 사람도 선체도 모두 비틀거렸다. - 681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싸우는 것만이 우리가 가진 작살과 창이다. 힘껏 뛰어올랐을 때 비록 시간은 우리를 낡게 하고 빛바랜 회색으로 물들일지라도.

 

나는 지금 가장 높은 물마루에 도달한 파도 같은 기분일세. 나는 이제 늙었네. 자, 우리 악수하세. - 672

 

나와 싸워 나와 악수하는 일. 그것은 자기극복을 넘어서는 초월의 경계, 그 끝에 선 인간의 절규는 아닐지......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낀다. - 681

 

비록 그것이 슬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엉뚱한 고아를 발견하게 될 지라도......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불온하고 위험한, 단호하고 냉정한 단정을 견디기가 힘들었나 봅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던 두 권의 책에 대한 세미나가 이번 주에 끝났습니다.
거의 석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요.
그러고 나니 모든 활자들이 갑자기 지긋지긋해졌습니다.
실어증 걸린 사람처럼 일주일 동안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도 거의 읽지 않고, 댓글도 달지 못했습니다.

미처  애도를 다 하기도 전에 다른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푸코 세미나 발제가 코앞이더라고요.
그래요. 이 후기를 읽고 나니 알겠습니다. 그저 저는 뭔가 조그맣게라도 애도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 슬픔이 여운처럼 밀려왔다 천천히 빠져나가는 시간들을 좀더 머금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슬프고 활자가 지겨운 와중에도, 푸코의 강연록에 빠져들었습니다.
마치 슬픔에 겨워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헤매다가 엉뚱한 아이를 발견하게 된 기분처럼.

대단원다운 후기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두고두고 조금씩 음미할게요.

에스텔님의 댓글

에스텔

함께 읽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어요.
또 제가 매번 편하게 참여하도록 배려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 단편 읽기가 기대됩니다.
삼월님, 다음에 읽을 책 공지해 주세요.

희음님의 댓글

희음

아하,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 거였군요. 책을 다 읽고 나면 늘 되새기는 시간만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떠나보낸 한 권의 책에 대한 나의 슬픔과 그 슬픔의 정서를 가만히 떠다니게 두는 시간도 필요했던 거였군요.
토라진 님 덕에 크고 작은 생각이 눈 뜨게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문학세미나 친구님들 모두 제겐 참 과분한 선물이란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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