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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세미나] 실현되지 않은 것 (9/2 후기②) +4
선우 / 2016-09-06 / 조회 2,946 

본문

실현되지 않은 것

이제 라캉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을 설명해 나갑니다. 중요한 것은 이때 그가 ‘힘’이라는 동력학적 개념으로 무의식을 설명하지 않고, ‘원인’ 개념을 참조점으로 삼아 설명한다는 사실입니다. 원인은 법칙과 다릅니다. 법칙은 하나의 연쇄 속에서 결정 작용을 수행하는 어떤 것입니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 인과율의 영역. 반면 우리가 원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뭔가 잘못된 경우에만 우리는 원인을 찾습니다. (달의 상은 조수의 원인이다. 장독은 고열의 원인이다.) 라캉은 바로 이 지점, 원인과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 사이에서 항상 무언가 잘못된 것이 존재하는 이 지점을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위치하는 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원인에 특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구멍, 틈새, 간극 속에서 프로이트가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실현되지 않은 것’의 차원에 속하는 것입니다. 실현되지 않은 것, 태어나지 않은 것의 영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무의식과 억압의 관계는 림보와 낙태전문 산파의 관계와 같습니다. 낙태전문 산파가 태어나길 기다리고 있는 태아를 낙태시키듯이, 우리는 무의식을 억압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밤의 신령들이 지배하는 장소도 아니고, 상상력이 빚어낸 낭만주의적 무의식도 아닙니다. 또한 폰 하르트만의 무질서하고 잡다한 무의식도 아닙니다. 프로이트는 실수행위, 꿈, 농담 등에서 무의식의 작동방식을 끄집어냈는데요, 이때 공통적인 것은 바로 이 모든 것들이 어떤 헛디딤이란 양상 아래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헛디딤, 실패, 균열. 말해진 문장이든 쓰인 문장이든 그 속에서 무언가가 발을 헛디디게 됩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한 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은 연속성이 있는 지점이 아닙니다. 불연속적으로 갑자기, 뜻밖에 출현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 불연속성 배후에 전체라는 것이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라고 라캉은 묻습니다.

 

“불연속성에 대해 ‘하나’가 선행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저는 줄곧 이 완결된 ‘하나’를 요구하지 말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이 완결된 ‘하나’는 거짓된 통일성의 지배를 받는다고 가정되는 일종의 유기체의 분신, 육체의 외피로서의 심리 작용을 언급할 때 붙어다니는 환영일 뿐이지요. 무의식의 경험이 도입하는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균열, 자취, 결렬의 ‘하나’일 뿐이라는 저의 주장에 여러분도 동의하시게 될 것입니다.”(45-46)

 

불연속성 속에서 드러나는 무의식을 설명하면 마치 인간의 정신을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우리는 서둘러 총체성, 통일성, 일자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의식과 무의식으로 인간의 정신을 총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우리 정신세계의 결여, 틈이 환기되는 것을 오히려 주목해야 합니다.

 

 

간극의 구조로 무의식을 설명한 라캉은, 이 간극의 핵심이 존재론적 기능을 한다고 말하고 있네요. 무의식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실현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틈새입니다. “무의식의 기능에서 존재적인 것은 틈새입니다. 이 틈새 사이로 무엇인가가 순간적으로 환하게 드러나지요. 우리의 장 속에서 그것은 극히 짧은 순간 동안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틈새가 금새 닫히면서 그것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이지요.”(54) 무의식은 달아나는 것입니다.

 

 

데카르트와 프로이트

라캉은 프로이트의 행보를 확실성의 주체를 토대로 해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엇에 관해 확신할 수 있는지를 둘 다 문제 삼았다는 것이지요.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다 ‘의심’해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에서 사유하는 주체의 확실성을 이끌어냅니다. 프로이트에게 있어서도 ‘의심’은 확실성의 근거입니다. 의심 자체는 무언가 숨겨야 할 것이 있음을 뜻하는 기호입니다. 데카르트는 주체가 거처하는 곳을 의식, 사유의 자리에서 찾았고,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자리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둘 다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심’이 주체의 확실성을 이끌어낸다는 점입니다.

 

 

댓글목록

선우님의 댓글

선우

아고, 어렵습니다. 여전히 틈이 많습니다.^^
세미나 마지막에 '기억하기와 반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이부분은 좀더 반복해야 할 듯 싶습니다. 더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알아차리게 되는 지점이 있을거라는 희망을 갖고요.
또 마지막에 아주 멋진 말이 있었지요.
벤야민이 한 말이라고 했던가요? "실현되지 못한 우리의 무의식, 충동, 욕망이 그 역사의 구조를 다시 불러낸다."
저승을 움직여서라도 실현시키고 싶은 우리의 욕망들...

무긍님의 댓글

무긍 댓글의 댓글

시간이 지나고서야 하는 후회를 만시지탄이라고 하던가요
딱 그렇네요 , 왜 진작 성실한 학생이지 못 했을까? 제때에 읽었더라면 더 많이 공감했을 텐데.
부리나케 처음부터 읽으면서 샘의 지나간 자리에서 가을의 향기를 느낍니다.

유택님의 댓글

유택

잘 읽었습니다~~ 앞시간 살짝 저도 복습하면서 이번주 분량 읽는중인데요.. 진짜 어렵네요 라캉.. ㅎㅎㅎ 정수샘은 언제쯤 강의록 올려주실꺼나... ^^;;

lizom님의 댓글

lizom

공부란 이렇게 하는 거다! 라는 듯한 성실하고 훌륭한 후기, 감동적입니다. 오늘 중에 두번째 강의록 업뎃합니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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