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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비정상인들> 8월19일 발제
유택 / 2016-08-16 / 조회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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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9 푸코 발제 (1975.3.19강의)

 

금년에 다루었던 문제, 다시 말해서 비정상적 인물의 출현과 정신의학의 특권적 대상으로서의 이상 영역의 출현이라는 문제를 마무리 지어야겠다.”

 

사를 주이 사건과 앙리에트 코르니에 사건

 

푸코가 던진 질문 : 우리는 정신의학의 대상 영역의 등급이 달라졌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 기능의 양식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건에서 드러난 정신의학의 새로운 기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351) 대답 : 편집증을 강조하던 정신의학 시대에 사람들은 앙리에트 코르니에 사건을 계기로, 범죄의 징후를 단초로 하는 병리학적 절차를 슬쩍 세워 놓았다. 그런데 샤를 주이 사건에서는 반대로 항구적인 부동의 낙인 구도를 범죄 행위에 통합시켰다. 불연속의 원동력인 병리학적 정신의학 대신 결정적인 일탈을 보장하는 항구적 상태의 정신의학이 들어서고 있었다.(357)

 

길가나 숲 속 큰 나무 밑에서 벌어지던 시골 마을의 야외 섹슈얼리티를 법의학이 겁도 없이 정신의학화해 버렸다. 당시의 시골 마을 풍경에 정착되어 있던 인물과 관행들을 정신의학화 했다. 정신의학화가 적어도 오로지 위에서부터 온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밑바닥에서이다. 가정에서의 속옷 검사(18세기말 반-자위 행위 캠페인)처럼 이미 가족(가정/부모)들은 이미 다른(외부) 권력 통제 체계와 연관을 맺고 있다.

 

앙리에트 사건에서는 그녀가 당시 생리(육체적 요인)를 하고 있었고, 충동의 솟아남, 부풀어 오름, 팽만 상태, 그리고 그 역동성의 증식. 한마디로 과도함인데 그것은 충동의 기능을 병리학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맹목성이 되고, 이해의 부재, 계산의 부재가 된다. 그러나 샤를 주이의 경우 충분치 못함/부족/발달의 정지. 두개골 운운 이야기(356) 하면서 어떤 항구적이고, 구성적이며, 선천적인 상태를 참조 대상으로 삼는다. 신체의 기형들은 어떤 의미에서 이 상태의 구조적/물리적 결과이며 일탈적 행동, 특히 주이의 범죄를 일으킨 그 행동은 이 상태의 충동적/역동적 결과라는 것이다. 그것은 과정이 아니라 한 개인을 구조적으로 특화 시키는 항구적 낙인이었다. 그리해서 샤를 주이의 정신의학화를 허용하는 상태는 정확히 그의 발달 부진이다. 다시 말하면 소아증이다. 행동의 소아증, 지성의 소아증, 정신의학자들은 쉴새 없이 그것을 말한다.

 

광증치료사(에스키롤학파의 사람들, 특히 앙리에트 코르니에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분석에서 한 주체에게 병이 있다고 말하도록 허용 해주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어른이 된 다음에 더 이상 과거의 아이적 모습과 닮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한 성인이 자신의 유아기와 비슷할 때, 유아기와 성인의 상태 사이에 지속성이 있을 때, 다시 말해서 오늘의 행위에서 과거의 사악함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깊이 자국이 난 그 상태를 정확히 표시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정신의학화의 조건이었다. 광증치료사들은 근본적으로 앙리에트 코르니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의 어린 시절은 그 후의 너의 모습과 같지 않다. 그러니까 너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그리고 정신의학자들은 샤를 주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너에게 죄를 물을 수 없는 것은 네가 어릴 때부터 이미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19세기초 이래 에스키롤식의 광증치료의학이건, 혹은 지금 내가 말하는 정신의학이건 간에 환자의 전기를 훑어보는 방식이 요구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362)

 

정신의학화의 조건 (서로 반대됨 그러나 공통점은 아이/유년’)(361)

1).앙리에트 코르니에 : 두 번의 분리. 그녀와 (살해된) 아이 / 그녀의 현재와 유년기

2).샤를 주이 : (이와 반대로) 거의 혼동에 이를 만큼 자신과 (자위해준) 어린아이,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어린 시절의 근접성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정신의학에 의해 발견된 어린이이다. 정신의학은 유년을 자신의 앎과 권력의 조준점으로 삼음으로써 비로소 널리 대중에 일반화 되었다. 다시 말하면 유년은 정신의학적 앎과 권력의 일반화를 위한 역사적 조건이었다. 유년은 정신의학 확장의 결과이고, 또 반대로 정신의학을 일반화시킨 원칙이었다. 하나의 행동이 정신의학화 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이 소아증의 어떤 흔적을 지니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충동이 병리학적 기제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쾌락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쾌락이 있으면 충동은 더 이상 자동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쾌락을 수반한 충동은 쾌락을 촉발하는 것으로 주체에 의해 인식되고 기억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연스럽게 계산 속에 들어가고 따라서 그것이 쾌락 수반할 때 아무리 격렬한 운동의 충동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병리학적 과정으로 볼 수는 없다. 충동의 병리학화는 쾌락을 배제한다. 그러나 백치는 병리학화 되어 있다. 어느 때는 착란이나 환각적 진행의 마지막 결과로서, 또 반대로 어느 때는 충동의 근본적인 타성으로서 병리학화 되었다. 따라서 이제부터 충동은 쾌락을 간직하면서도 완벽하게 병리학적인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충동의 기제와 과정, 그리고 충동이 주는 쾌락들이 소아증의 수준이고, 소아증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쾌락-충동-지진 / 쾌락-충동-정신박약(366)

 

어린이를 문제화하는 방식은 정신의학의 일반화를 가져왔다. 신경학(발달신경학 혹은 발달의 중단으로서의 신경학) 또 한편으로는 일반생물학과 관계를 맺는 일이 가능케 되었다.(367)

 

유년 혹은 행동의 소아증이 더 이상 정신의학의 대상으로 질병이나 병리학적 과정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불균형이라는 특징을 지닌 어떤 상태, 다시 말하면 그 안의 요소들이 병리학적이지도 않고 병인을 포함한 것도 아니면서 정상적으로 기능하지도 않는 그런 상태를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행동과 구조의 소아증을 연구하는 학문이 된 정신의학은 정상/비정상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 될 수 있었다.

 

1850~70년대경에 정신의학은 정신착란/실성/진실에 대한 참조 그리고 병을 동시에 놓아 버렸다. 이제 정신의학이 새롭게 주목한 것은 인간의 행동, 행동의 일탈과 이상들이었다. 아주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실성의 의학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신의학은 광기를 정신의학화 했는데, 이 광기는 아마도 질병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러나 정신의학이 실제적으로 의학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질병으로 간주하고, 또 그것이 질병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야만 했다. 정신의학은 의학이 질병과 맺는 대상적 관계를 자신도 광기와 맺음으로써 비로소 광인에 대한 권력 관계를 수립할 수 있다. 의학 권력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내게 권한을 부여하는 하나의 앎 앞에서 너는 질병이 되리라 이것이 19세기 초에 정신의학이 한 말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부터 정신의학은 병리학적 과정이 아닌 대상 영역을 자기 통제하에 두기 위해, 오로지 의학적으로 자격이 부여된 권한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대상의 비병리학화, 이것이야말로 정신의학이 자신의 의학적 권력을 일반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었다. 그렇다면 의학 권력이 스스로에게 제공한 대상 영역을 단숨에 비병리학화하는 그 기술 장치, 즉 앎-권력 장치는 어떤 기능을 갖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병리적이 아닌 것을 관장하는 의학 권력, 이것이야말로 정신의학의 중심적 문제이다. 의학 권력이 형성된 것은 바로 여기, 유년의 중심점 주변에서였다. 이 중심점에서부터 정신의학의 일반화가 이루어졌다.

 

새로운 질병(분류)학의 구성의 세 측면

1) 일련의 모든 일탈적/비정상적인 행위들을 병의 증상으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이상 징후로서 묘사하고 조직한다.(징후의 질병학)

2) 착란의 회귀. 착란은 전통적으로 정신병의 핵. 비정상적 행동들에서 실오라기만한 착란의 흔적이라도 발견하면, 곧장 그것을 질병으로 전환시켰다.(망상의 질병학)

3) ’상태라는 개념의 출현. 상태란 발달이 중단되었거나 전진적 발달에서부터 후진적 발달로 퇴보한 한 개인의 구조 또는 전체 구조이다.(상태의 질병학)

 

비정상적 몸의 뒤에 있는 이 뒷-몸은 부모의 몸과 조상들의 몸, 가족들의 몸, 유전의 몸이다. 결국 정신의학은 성적 충동의 비생식적인 기능에서부터 오는 모든 일탈을 자신의 영역에 통합시킨 바로 그 순간에, 생식의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다.

 

퇴화는 비정상의 의학화를 위한 주요한 개념 이론이다. 퇴화한 사람, 그것은 신화적으로(혹은 과학적으로) 의학화된 비정상인이다. 퇴화된 사람은 정신의학 권력을 한없이 고양시켰다. 정신의학이 모든 일탈/지진/탈선을 퇴화 상태에 돌릴 가능성을 획득한 순간부터, 그것은 인간 행동에 대한 끊임없는 간섭의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질병의 위로 올라가는 권한, 병적인 것이나 병리적인 것을 기어이 제외시키는 권한, 그리고 행동의 일탈을 유전적이며 동시에 결정적인 상태와 직접 연결시키는 권한을 스스로 부여함으로써, 정신의학은 이제 더 이상 병을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권한을 지니게 되었다.

 

정신의학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한 사회를 결정적 위험에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제안할 수 있었다. 비정상을 의학화하고, 병과 치료의 궁지에 몰린 정신의학은 실질적으로 보호의 기능이며 질서의 기능인 한 기능을 스스로 떠맡았다. 사회 전체를 수호하라는 역할과 동시에, 유전 개념에 의해 가정의 섹슈얼리티에 간섭할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정신의학은 사회를 과학적으로 보호하는 학문이 되었고, 인류를 생물학적으로 보호하는 학문이 되었다. 즉 개인의 이상을 관리하는 학문이 됨으로써 정신의학은 그 시대에 최고 권력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즉 퇴화의 개념과 유전의 분석에서부터 정신의학이 인종주의와 결합되거나, 아니면 더 심하게 말해 인종주의를 야기시켰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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