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공백] 보들레르 시 후기 :: 0722(금) +3
이응
/ 2016-07-28
/ 조회 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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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밤샘 작업으로 정신없이 보내다 이제야 후기를 올려요!
보들레르 세미나,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이제야 전해드려 정말정말 미안한 마음입니다 _()_
0.보들레르
시를 읽기에 앞서 보들레르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9세기에 이미 현대성을 획득한 천재, 댄디즘, 유산을 탕진하고 방탕한 생활, 새아버지의 강제적 유배, 부르주아의 속물근성에 대한 독설, 우울한 파리에서 느끼는 현기증과 구토, 창녀와의 사랑, 매독으로 젊은 나이 별세.. 등.
보들레르가 남긴 삶의 자취만 가볍게 훑어보아도 등줄기에서 땀이 나는 기분입니다. 모든 시인이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시를 쓰는, 아니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은 진화론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어려운 변이생물체 같습니다. 시대적 상황이나 타고난 감수성이 맞물린 것도 있겠지만, 이토록 삶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쓰고갈 수 있는 광기의 동력이 뭘까 심히 궁금해집니다.
여기에 대해 반디님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우리가 ‘인’을 붙여주는 세가지 타입이 있는데 <성인>, <철인>, <시인>이라고 합니다. 그중 <시인>의 계보를 타고 올라가면 무당이 있다고 해요. 무당은 하늘과 땅을 연결(접신)하는 존재. 아주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니 시감대도 어마어마할테죠. 거대한 에너지와 접속하고 있으니 그 에너지를 가누기란 쉽지 않겠다 싶어요. 그런 에너지를 타고난 시인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보들레르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내 인생은 처음부터 저주받았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운명은 평생 계속되었지요."
1.알바트로스
- 알바트로스는 날개가 크고 긴 새의 이름입니다. 크고 긴 날개 덕분에 하늘에서는 멋지게 비행하지만 지상에 내려놓으면 긴 날개를 질질 끌고 다닌다고 해요. 그래서 ‘바보새’로 불리기도 하고요. 보들레르는 시인이 이 알바트로스와 닮았다고 보았습니다. 시인은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무한한 바다 위를 비상하며 자유인이 되려 하지만, 현실에 내려놓으면 그 거대한 날개는 어색하고 무능한 흉물로 변합니다. 날개가 크면 클수록 비범하게 하늘로 비상하지만, 지상에 닿으면 거추장스러워진다는 역설이 재미있었어요.
- 알바트로스는 현실에서 낙오한 작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현실의 대상을 꿰뚫어 어떤 상징과 연결시키는 것을 ‘상징주의적 시’라고 희음님이 알려주셨어요. 현실과 상징을 하나의 감각기호로 결합시켜 현실을 뛰어넘는 어떤 세계를 만들어내는 마술^^ 보들레르는 이런 상징주의 시로 반향을 불러일으켜 근대시의 영역을 개척했다고 해요.
2.발코니
- <발코니>를 두고 나오는 다양한 해석들로 시간 가는줄 모르는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왜 제목이 ‘발코니’인가> 만으로 몇시간이고 거뜬히 이야기할 기세였습니다^^
마네의 작품중 ‘발코니’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이 보들레르가 사랑했던 여인이다. / ‘발코니’는 프랑스 은어로 ‘유방’이라는 뜻이다(여성의 몸에서 유방이 돌출된 것처럼 주거공간에서 발코니도 돌출되어 있다) / 이 시는 스킨쉽의 충만함을 노래하는 관능의 시다. / 이 시에서 어머니의 따듯한 품과 대지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 이 시는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 사랑의 이미지를 어렴풋한 저녁으로 상징한 것이다. / 발코니는 주된 공간 밖에 있는 여유분의 공간이다, 내부이면서 외부. 발코니라는 공간이 가진 안온함+일탈의 공간이기도. / 마네의 작품 ‘발코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발코니 위에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각자의 세계 속에 사는 현대인, 미래가 없는 현대인의 삶, 삶와 죽음 사이를 노래한 것이다. 등등..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셨어요.
- 반디님은 번역자에 따라 시어의 선택이나 느낌이 달라지니 외국시의 경우 반드시 번역자 출처를 밝혀야 한다고 알려주셨어요. 마침 다른 번역이 있어 ‘윤영애 번역’과 ‘황현산 번역’을 각각 낭송하였습니다. 두 번역을 대조하며 토론해보니 단어의 차용이 완전히 달라서 놀랐습니다. (어머니/샘, 정부/애인, 쾌락/기쁨, 의무/눈물, 입맞춤/키스, 항성/태양, 호흡/숨결.. 등) 그래서 해석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기도 했고요.
3.가난뱅이들의 죽음
- 죽음은 나의 힘
제가 이 시를 읽으면서 느낀 특이점은 죽음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본다는 것이었어요.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의 시어들. 지금이 고되고 고통스러워도 계속 앞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 것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즉 ‘죽음은 나의 힘’인 것이지요. 여기서 ‘죽음’은 한 생의 죽음일 수도 있고, 하루의 죽음일 수도 있다, 오늘을 하얗게 불태우고 하루의 죽음을 맞이하는 기쁨.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잠이라는 도피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 또 하루를 살 수 있다는 면에서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 비참한 삶에 대한 위로
한편 이 시를 죽음에 대한 찬미가 아니라 ‘구슬픈 역설’로 보시는 분도 계셔서 무척 흥미로웠어요. 제목이 가난뱅이들의 죽음인 것처럼 지금의 삶이 너무 비참해서 위로할 수 있는게 죽음뿐이라는 것. 죽음밖에 희망을 둘 곳 없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애도의 시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끝이 있으니까 지금의 고통도 언젠가 끝날거야, 하는 위로. 그렇게 읽고보니 정말 비참한 삶에 대한 위로의 시로도 읽히고 말이예요. 무긍무진한 시의 세계입니다.
- 덧붙여, 케테르님과 토라진 님이 프로이트의 ‘죽음충동’에 대해 말해주셨는데요, 죽음충동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해요. <죽어도 좋아>하는 뿅가는 죽음충동과,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죽음충동. 두분 덕분에 죽음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더 풍성해졌습니다!
4.스쳐 지나간 여인에게
- 이 시도 참으로 문제작입니다. 저 혼자서 읽을 땐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진다’ 준말) 계열의 단순한 시였는데요, 세미나에서 같이 읽으니 생각도 못한 시점의 발견입니다.
- 스쳐지나간 여인은 ‘놓쳐버린 영감’
스쳐지나간 여인은 뇌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영감같은 것. 여인과의 스침이 사랑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처럼, 뇌리를 스친 영감은 쓰여지지 않았지만 쓰여질 뻔 했던 어떤 시어. 스친 느낌만 남아있고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린 영감들.
- 근대적 시간성
근대의 시간은 ‘순간’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순간의 시간성. 많은 것들이 나타나지만 흐름 속에 섞여들어가고 달아나고 밀려나고,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리는 ‘순간’.
- 스쳐지나간 여인의 유혹
상복을 입었는데 그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한다. ‘화사한 손으로 꽃줄 장식된 옷자락 치켜 흔들면서 장중한 고통에 싸여 지나’가는건 여자쪽에서 먼저 ‘유혹’한 것이 아닌가.
- 탐미적 사랑
아니다. 여인은 그냥 고통에 싸여 지나가는데, 보들레르가 탐미적 시선으로 여인을 벗겨서 본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던 보들레르. 그래서 창녀와의 사랑도 개의치 않은게 아닐까. 자유롭고 어디로 가닿을지 모르는 사람. 상복을 입고 지나가는 가장 슬픔에 젖어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거침없는 에너지. 보들레르는 도덕을 넘어선 탐미적인 사랑꾼이다(! 라고 말씀하셔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5.창문들
세미나 마지막을 불태우게 만들어줬던 시, <창문들>입니다. 이 시도 전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눈 앞이 빙글빙글 돌아서 후기를 급 마무리합니다 @_@ ;
- 이야기되었던 인상적인 시어들
열린 창문과 닫힌 창문 / 노파 / 전설을 지어내기 / 나 자신에게 들려주기 /그리고 자부심을 느끼며 잠들기 / 내 밖에 처한 현실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인가?
- 머리에 김이 나게 했던 문장. 다시 읽어보니 멋진 문장.
‘만일 그 (내가 지어낸) 전설이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고, 내가 존재한다는걸, 내가 누구인가를 느끼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내 밖에 처한 현실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인가?’
다음 시간에 만나요!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그날의 토론 중에 흥미로운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모두 잘 요약해 주셨네요. 잘 읽었어요.
"어릴 때 엄마를 너무 좋아해서, 엄마하고 같은 템포로 숨을 쉬기도 했다."는 이응의 말도 참 재미있었어요~^_^
흴옹님의 댓글
흴옹이응님 후기ㅡ재미나게 잘봤습니다~
반디님의 댓글
반디
알바트로스 http://blog.naver.com/fireflybugs/220772411233
가난뱅이들의 죽음 http://blog.naver.com/fireflybugs/220778134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