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푸코] 7월29일 후기 +3
유택
/ 2016-08-02
/ 조회 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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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라는 것을 처음 해보는 사람으로써 어떻게 책을 읽고 참가하고 질문해서 배워갈 수 있을까 항상 고민됩니다.
프로이트는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으면서 성에 대해 좀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와 라이히의 <성혁명>을 뭣도 모른 채 글자만(!) 읽었고 그 이후 까맣게 잊어버린 기억이 있는데, 이제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프로이트의 저작 <정신분석학강의>를 읽고 있습니다. 쿠카라차님의 <파시즘과 대중심리>에 관한 글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났어요. 빌헬름 라이히가 그런 인간이었지.. 그리고 피뢰침 같은 걸로 성에너지 <에네르기> 막 찾다가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했던 자라고... 쿠카라차님의 글에서 많은 감흥이 생겼어요.
우선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부터 시작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람의 (성)욕망/충동을 파악하고 분석 하는 것에서 머물렀기에, 자기 이론에서 사회적/실천적 의미를 끌어내지 못한 한계가 있다는 세미나 시간의 총평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그러면서 라이히나 푸코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간순서상으로 프로이트가 앞이니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전부 프로이트를 딛고 더 나아간 것이니까) 개인적인(성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까지 나아갔다는 것. 그러면 결국 폭넓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쪽 저쪽을 다 살펴봐야 하겠고 그러면 얼마나 공부할게 많은지요. 난감하네요.
<정신의학>과 <정신분석>은 다르다는 것. 전 여태껏 그것의 차이를 잘 몰랐어요. 정신의학은 어떤 것을 정신병이라 명명하고 그것의 기질적인/유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정상’으로 교정/치료 하려는 것이라면, 정신분석은 심리적 것에 집중해서 그것의 무의식적인 것에까지 확장해서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 후반에 <동성애>를 질병코드에서 없앴다고 알고 있는데, <정신의학학회>에서이지 <정신분석학회>가 아니라는걸 지금에서야 구별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프로이트는 본인의 책에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 하나의 ‘성도착’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성>과 <섹스>를 분리했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프로이트 책에 나오는 성충동/성욕망들이 다만 생식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더 넓게는 쾌락과 즐거움의 영역까지, 그 시대적인 상황에서 처음으로 제기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는 것. 유아의 성을 말할때 <다형도착>이라고 명명한 것에 인상 깊었어요. 결국 성윤리/성도덕은 인간(문명)사회가 역사적으로 만들어낸 것이고, 인간은 본래 경계 없는 무구함??? 인간은 사회 속에서 (성)억압이 되어 그것의 반동/회귀로 (1)<신경증>으로 갈 수도 있고, (2)<성도착>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 이때 <신경증>으로 발화되면 왠지 슬프고/불쌍하고/부정적이고/우울한 것일 것 같고, <성도작>으로 발화되면 성적통념에는 반할지언정 본인은 어쨌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견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아도 될까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고, 기존의 알고 있던 것을 다른 방식으로 사유한다는 ‘철학의 자유’ /‘다르게 사유하기’를 보여준다는 푸코. 푸코의 <비정상인들>에서도 지속적으로 <정신의학>이 ‘앎의 의지’를 통해서 권력화 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프로이트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니 참으로 흥미로웠어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까지 성적 억압이 강했던 시기 그리고 프로이트의 이론의 시작점 그리고 이후의 푸코. 책을 볼 때 그 책이 씌여진 시대/역사적 맥락을 꿰어 맞춰보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수유너머-푸코 황지영 강의 ‘성의 역사2,3권’ : 실존의 미학]을 이제서야 읽었는데요. 어제 들은 고샘의 니체 강의(독특성/자기변형/퍼스펙티브)와 프로이트의 꿈과 성에 관한 분석, 푸코의 <비정상인들>이 뭔가 얼-기-설-기 연결되더라고요. 뒷북 치는 것 같지만(^^;) 조금 강의안에서 인용하자면,
쾌락의 활용은 존재의 부정에 기초한 법의 금지와 억압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스스로를 형성하고 변형시키는 실존의 미학 혹은 주체화를 만들어내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기 테크놀로지이다.
고대의 주체화 방식은 ‘자기배려’로 요약될 수 있고, 기독교와 근대의 주체화 방식은 ‘자기인식’으로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서구에서 참된 담론의 대상인 주체의 구축은 곧은 행동의 윤리적 주체를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것이 푸코의 핵심 주장이다. 자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행위 주체의 윤리적 구축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달리 말해서 오늘날 우리가 진실된 주체이기 위해서 우리가 행하는 바에 대해 말하고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지, 우리가 사유하거나 말하는 바를 행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것’이란 푸코에게 ‘기존의 정상을 밀어내고 정상의 자리에 새롭게 등극한 무엇’일 뿐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틀어 푸코는 ‘정상화(normaliza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규범화, 획일화, 규칙화 등으로 번역 가능하다. 푸코 철학이 끊임없이 대결하는 대상은 바로 이 정상화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 자체가 역사적/정치적으로 구성된 기준들이며, 정상이란 오직 정상 게임, 정상 놀이에서 승리한 지배적인 개념일 뿐이다.
그러면서 다시 ‘파레지아’와 ‘파레지아트’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인문교양쇼핑이 그냥 ‘자기계발’이 아닌 ‘쾌락의 활용’/‘자기배려’까지 나아가게 할 수만 있다면..? ^^;;;; 푸코가 말하는 ‘실존의 미학’ 즉 삶을 작품의 재료로 간주한다는 것. 말년 에이즈 합병증으로 죽어가면서 동성애자 푸코의 실존적 절박함이 낳은 마지막 철학적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주체의 해석학>과 <진실의 용기>를 얼른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의욕은 높고 역량은 낮고~! *^__^*
댓글목록
쿠카라차님의 댓글
쿠카라차"<성도작>으로 발화되면 성적통념에는 반할지언정 본인은 어쨌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견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아도 될까요?" 네 유택님. 그래서 프로이트의 '카우치'에 자발적으로 드러누운 사람들은 모두 신경증자들이죠. 반면에 성적 일탈자들(도착증자)은 대부분 정신분석가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대부분 부모 손에 끌려 오죠. 정신병자(편집증자, 정신분열자)는 경찰이나 가족에 의해 강제 입원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삼월님의 댓글
삼월
이렇게 두 개 세미나의 후기를 엮어버리는 재주라니!
ㅎㅎ <비정상인들> 발제를 두 주 연속으로 했는데도 정신없이 바빠 후기 쓸 엄두도 못 내고 있었어요.
쌓이는 푸코의 말들에도 겁이 났는데, 프로이트까지 엮은 재밌는 후기를 보게 되네요.
저보다 덜 바쁘진 않을 텐데 미안하고 감사하네요.
유택님 덕에 요즘 성과 관련된 정체성의 문제를 많이 고민하게 되어 그 부분도 감사해요.
그리고 개인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가는 문제는 사유의 순서나 방향일 수도 있겠지만
관점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 않나 싶어요.
저에겐 푸코의 책이 이 부분에서 아주 매력 있거든요.
그럼 금요일에 만나서 또 하루 종일 떠들어봅시다~~
소리님의 댓글
소리
푸코와 프로이트를 관통하는 멋진 후기 감사해요.
'성도착'이란 개념에 대해 의문이 많지만, 세미나를 하면서 좀 더 깊게 생각해보고 파고들어야 할 지점인 것 같아요.
대체 성도착이 뭔지, 그게 맞는건지...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