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세미나 > 세미나에세이
  • 세미나에세이
  • 세미나에세이 게시판입니다. 좋은 공부는 에세이를 남깁니다.
세미나에세이

[코뮨] 인어공주를 위하여 - 자본의 식민정책과 원시신체의 해체
요고마고 / 2017-12-11 / 조회 1,364 

첨부파일

본문

인어공주를 위하여
부제 : 자본의 식민정책과 원시신체의 해체

1. 자본의 시초축적 - 낱알로 탈곡된 인간들
  자본의 “이른바 시초축적은 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 분리과정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 역사적 분리과정에 잉글랜드의 엔클로저와 유럽 여러 나라들이 벌인 식민정책이 있었다. 그로 인해 대대로 뿌리내린 땅으로부터, 문화로부터, 공동체로부터 뜯겨진 사람들이 떼거리로 출현하게 된다. 자본의 역사에서 무엇보다 획기적이었던 사건은 “많은 인간이 갑자기 그리고 폭력적으로 그들의 생존수단에서 분리되어 무일푼의 자유롭고 ‘의지할 곳 없는’ 프롤레타리아들로”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낱알로 탈곡된 인간들이 자본주의체제에 흡수 된 후 벌이진 일에 대해 사회학자 찰스 존슨(Charles S. Johnson)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영국은 어쩌다 보니 다른 유럽보다 앞서서 산업혁명을 치르게 되었는데, 그러한 엄청난 경제적 재조직에 수반된 사회적 혼돈 상태는 헐벗은 아이들을 ‘물품쪼가리’(pieces)로 바꾸어버렸던바, 훗날 아프리카의 노예들도 똑같이 ‘물품쪼가리’가 되어버렸다…….”
   우리에게 익숙한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사랑하는 왕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 인어공주는 바다왕국[원시공동체, 부족, 뿌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흩어진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외부에서 들이닥친 체제 혹은 외부에서 일어난 변화의 한가운데로 휘말려들어 갈 때, 기존 사회의 구성원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2. 꼬리 대신 다리로 - 신체에 일어난 강제적 변형 과정
  육지의 세계에 사는 왕자를 사랑하게 된 인어공주는 인간이 되기 위해 마녀를 찾아간다. 마녀는 인어공주의 꼬리를 다리로 바꾸어주고 그 대가로 그녀의 혀를 잘라 목소리를 가져간다. 바다와 육지라는 상이한 두 세계의 접점에서 인어공주의 신체는 강제적 변형 과정을 거친다. 그것은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 아닌 약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맞추어야  하는 폭력이었다.
  폴라니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적 존재는 그 사회의 여러 제도들 속에 묻어 들어가 있는 법인데 바로 그 사회의 여러 제도들이 회생할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되면, “그 제도들 속에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묻어 놓았던 이들”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남아프리카의 카피르족(Kaffir)은 이른바 고상한 야만인(noble savage)으로 알려져 있으며, 본래 그들의 크랄(kraal) 토지 제도를 통해 그 어떤 사회보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조건 아래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백인 사회에서는 가장 밑바닥 뜨내기들조차 입으려 들지 않을 더럽기 짝이 없는 흉측한 누더기를 아무렇게나 걸친” 반쯤 들짐승과 같은 어중이 떠중이의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자긍심이나 그 어떤 정신적 · 도덕적 좌표도 없는, 진정 필설로 이루 형언할 수조차 없는 인간쓰레기가 되고 만 것이다.
  인어공주는 바다왕국의 공주였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신체(꼬리)가 말해주고 있듯이 바다와 연결된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육지, 그것도 왕자라는 좁고 한정된 세계로 진입하게 되면서 말도 못하고 걸을 때마다 고통을 느껴야만 하는 상태가 되었다. 바다라는 세계로부터 오려진 인어공주는 자신에 대한 존재감도 함께 잃었다. 언뜻 보기에 능동적인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다리’는 실상 외부의 조건에 맞춘, 수동적 선택에 불과했다.
  원시신체가 기존의 문화에서 지녔던 자긍심은 새로이 진입한 세계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육지에 진입한 그녀의 신체는 갑자기 무능한 신체가 되어버린다.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은 상대적인 것
  “흑인들이 대대로 지녀온 여러 기술들은 쇠퇴하게 되고,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정치적 · 사회적 조건들은 낱낱이 파괴당한다. 그 결과 무언가라도 하면서 살아갈 모든 동기 부여를 앗아가게 되어 이들은 결국 한없는 지루함과 권태에 치여 죽을 지경이 되고, 리버스(Rivers)의 유명한 말대로 전혀 쓸데없는 것에다가 그들이 가진 모든 것, 심지어 생명까지도 소진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본래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화가 심어주었던 동기 부여나 삶과 행동의 목적 따위는 이제 더 이상 희생과 노력을 바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녀가 인어와 공주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여러 조건들은 새로운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파괴당한다. 그것의 상징이 꼬리와 혀이다. 꼬리와 혀는 새로운 사회의 기준에서 볼 때 쓸모없는 것이다.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의 기준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 중 힘이 더 센 쪽이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옳은 것처럼 되어버린다. 육지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하는 처지인 인어공주는 기존의 세계에서는 하등 쓸모없을 다리 때문에 그녀의 자부심이었던 꼬리와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목소리를 잃는다는 설정은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쓸데없는 일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왜 쓸데없는 일인가? 육지의 세계(혹은 자본주의체제)에서 필요한 것은 왕자의 마음을 얻는 것, 왕자의 눈에 드는 것, 오로지 열린 길은 이것뿐이다. 마녀는 인어공주의 혀를 잘라내면서 어차피 말은 필요 없고 외모가 아름다우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단지 왕자에게 생긋 웃어주라고. 말의 필요성이 사라진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간판으로 내걸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은밀한 내면에서는 균질화 된 개인을 선호한다. 자본주의체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시스템 자체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입자들(구성원들)이 고르게 ‘손봐져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통일되지 않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낸다면 시스템 운행 자체가 어려워지므로, 자본주의체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라도 ‘목소리’들은 음소거 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인어공주의 목소리는, 잘린 혀는 그런 의미에서 제거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3. 행동의 동기부여가 외부로부터 주입되다
  인어공주는 신체의 변형과 존재감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왕자와의 육지에서의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왕자는 이웃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고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다. 왕자와의 결혼만이 유일한 길이었던 육지세계에서 그녀에게 남아있는 퇴로란 없다. 가까스로 인어공주에게 퇴로를 열어준 것은 그녀의 언니들이었다. 언니들은 마녀에게서 얻은 칼을 인어공주에게 건넨다. 그것으로 왕자의 심장을 찔러 그 피를 다리에 묻히면 꼬리로 변해 바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인어공주는 칼을 건네받는다. 칼은 벼랑 끝에 선 그녀를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문화적 진공 상태
  인류학자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흑인 부족들은 백인문명과 접촉한 뒤 ‘문화적 진공 상태(cultural vacuum)’가 된다. 이질적인 세계와의 폭력적인 접촉은 부족민들이 대대로 지녀온 기술과 그들의 존재를 묻어놓았던 정치적 ․ 사회적 조건들을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그 결과, 본래 그들이 지녔던 문화가 심어준 동기 부여나 삶과 행동의 목적이 함께 무너진다. 그렇게 동기 부여할 문화를 잃어버린 그들은 새로운 사회에서 물 위에 뜬 기름처럼 목적 없이 표류한다. “자신들의 집단이 파괴된 후 뿔뿔이 흩어져 졸지에 금광의 광부나 선원으로 전환하는 일도 있지만, 열심히 살아갈 모든 동기를 빼앗겨버린 상태로 방치되어 시냇가에는 여전히 물고기가 득실거리고 있건만 냇가에 그냥 멍하니 드러누워 고통도 모르는 채 그대로 죽어가기도 한다.”
  시장경제체제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문화적 진공 상태란 세균이나 바이러스보다 치명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동기 부여가 되지 않더라도 “경제적인 필요와 욕구만 생겨난다면 그것으로 문화적 공백도 저절로 메워지고 아무리 끔찍한 상태에서도 삶을 살아갈 만한 것을 만들어줄 것”만 같다. 사실 행동의 동기 부여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를 고민할 만큼 우리의 삶은 여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돌아보게 된 것은 인류학자들이 보고한 부족민들의 ‘문화적 진공 상태’에 대한 관찰기록 때문이었다. 그 기록은 문화적 공백이 경제적 필요와 욕구 따위로 전혀 채워질 수 없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원주민 부족들과 그중 도시로 이주한 이들은 문화적 진공 상태에서 그들 대대로 내려오는 모든 미덕을 상실한 채, 게으름뱅이 ․ 도둑 ․ 창녀들이 되었다. 이들은 예전의 그들 문화에는 전혀 없던 존재들이었다.
  왕자의 세계로 진입한 인어공주 역시 문화적 진공상태였다. 왕자를 사랑한 것까지는 동기부여가 됐을지라도 그 이후의 흐름은 외부에 끌려가듯 선택한 것들에 불과하다. 벼랑 끝에서 칼을 쥔 그녀는 찌를 것인가 말 것인가 이전의 근본적인 문제, 즉 그 행동의 동기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부족 문화가 파괴되고 난 뒤 사람들이 산송장 같은 상태로 살게 된 사태를 우리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시장경제체제 내에서는 삶의 동기가 외부에 있기 쉽고, 그러한 삶에 익숙해진 뒤에는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내 삶, 내 행동의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 내가 아닌 나의 외부에서 비롯될수록 나와 나의 삶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기 시작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답답함을 넘어서는 슬픔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 시대 우리의 삶은 인류학자들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관찰한 보고서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인어공주는 언니들로부터 건네받은 칼을 들고 왕자의 곁으로 간다. 그녀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게으름뱅이, 도둑, 창녀가 출현한 그 곳에. 살아남기 위해선 그를 찔러야만 할 것 같다. 자본의 식민정책이 끌고 들어온 시장경제체제에서의 삶과 죽음은 이토록 단순하고 극단적이며 공허하고, 결과적으로 인간을 슬프게 한다.

나 없는 나의 삶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결말을 향해 나아가기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만약에 인어공주가 왕자와 결혼할 수 있다면 과연 그것은 해피엔딩일까? 왕자와의 결혼이 그녀의 삶에 지속가능한 동기부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수많은 관찰자들이 원주민들이 아주 쉽게 죽어간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인 바 있다.”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관심사나 활동들을 제약하면 이는 그들의 정신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듯하다. 그 결과 원주민들의 면역 저항력이 손상되어 어떤 종류의 질병이든 아주 쉽게 걸려 희생되고 만다” 이는 경제적 결핍의 압력 따위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인어공주가 왕자와 결혼했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녀가 여전히 말을 할 수 없고 걸을 때마다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던 세계로부터 분리된 그녀 역시 원주민들처럼 지루함에 지쳐 죽고 면역력 저하로 손쉽게 질병에 걸려 희생되지 않았을까? 희귀성 면역질환들이 해마다 그 목록을 늘리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그녀가 왕자와 결혼하지 못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 이분법적 확신이 우리의 신체감각을 가로막는다
  결국 인어공주는 왕자를 찌르지 못하고 칼을 바다에 던져 버린다. 그리고 자신도 뒤따라 바다에 몸을 던진다. 바다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몸이 거품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해가 떠올랐지만 이상하게도 죽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몸 위로 수백 개의 반짝거리고 투명한 것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놀라워한다. 그녀 역시 그것들과 한 몸이 되어 높이 날아오른다. 그때 공기의 정령들이 나타나 자신들의 세계로 건너온 그녀를 축복해준다.
  “우리는 생명이라는 것이 취하는 수많은 외관 중의 하나다. 우리는 그것의 완전한 이미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명 이외에 아무런 이미지도 갖고 있지 않고, 생명은 다양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어공주는 원했던 곳도, 익숙했던 곳도 아닌 제3의 장소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 시대의 어휘로 표현한다면 그녀의 죽음은 자살이다. 사실이지만 지극히 빈곤한 어휘력이기도 하다. 인어공주의 결말은 두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과 “공기의 정령들의 세계로 건너갔다”는 결말. ‘물거품이 되었다’ 혹은 ‘수포(水泡)로 돌아갔다’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헛수고 또는 쓸모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녀의 결말이 물거품처럼 느껴지는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이분법적 확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어공주는 자연의 신체로 복귀한 것이기도 하다. 세계가 우리를 위해 구성되었고, 우리를 중심으로 재편된다는 환상을 벗어던진다면 인어공주의 결말 또한 새로이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목록

세미나에세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