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세미나] 차라투스트라 발제문
하파타
/ 2016-05-17
/ 조회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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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들었다
차라투스트라의 처방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체하여 앓고 있는 것을 보았다.
체하여 앓고 있는 자들은 몸이 무거워 중력에 속박된 채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차라투스트라의 손은 위를 향하였으나 그의 눈길은 자꾸 아래로 떨어졌고, 차라투스트라는 차마 체하여 앓고 있는 자들을 매정하게 외면할 수 없었다.
그의 눈길은 산 정상을 향하였으나 그의 손은 아래에 묶여 있는 인간들을 단단히 붙잡았다. (현기증을 일으키는 이 이중의 의지. 이것이 그의 위험이다.)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 그대들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
이렇게 해서 차라투스트라는 체하여 앓는 자들을 위한 처방을 베풀게 되었다.
1.
“체하여 앓고 있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오랫동안 엄숙하다 못해 더없이 무거운 분위기 아래서 무릎을 꿇은 채로, 잔뜩 굳어 경직된 혀로 맛도 모른 채 식사를 해왔지. 양식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차마 제 입에 맞는지, 체질에 맞는지, 그리고 몸에 이로운지는 따져 보지도 못하고.
일용한 양식들. 개중에는 영양가 없이 헛배만 불린 것도 너무나 허다하였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 그는 어느새 포악한 사자의 탈을 쓰고 있었다. 그는 체하여 앓고 있는 자들에게도 포악한 사자의 탈을 나누어 주고는 포효하며 말을 이었다.
“그대들은 먼저 포악한 사자가 되어야 한다. 그대들을 속박하는 모든 것을 사납게 할퀴고 물어뜯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그대들을 무겁게만 한 헛배도 다 꺼질 것이니.
그대들은 지금껏 맛도 모르고 먹어 온 모든 것을 다 게워내고 뱃속을 깨끗이 비워내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 체하여 앓고 있는 자들을 위한 나의 처방이다.”
포악한 사자가 되는 것.
이것이 차라투스트라의 처방이었다.
2.
그런데, 포악한 사자가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차라투스트라는 겉으로는 차가운 척 하면서도 발 벗고 나서 그의 처방을 따르는 자들을 도왔다. 그리하여 몸이 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자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보다 회복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보다 회복한 자들의 표정은 그들의 몸이 한결 가벼워졌음에도 어쩐지 가볍지만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이 크나큰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아챘다.
“그대들은 크나큰 위험에 처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 그러자 보다 회복한 자들은 크게 감격하여 흥분에 휩싸였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그대는 우리의 허기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익숙지 않은 이 가벼움을 견딜 수 없는 우리의 불안을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아무것이나 막 주워 먹게 되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미풍이라도 불면 그대로 휩쓸려 날아갈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대는 뱃속을 가득 메운 이 공허함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우리를, 그 크나큰 위험을 꿰뚫어 본 것입니다.”
말을 마친 보다 회복한 자들은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차라투스트라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어느새 심각한 얼굴로 깊은 고민에 빠져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보다 회복한 자들은 예상치 못한 차라투스트라의 반응에 당황하였다.
“차라투스트라여, 우리는 이제껏 우직하게 당신의 처방을 따랐습니다. 거짓과 악이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정신없이 이리저리 오가며 멀미가 나는데도 버티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말하였듯 이처럼 뱃속이 텅 비어버렸으니 어서 우리에게 먹을 것을 내어 주시오!”
초조해진 보다 회복한 자들은 소리쳤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좀처럼 고민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보다 회복한 자들을 위하여 지금껏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섰던 차라투스트라가 아닌가. 도대체 어떤 깊은 고민에 빠져 있기에 그는 선뜻 보다 회복한 자들의 고통을 달래어 주려 하지 않는가. 그저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내주기만 하면 될 것을.
차라투스트라의 낯빛이 점점 창백해져 갔다.
3.
보다 회복한 자들의 원성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좀처럼 고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창백해져만 가던 차라투스트라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불현듯 무언가 깨닫고서 보다 회복한 자들을 향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보다 회복한 자들이여, 그대들에게서는 여전히 악취가 난다.
하마터면 나 그대들을 구제하기는커녕 그대들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구나. 연민에의 매몰, 그것은 너무도 무서운 죄이지.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끝이 났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하고 나서 크게 한번 웃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좋다. 그대들은 지금껏 나의 처방을 우직하게 따랐지. 그러나 처방이 다 무엇이냐? 결국 그대들의 건강을 위함이 아니던가. 나의 처방이 한때 그대들에게 참으로 요긴하기는 하였으나 결국 수단이었을 뿐. 언제나 목적은 건강이었다. 처방 그 자체로 목적인 듯 말해 왔지만 그것은 다만 유용한 책략일 뿐이었고.
더욱이 처방이란 상태에 따른 시도요 과정이니. 상태가 달라지면 그에 맞게 처방도 달라져야 한다. 상태에 맞지 않는 처방은 건강을 되찾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것이고.
건강을 해치는 처방. 그것이 다 무어냐. 차라리 버리고 말지.
이제 그대들의 상태가 전과 다르니 나 그에 맞는 새로운 처방을 그대들에게 베풀고자 한다.
그런데 그대들에게는 나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귀가 있는가?”
차라투스트라는 말을 멈추고 미심쩍은 눈길로 보다 회복한 자들을 한번 살펴보았다. 그러나 잠시였다. 이내 곧 차라투스트라는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늠름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좋다, 들을 수 있는 자 들으라.
그대들 보다 회복한 자들이여. 텅 빈 뱃속을 다시 채워야 한다. 그리하여 허기를 달래고 그 속을 가득 메운 공허함을 쫓아야 한다.
그럼 이제 그대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전과 같이? 그리하여 다시 또 체하여 앓을 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세 번을 말하지만 아니다.
그대들은 이제 스스로 상을 차려 먹어야 한다. 저마다의 입맛과 체질이 다르기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상차림을 할 수 있는 자 그 자신이다. 그러니 그대들의 건강을 위해 그대들 스스로 상을 차려 먹어야 한다.
상차림과 식사에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이 있다. 상차림과 식사가 노래와 춤 그리고 웃음이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다. 상차림과 식사가 노래와 춤 그리고 웃음이 아니면 그대들은 언제고 다시 체하여 앓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그대들은 언제나 노래와 춤 그리고 웃음을 잃지 말라.
이것이 그대들, 보다 회복한 자들을 위한 나의 처방이다.”
노래와 춤 그리고 웃음으로 스스로 상을 차려 먹는 것.
이것이 차라투스트라의 새로운 처방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했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