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아감벤] 강사인터뷰 – 정의진 :: 대안은 질문을 닫지 않는 태도에 있다
우리실험실
/ 20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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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아감벤 문학예술론] 강사인터뷰 – 정 의 진
“대안은 질문을 닫지 않는 태도에 있다. 질문을 유지하는 힘에 있다”
가을바람이 매서워진 해방촌 실험실에서 정의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의 옷에도 바람이 묻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과의 인터뷰에는 [실험실]의 오라클, 라라, 삼월이가 함께 했습니다. <삼월이> |
Q. 매우 식상하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강의의 주제를 ‘문학예술과 정치의 아포리아’로 잡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포리아’는 논리적 궁지, 논리화의 극한지점, 더 이상 논리화가 안 되는 지점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왜 아포리아가 오는지를 물어야겠지요. 우리 일상에서부터 사회, 정치적으로까지 아포리아는 늘 발생해요. 지금 문학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1990년대부터 한국문학에서도 정치적 문제의식을 작품에 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문학과 예술이 정치의 문제를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을 보셨나요? 소설가 장강명의 최근 소설은 아예 제목이 <한국이 싫어서>입니다. 희망버스와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하는 예술가들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물론 문학이 정치와 일치했던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은 삶에 민감하고, 정치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의 삶에서 어떤 질문이 나타날 때, 문학은 그 질문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잘 타협하지도 않지요. 문학이 지금 지적하고 있는 것은 정치의 한계입니다. 정치가 무엇인가? 정치가 왜 필요한가? 상황이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Q. 1990년대는 문학이 정치를 논하는 것을 피하게 되고,
지금에 와서 다시 문학이 정치에 대해 말하게 만드는 맥락이나 이유가 무엇인가요?
1990년대 문학예술에서 정치적 문제의식이 약화된 이유에는 동유럽의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된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현실의 사회주의체제와 국가들에 대해서 이미 환상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20세기에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사유와 실천의 결과물로서 들어선 체제의 붕괴는 큰 여진을 동반하였습니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자리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기 위한 노력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사민주의정당들은 빠르게 우경화의 길을 걸었고,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 규모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지요. 진보세력이 전혀 현실의 삶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대안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더 이상 대안으로 볼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문학예술이 가장 먼저 현실의 삶에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징후이고 아포리아입니다, 우리는 그 아포리아를 직시해야 합니다.
Q. 그런 징후가 있더라도 여전히 대안은 부재한 것이 아닌가요?
새로운 대안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것은 대안 자체나 해답, 결론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대안은 질문을 닫지 않는 태도에 있어요. 모든 것은 질문 자체에, 질문 자체를 유지하는 힘에 있습니다. 대안이 나타나도 다시 물어야 하는 거지요. 질문과 대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질문으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해답이나 대안은 모호한데, 질문은 선명해요. 그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Q. 벤야민과 아감벤의 작업에서 이런 경향들을 볼 수 있나요?
벤야민과 아감벤의 작업이 그러한 지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면서, 결론이 아니라 질문을 심화시켜나갑니다. 대안의 모순을 묻고 비판의 근본적인 문제적 성격을 유지합니다. 벤야민은 카프카가 작품을 통해 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주목합니다. 법의 현실적 논리 즉 더 나은 법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문제 자체를 심화시키는 방식이지요. 제도와 법의 아포리아를 명료화하면서, 법의 한계지점에서 사고하고 질문하지요. 아감벤은 비슷한 방식으로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분석을 통해 질문 자체를 근본지점까지 밀고 나갑니다.
이들의 방식은 아포리아를 구성하는 작업입니다. 논의 구도 바깥으로 나가서 논의의 구도를 바꾸는 것 말입니다. 그로 인해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 돌아옵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이 대안적 사고들을 촉발시키지요. 문학예술작품들을 매개로 하여, 벤야민과 아감벤은 정치와 사회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사고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당연히 새로운 사회의 징후와 윤곽들이, 새로운 사회의 이미지들이 떠오르겠지요.
Q. 강좌가 시작되기 전에 수강생들이 미리 준비하면 좋을만한 것이 있을까요?
공부를 할 때에는 철학적 배경지식 이외에도 사회문화적 맥락이나 역사가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철학적 지식으로 발견하기 힘든 점들을 거기에서 쉽게 발견하기도 하거든요. 아감벤은 벤야민의 사유를 이어받아서 자신의 작업을 확장시켜나가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습니다. 아감벤은 벤야민이 죽고 나서야 태어난 사람이고, 그것은 두 사람이 마주한 현실이 그만큼 달랐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벤야민은 20세기 서구의 역사적 기원인 19세기의 파리와 20세기의 파시즘,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자신의 현실로 보았습니다. 아감벤은 프랑스와 유럽의 68혁명 이후 서유럽의 보수화와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를 겪었지요. 두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의 서구역사에 대해 알고 있으면 좋습니다. 둘 다 필요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면 철학사보다는 이 시대의 사회정치사와 문학예술사를 읽으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정의진 선생님은 | ▪ 서강대 불문불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현대문학예술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상명대학교에서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 프랑스 현대문학과 문학예술이론을 중심으로 글을 썼고, 발터 벤야민, 자크 랑시에르, 조르지오 아감벤 등 프랑스와 유럽의 문학예술이론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