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史記》 강사인터뷰 - 기픈옹달 :: 불후의 문장, 불굴의 삶
우리실험실
/ 20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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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기픈옹달 강사인터뷰 :: 불후의 문장, 불굴의 삶
문학-역사-철학을 연결하는 동양의 인문학, 사마천의 《사기》
인문학이라고 하면 흔히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을 들죠. 《사기》는 뛰어난 문장의 전범이자, 기전체라는 역사서술의 기본토대를 닦은 책이에요. 그리고 중국고대철학을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책이고요. 따라서 동아시아적인 혹은 동양적인 인문학이 있다면, 《사기》는 누구나 거쳐야만 하는 인문학의 문門이라고 할 수 있어요.
태평양 건너 미국은 잘 아는데, 코앞의 중국은 잘 모른다? 중국적 세계를 이해하는 관문, 《사기》
《사기》는 춘추전국이라는 중국 고대사회의 혼란기가 끝나고 제국이 등장하는 사이에 쓰여졌어요. 《사기》에는 난세의 들끓는 에너지와 분위기가 있는 한편, 그것이 하나의 힘으로 정리가 되는 과정이 함께 있어요. 그 전에 있었던 에너지와 다양성이 일소되는 거죠. 이런 역사의 변곡점을 담고 있다는 게 중요해요. 지금 역시 그런 시대로 보이거든요. 19세기 20세기로 대표되는 ‘근대’와는 다른 새로운 미래가 닥쳐오고 있는. 이런 역사적 전환의 시대에 《사기》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크게 의미있는 일일 거에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중국의 부상이에요. 앞으로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텐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해요. 제가 보기에 사람들은 미국은 잘 이해하는데 코앞의 중국은 잘 이해하지 못해요. 지금이야 서구문화에 아주 익숙하지만 2~30년 뒤에도 그럴까요?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었던 것처럼, 《사기》를 읽고 소비하지 않을까요? 불과 2~300년 전을 생각하면 오늘날이 예외적일 수도 있어요. 중국적 세계의 영향권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죠. 앞으로 《사기》의 중요성은 더 높아질 겁니다.
‘대체 하늘의 도는 어디에 있는가?’ 어지러운 세상에 던지는 질문
왜 ‘하늘의 도’에서 시작하냐면, 이것이 사마천이 던진 첫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도’라고 하면 보통 비밀스럽고 추상적인 개념을 떠올려요. 그러나 사마천의 질문은 매우 구체적이에요.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거죠. 의로운 사람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고 악인들은 떵떵거리며 잘 사니까요. 이런데 대체 하늘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 걸까? 어지러운 세상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말이에요.
난세란 근본이 무너진 시대를 말하기도 합니다. 사마천이 말한 ‘하늘의 도’란 요즘으로 말하면 ‘대의, 주의, 이즘’ 따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믿고 따라야 할 가치체계가 무너져버렸다는 것이지요. 오늘날도 그렇지 않나요? 모든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 같은 당혹감. 바로 이것을 사마천은 고민했어요.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낭중지추 囊中之錐’ 역사를 찢고 튀어나온 인물들의 이야기
중국고전이라고 하면 《논어》, 《맹자》나 《노자》, 《장자》를 떠올리죠. 이들은 크게 보아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요.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갖고 있죠. 그러나 사기는 그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어요. 쉽게 말해 사마천의 텍스트에 나오는 인물은 착하게 산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도를 실현하겠다는 거대한 사명감에 사는 사람도 아니에요. 오히려 사마천 자신을 비롯해 근본적인 삶의 문제에 시달리는 인물이 모여있어요. 그러나 저마다의 강렬함으로 현실을 뛰어넘는 인물들이죠.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드라마 ‘송곳’에 나온 유명한 말입니다. 본래 《사기》의 ‘낭중지추囊中之錐’에서 나온 것이죠. 〈평원군우경열전〉에 이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국가의 운명을 건 상황에서 인재를 선발하는데 ‘모수’라는 인물이 스스로 나섭니다. 평원군은 그가 능력이 있었다면 진즉에 자신이 알아봤을 것이라고 말하지요. 마치 주머니에 송곳을 넣으면 송곳이 뚫고 나오는 것처럼. 그러나 모수는 거꾸로 되물어요. 과연 주머니에 넣어보기는 했느냐고. 자신을 주머니 속에 넣으면 뚫고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찢어버릴 수 있다고 말하지요. 그렇게 뚫고 나온 사람들이 《사기》에 모여있어요.
사마천은 이런 강렬한 삶들을 다채롭게 엮어냈어요. 천개의 얼굴을 천개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죠. 그래서 《사기》의 수많은 인물엔 각각 고유성이 있어요. 삶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삶이 개별적인 조건에서 어떻게 피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각각의 삶을 냉철하고 집요하게 추적하고 그 고유의 매력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사기》의 매력이에요.
천년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사나이 - 사마천!
《사기》에는 맥박이 뛰고 있어요. 역사를 찢고 튀어나온 인물들의 삶이 눈앞에 펼쳐질 겁니다. 그러니 그런 당당한 기백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읽어야 해요. 강의는 그 생동감을 함께 탐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거예요. 따라서 유명한 장면은 원문을 뽑아 함께 보기도 할 겁니다. 원문이 부담되기도 할 테지만, 텍스트 속의 인물을 가깝게 만나는 데는 원문만한 게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동양철학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고루함이나 뻔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거예요. 낡고 진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신선한 이야기를 하되 친절하게 하고 싶어요. 각 강의마다 강의안이 있을 텐데, 기본배경부터 친절하게 다룰 예정이에요. 개인적으로 《사기》는 삶의 단단한 뿌리를 선물해주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문정희의 시,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를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 문정희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 더 튼튼하고
좀 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년의 역사에다 당겨 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 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 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 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년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강사 기픈옹달은..................................
10년간 수유너머에서 고전을 공부했다. 지금은 [연구공간 - 우리 실험자들]과 책방 [온지곤지]를 오가며 연구자와 책방지기로 분주히 생활 중. 《논어》를 처음 접했던 까닭에 아직도 《논어》를 가장 좋아한다. 그 밖에 《장자》와 《사기》, 《성서》를 가장 아끼는 고전으로 꼽는다.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 을 썼고, 연구실 동료들과 《고전이 건네는 말》 시리즈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