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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고원] 1122_6강 후기, 탈주, 그 자유를 넘어 전략으로 +12
케테르 / 2017-11-25 / 조회 3,561 

본문

탈주, 그 자유를 넘어 전략으로

    

 

[천의 고원] 강좌를 들으면서 최진석 선생님을 통해 들뢰즈 사상의 요체를 보다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년전 참여했던 우리실험자들의 [안티 오이디푸스] 세미나에서 함께 독해하는 공부와는 조금 다른 맛, 다른 통찰, 새로운 발견 등을 경험하는 재미가 적지 않습니다. 최 선생님이 친절하고도 명료하게 개념 정리를 해주시는 것이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난해한 들뢰즈/가타리식 개념의 매트릭스의 해부도를 펼쳐보는 느낌까지 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의 이 후기는 제6강 강의 요약이나 소감은 아니지만 강의 말미의 내용을 약간 담아 제 방식대로 탈주 이야기를 푸는 것으로 하고자 합니다.

 

[천의 고원]에서 익숙하면서도 생경하고, 무언가 잡할 듯 하면서도 그립(grip)이 힘든 단어들이 마구 등장하는데, 이들 개념을 엮는 키워드가 탈주가 아닌가 해요. 탈주, 탈지층화, 탈기관화, 탈영토화, 탈코드화, 해체, 기관없는 신체, 리비도와 욕망의 운동, 생성, 미시정치학, 탈주선, 새로운 영토, 분자적 운동, 선분적 삶 등등의 단어가 탈주라는 실로 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각각 무슨 개념인가를 딱히 한 마디로 정의하거나 요약할 수 없지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탈주의 세포들이자 에너지들이자 운동방식이자 입자들이 아닐까요?

 

강의를 통해 제 나름대로 파악한 이해 혹은 메시지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탈주(脫走, évasion, escape)는 전략적이어야 한다.

탈주라는 말 자체는 영어 free~ from이라는 단어구처럼 다분히 ‘~로부터의 탈주에 방점이 찍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탈출 또는 벗어남, 이탈하는 행위 자체의 운동성에 우선적으로 주목하게 되지요. 그러나 탈주를 이념화하거나 낭만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될 거라고 봐요,

최선생님은 사실 강의 중에서 종종 탈주의 전략을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기관이나 지층을 무조건 벗어날 수 없다고,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반대하는 것은 기관화와 지층화라고 ~~. 무대포식의 탈주는 진정한 탈주가 아니라고 ~~ 우회적으로 언급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번 강의에서 재미있는 표현으로 탈주의 세 가지 방향성 혹은 전략을 언급했는데, 1. 떠나라, 2. 떠나서 만들라, 3. 떠나지 않고 만들라!가 그 세 가지입니다. ‘떠나라는 탈주 자체 혹은 즉각적인 탈주를 말합니다. ‘떠나서 만들라는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를 말합니다. 그리고 떠나지 않고 만들라는 앉은 자리에서 유목하라!는 것이지요.

지층위에서 놀라!”라는 유명한 말도 바로 이러한 맥락이구요, 서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하는 결코 점이 아니라 선을 만들라!”(Run lines, never plot a point)도 같은 슬로건으로 보입니다. 탈주는 방황이 아닙니다. 유목은 난민됨 이상의 긍정적 방향성과 새로운 영토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탈주의 철학은 탈주의 전략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둘째, 탈주는 무한한 개방성과 긍정적 삶이다.

탈주는 단회적인 행동이나 충동적인 네거티브의 몸부림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의 방식입니다. 기관없는 신체와 같은 강도 제로(0)의 상태로 자신을 열어놓고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과 기계들과의 이웃관계의 평면 속에서 새로운 배치에 무한히 열려있는 개방성이자 새로운 배치와 새로운 영토로의 진입과 재영토화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던져넣는 삶이란 것이지요, 연접 이접 통접의 배치의 흐름을 긍정하면 삶을 보다 긍정하게 되고, 자유의 폭이 무한히 넓어질 것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셋째, 탈주는 politics(정치)이다.

탈주는 새로운 영토 만들기로 이어지고, 선분적인 것은 또 다른 배치를 구성할 수 있는 긍정적 재배치의 계기가 되고, 분자적 운동은 미시적인 정치의 차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politics입니다. 탈주는 기표의 제국을 벗어나는 탈기표의 운동이자, 탈영토화의 흐름입니다. 먼저 자신 속에 있는 장군혹은 파시스트를 불러내지 않는 내적 politics가 필요하고, 아울러 이웃관계의 존재론적 평면 위에서 더불어 함께 가는 탈주의 연대적 삶이 필요하지요, 탈주의 철학은 미시정치학 혹은 소수자의 삶을 중시한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는 분자적인 대중의 믿음과 욕망과 정서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함께 탈주하고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가는 탈정치의 정치로 이어지는 일입니다. ‘탈정치란 말에서의 정치는 기존의 거시정치학을 말하구요, ‘탈정치는 거시정치학이나 거시담론이나 혁명적 운동을 부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간의 정치의 배치와 운동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넷째, 탈주를 즐겨라!

탈주는 춤이어야 하고, 탈주의 선은 춤추며 혹은 춤추듯 가는 길이지요. 여기 의 분위기란 탈주에는 늘상 감각적인 즐거움만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봅니다. 예기치 못한 고통과 지층화의 속박과 기표제국과의 투쟁 가운데 겪는 긴장과 파열의 아픔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춤으로 승화되어야 하고, 춤추는 마음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들뢰즈가 혁명은 기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유목적 삶과 탈주 역시 기쁨이어야 합니다. 탈주의 길에서 유목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둘러앉아 축제를 하는 즐거움 같은 것이 탈주의 여정 안에 늘상 있다/있어야한다,는 것이지요.

 

후기를 대신하는 소감 에세이를 주섬 주섬 올립니다. 다음 주에 뵈어요 ^^. 케테르 드림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주말 동안 짧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케테르 님의 후기에 댓글을 답니다.
자기만의 방식과 흐름으로 들뢰즈-가타리의 개념들을 정리해나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탈주의 철학은 탈주의 전략을 배제하지 않는다.
유목적 삶과 탈주 역시 기쁨이어야 한다.
최진석 선생님 강의를 듣다보면, 들뢰즈-가타리의 사유를 관념 안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녹여내어 표현해주실 때가 있어 가끔 번뜩 놀라게 됩니다.
그 번뜩한 순간들을 케테르님 만의 감각으로 낚아채어 후기로 잘 빚어주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강의가 끝나는 날 더 큰 즐거움 속에 우리가 탈주의 전략을 고민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아 ~~ 삼월님 늘 해방촌을 지키시다가 오랜만에 해방적 나들이를 갔다 오셨군요
좋은 강좌 디렉터를 하시느라 왕수고하십니다 ^^
최 샘께서 지나치듯 하시는 말씀 속에 보석이 줄줄 담겨있는데
그걸 '번뜩한 순간'이라고 표현하시네요
발터 벤야민의 글 가운데 '섬광처럼 스치는'이란 표현이 무척 많더군요
그걸 포착하고 붙잡고 그 번뜩이는 스침의 강도에 접속할 때
앎과 예술과 새로운 영토가 열린다고 이해하고 있어요 ~~
강의가 끝나는 날이 벌써 다가오네요 ~~~
늘 응원하고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 감사
굿 나잇되세요 ^^

해랑님의 댓글

해랑

들뢰즈와 가타리의 이론을 잘 요약해 주셔서 최진석 선생님의 강의 내용이 솔솔 두꺼운 머리껍질를 열고 올라옵니다 .  처음 강의를 들으며 혼란스러웠던 줄거리가 케테르님의 후기에서 정리가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고정되어 있음을 느끼는 순간 이동하거나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함께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춤추듯 탈주를 승화하는 단계를 말씀하시니 불안감으로부터 승화까지 그 여정에 수많은 즐거운 혁명을 만들어야겠습니다.
멋진 에세이 같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지난 간식 당번시에도 과일을 다루는 자세가 범상치 않으시다 했는데 역시 후기 또한 훌륭하십니다. ㅎㅎ~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댓글의 댓글

헐 ~~ 과일 깍는 내공과 후기의 내용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 우회적인 아니 총체적인 칭찬으로 알고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해랑님, 아다다님과 함께 우리 간식팀은 3명 전원이 후기를 쓰기로 하지 않았나요?
간식을 잘 세팅하신 내공이 담긴 후기를 보고 싶네요

해랑님의 댓글

해랑 댓글의 댓글

한국남자가 과일을 잘 다루는 것은 기성의 가부장제에서 조금은 탈주를 하신듯 하여 드린 말씀 입니다. ㅎㅎ
저는 내일즘 간단히 올리려구요...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전통적 습속에 비추어 인문학 공부하는 것도 탈주이지요 특히 여성에게. 여튼 잘 깍은 과일이나 부드런 빵 같은 후기를 기대합니다

유택님의 댓글

유택

케테르님의 강의 후기를 읽고 무척 감동받은 일인 여기 있습니다!
^^ 지난 시간에 보았던 케테르님의 강의 필기 노트 벌써 두 권째,
빽빽하게 적혀 있던 그 수많은 글자들..
지난 시간, 선우님과 제가 그 공책들을 보고 많이 놀랬었지요.

열린강좌에서 'N개의 섹슈얼리티'에 낚여ㅋ,
최진석샘의 강의를 들으러 다닌지 거진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만...
최근 오랫동안 알고 지낸 후배가 트렌스젠더라고 제게 커밍아웃을 해서
상대적으로 동성애자인 제가 (오히려 한번도 그리 생각해본적 없었던)
main stream으로 느껴지는 일이 있었는데요.
들뢰즈-가타리 <천의 고원>을 제대로 공부해왔다면 그리 놀랄일도 아니건만,
깜짝 놀라고 혼란스러웠음은 곧, 제가 아직 공부 제대로 안 되어 있다?로 해석 가능... ㅜ.ㅡ
혹은 강도 제로의 기관없는 신체 되기 제 삶에선 불가능? ㅠ.ㅠ
공부 제대로 못했음을 정히 인정하고,
저한테는 마지막 수업이 될 이번주 최진석샘의 강의! 열심히 들어야겠습니다.
(다음주 수업은 개인사정으로 아쉽게 결석입니다)

최진석샘의 강의을 통해 듣는 들뢰즈-가타리의 이야기속에
푸코에게서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부터 다르게 생각하기! 관점을 바꾸기!
그래서 문제설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변화시키기!
클리셰처럼 진부하게 들리지만 실상 이 구호들을 실천하려면
어마무지한 도전, 그 이상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들이라...

케테르님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댓글의 댓글

유택님이야말로 공부를 제대로 하신 것 같습니다 ~~~
제 후기에 올리신 댓글이 담백하고 실천적인 후기같습니다 ^^

다르게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고 실천하고 도전하는 삶,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아마 그 선 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실험자들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이 참 좋은 분들이고 다르게 생각하고 치열하게 무언가 다르게 살아가는 분이라는 제 느낌이
틀리지 않는 거 같애요 ~~

이쁘게 보아주셔서 저도 감사합니다 ^^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탈주, 탈지층화, 탈기관화, 탈영토화, 탈코드화, 해체, 기관없는 신체 ......
 이 모든 것들은 탈주의 세포들이자 에너지들이자 운동방식이자 입자들이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케테르! 탈주는 들뢰즈 기획의 심급에 있는 이념이지요.

그리고 이런 생각에도 기꺼이 함께 합니다^^
"탈주는 전략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탈주의 선은 죽음의 선이 되고 말테니까요!
"탈주는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삶의 가운데서 탈주가 수행되지 않는다면, 탈주는 공허해 질테니까요!
"탈주는 정치이다" 파시즘적 배치로부터 코뮨적 배치로, 욕망의 흐름을 바꾸는 정치가 바로 탈주일테니까요!
"탈주를 즐겨라" 기존으로부터 탈주과정은 곧 새로운 것의 생성과정이고,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댓글의 댓글

넹 오라클 님의 해설과 부연설명으로 더욱 명료해지는군요
역쉬 오라클(신탁) 받은 분 같아용 ~~~
저도 오라클님처럼 그렇게 생각해요
좀 후에 봐요 ~~

연두님의 댓글

연두

우와, 이런 정성어린 에세이에다 + 무척 뜨거운 반응!
천의 고원 강좌 회원들의 강렬한 신체, 사랑스럽네요. ^^
케테르님 글을 읽으니 지난 여섯 번의 강의가 조금씩 떠오릅니다.

탈주에서 기존의 지층을 벗어나는 것은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비운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최진석샘이 여러 번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나요.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댓글의 댓글

우와 ~~ 정성이라도 좀 어려있으면 좋으련만
정성도 내공도 부족함을 느끼며,
댓글에 간단한 인사답글 드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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