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2강 후기 :: 전체주의와 파시즘 +5
오라클
/ 2018-01-14
/ 조회 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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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뢰즈의 관점 :: (국가적) 전체주의와 (대중적) 파시즘
들뢰즈는 <천의 고원>에서 전체주의와 파시즘을 구분하고 있다. ① 먼저, 전체주의는 그 안에 포함된 사람들을 하나의 몰적 전체로 통일하고 통합하는 것이란 점에서 거시정치학적 개념이다. 반면 파시즘은 분자적인 흐름이 밀려가면서 형성되는 미시정치학적 개념이다. ② 또한 전체주의는 국가라는 거대한 경계 안에서 대중들의 공명을 만들어내고자 하며, 대중들은 자발적인 동의와 무관하게 억압과 강제에 의해 국가적 전체성에 복종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반면 파시즘은 국가가 제시하고 요구하는 것에 공명하기 이전에 대중들 자신이 상호작용과 전염에 의해 번식되는 정치적 흐름이고, 대중 자신의 자발적 선택이 전염되며 확장되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③ 따라서 스탈린적 유형이나 군사독재유형의 경우, 공포와 억압은 있었지만 대중들의 자발적 몰입을 야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파시즘 없는 전체주의'이다.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테러의 경우, 국가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대중적 흐름이라는 점에서 '전체주의 없는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전체주의적 국가 개념을 고안했지만, 파시즘을 단지 전체주의의 고안물 그 자체로써 정의할 이유는 없다. 전체주의적 국가는 오직 거시정치적 척도에서만, 경직된 선분성이나 전체화 및 집중화의 특정한 양식에 대해서만 타당하다. 하지만 파시즘은 민족-사회주의(나치) 국가 안에서 전체적으로 공명하기 이전에 이미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건너뛰고 급격히 번식하는 분자적 촛점들과 분리할 수 없다. 농촌파시즘, 도시파시즘, 지역파시즘, 젊은 파시즘과 구-군인들의 파시즘, 우익파시즘과 좌익파시즘, 커플의-가족의-학교의-사무실의 파시즘. 이 각각의 파시즘은 미시적 검은 구멍에 의해 정의되며, 중앙의 거대한 일반화된 검은 구멍 안에서 공명하기 이전에, 그 자체로 존립하며 다른 것과 소통한다."
"민족-사회주의의 국가가 수립된 이후에도 이러한 미시-파시즘은 존속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그것이 '대중'에 대한 비교할 수 없는 작용수단을 그 국가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국가보다는 차라리 권력을 정복했다고 한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우선 "사회의 모든 세포에 침투할 수 있는 비교할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 수단"을 그에게 제공해주는 미시-조직들을, 유연하고 분자적인 선분성을, 각종 세포를 침윤시킬 수 있는 흐름을 그가 장악했기 때문이다. ...... 파시즘을 위험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던 것은, 미시-정치적 내지 분자적 능력이다. 왜냐하면 파시즘은 대중운동이기 때문이다. 즉 전체화된 유기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암적인 신체가 문제인 것이다. ...... 미시-파시즘만이 다음과 같은 포괄적인 문제에 대답을 줄 수 있다. 욕망이 자신에 대한 억압을 욕망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은 또 어떻게 자신의 억압을 욕망할 수 있는 것일까? 확실히 대중들은 권력에 수동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은 일종의 피학적 히스테리 속에서 억압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며, 이데올로기적인 속임수에 의해 함정에 빠지는 것도 아니다." <천의 고원> 9. 미시정치학과 선분성 p225
[2] 고병권의 관점 :: 전체주의 대중의 차가운 죽음과 파시즘 대중의 뜨거운 죽음
이러한 들뢰즈의 개념을 근거로, 고병권은 <코뮨주의 선언>에서 전체주의 대중의 차가운 죽음과 파시즘 대중의 뜨거운 죽음을 구분한다. ⓛ 먼저, 대중이 잠재성을 잃고 흐르지 않게 되었을 때, 대중이 파악가능한 대상으로 전락한 상황을 ‘대중의 죽음’이라 부른다. ② 대중의 죽음은 크게 2가지 반대양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대중이 시체처럼 되는 것이다. 활성이 없는 신체, 차가운 신체. 흐름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대중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죽음이다. 죽음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뜨거운 신체. ③ 민족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과도한 대중적 열정을 본 스피노자와 라이히는 이렇게 질문했다. “대중은 어떻게 자신의 억압을, 자신의 죽음을 욕망하는가?” 전자의 죽음이 다소 타살의 성격을 지닌다면, 후자의 죽음은 완전히 자살이다.
"전자-전체주의는 공포와 희망을 변증법적으로 구사하면서 대중을 무력화하는 체제다. 전체주의 권력은 대중의 탈주선을 소거하고 몰적인 선분을 강화한다. 카네티의 표현을 빌리면, 대중으로부터 ‘변신을 박탈’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전체주의적 통치기술은 물리적 폭력을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조악한 수준에서부터 대중의 욕망을 미시적으로 통제하는 세련된 수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전체주의체제에서 대중은 잠재성을 잃은 자동인형이 된다. 로자가 레닌을 비판하면서 우려한 대목이 그것이다. 레닌이 프롤레타리아에게 규율을 심어주고 조직에 길들게 한 공장교육을 높이 평가한 것에 대해, 로자는 분노했다. 로자는 규율이 부르주아 메커니즘에 의해 노동계급에 심어진 것이며, 대중을 자동인형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후자-파시즘은 전체주의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파시즘은 탈주선의 봉쇄라기보다는 죽음을 향한 탈주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명된다기보다 전염된다. 요아힘 페스트에 따르면, 히틀러는 패배가 명확했던 1945년초에도 항복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린 망할지도 몰라. 하지만 우린 한 세계를 함께 끌고 갈 거야.” 그러고는 ‘문명의 폐허’만을 적에게 넘겨줄 생각임을 거듭 밝혔다.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던 것은(히틀러를 지지했던 것, 죽음을 향한 탈주에 동의했던 것) 나치가 죽음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관통할 이 죽음을 원했기 때문이다. 히틀러와 나치는 죽음을 위해, 독일의 죽음을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독일대중은 그들을 따라 자기파괴에 이를 각오가 되어있었다. 이것이 패배할 것이 분명해진 뒤에도 그들이 몇년 동안 더 싸울 수 있었던 이유이다."
"나치즘에 나타난 대중의 광적인 죽음은 과잉활성화된 대중이 급작스레 하나의 점, 하나의 검은 구멍으로 뛰어들어가면서 일어난다. 어떤 인물이, 어떤 민족이, 어떤 상징이 그런 구멍 역할을 한다. 나의 집단, 나의 사장, 나의 민족, 나의 신문, 나의 문화. 대중들이 블랙홀로 유도되고, 결국에는 몰락의지로 충만한 일종의 ‘광인’이 된다. 새로운 탈주선을 긋는데 실패하고 창조와 생성이 아니라 죽음과 몰락으로 달려갈 때, 욕망이 스스로 죽음을 욕망할 때, 우리는 그것을 대중의 파시즘적 죽음이라고 부를 수 있다. " <코뮨주의 선언> 1. 코뮨주의와 대중 p62~64
[3] 한나 아렌트의 파시즘과 전체주의, 그리고 실천적 함의?
파시즘에 대한 들뢰즈와 고병권의 논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경제적 생존의 극한에서 나타나는 전세계적인 대중적 우경화를 해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우리나라의 이명박-박근혜정권, 일본의 아베정권, 미국의 트럼프정권에 이르기까지 이는 대중들의 자발적인 우경화의 결과이다. 따라서 문제는 권력의 국가적 지배 이전에 대중의 파시즘적 욕망에 있다. 문제는 박근혜정권 이전에 박근혜정권을 출범시킨 대중들의 보수화와 우경화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영역도 국가권력 이전에 대중의 욕망이다.
들뢰즈-고병권의 전체주의/파시즘 논의와 비교하여,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 개념은 문제설정에서부터 다르다. 한나 아렌트는 일반적인 억압정권과 구별되는 전체주의의 핵심원리를 이데올로기와 테러로 보았다. 여기서 이데올로기는 '역사과정과 일치하는 특정이념의 논리적 전개과정 전체'이며, 테러는 '어차피 실현될 자연법칙을 집행하고 가속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는 나치체제와 스탈린체제를 전체주의 체제로 평가했다. 한나 아렌트의 관점에서 전체주의와 파시즘은 어떻게 구분되며, 무엇보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 개념이 '지금 여기의 정치현실'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던질 수 있을까?
댓글목록
정창조님의 댓글
정창조
뒷풀이 때 잠시 나눈 이야기를 이렇게 잘 정리해주시다니!
덕분에 저도 향후 전체주의 및 파시즘 연구를 해나가는데 중요한 단서로 사용해야할 많은 것들을 얻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들뢰즈의 전체주의론, 파시즘론은 잘 모릅니다만, 후기 써주신 것에 의거해 아렌트와 들뢰즈 간의 전체주의, 파시즘 사이에 대한 시각의 차이를 하나하나 살펴보지요.
1. 첫번째로 구분해주신 특징들은 모두 아렌트에게서 전체주의의 특징입니다. 아렌트가 제시한 전체주의 체제의 이념형으로서의 양파 구조와 선전 방식도 이와 무관하지 않지요. 양파구조에 대한 부언설명이 필요하시면 말씀주세요~
2.
- 아렌트에게 전체주의는 '국가라는 경계 안'의 한계를 넘어서 있습니다. 인용문을 보면 들뢰즈도 "히틀러는 국가보다는 권력을 장악"했다고 말하지요. 아렌트 역시 이와 비슷하게 전체주의 운동을 파악하는데, 다만 아렌트에게 이 권력은 전체주의일 경우 세계를 향한 무한 팽창을, 그리고 그 권력 안에 포섭된 인간들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추구합니다. 파시즘은 이 영역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고 보고요. 그리고 "전체주의 체제가 미시-파시즘을 여전히 존속"시킨다고 들뢰즈도 말하는데, 이 역시 아렌트의 입장과 다소 유사하네요. 아렌트 역시 대중 선전이 이러한 틀에 입각하여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전체주의 선전이 이러한 대중들의 미시-파시즘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다고 아렌트도 생각했고요.
- 그리고 들뢰즈 입장에서 전체주의가 '자발적 동의와 무관'하다고 하셨는데, 만약 외로움의 상태에 빠져 있으며, 현실감을 상당부분 상실한 대중들이 자신의 '추론 능력'을 사용하여 이데올로기 및 운동 엘리트들의 각종 음모론에 자발적으로 따를 수 있다면, 그것은 아렌트에게서 전체주의 운동의 주요 특징이 될 것입니다. '전염'을 이 과정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면, 결국 들뢰즈가 파시즘의 특징으로 제시한 것도 아렌트에게서는 전체주의의 특징 중 하나로 보일 수 있습니다.
3. 스탈린 체제가 대중들의 자발적인 몰입을 이끌어 내지 못했는지는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해 보이네요. 대중들 중에서도 직업군, 지역군 등으로 분류가 필요해 보이고요. 더군다나 아렌트에게 전체주의를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국제주의적 특성인데, 당시 전세계 곳곳에서 상당수의 지식인들, 대중들은 '러시아 바깥'에서 그 운동에 자발적으로 몰입했지요.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테러'같은 경우 아렌트는 그것이 '편견'에서 기인한 것인지, '이데올로기'에서 기인한 것인지의 문제에 천착하여 전체주의 운동인지 아닌지를 나눌 것 같습니다. 들뢰즈가 이데올로기의 정의 자체를 아렌트와는 조금 다르게 사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아렌트는 전체주의 운동을 '역사적 필연성과 일치하는 이념의 과학'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자신의 과학성을 증명하기 위해 무제한적 팽창, 인간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말을 덧붙여 둡니다. 아렌트에게 파시즘은 이런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폭압적, 그러나 물론 대중들의 자발적 운동입니다. 이 탓에 전체주의는 끊임없이 유동해야 하고 불안정 속에서만 그 운동이 지속되고, 파시즘은 안정적인 지배 체제의 구성을 더 중시하지요.
- 고병권 선생님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들뢰즈의 입장에 토대를 두고 있는 듯 한데, 아렌트의 논의와도 조금 맞닿는 부분이 있어 보이네요. 다만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개념을 설정하는 틀만큼은 아렌트와 조금 다르네요~저 책을 다시 읽어본 후 고병권샘과 한 번 논의해 보고 가르침을 좀 받아야 겠습니다 ㅎㅎ
- 들뢰즈와 고선생님의 논의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의 대중들의 우경화 경향에 의미있는 주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저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잠시 언급했지만, 아렌트였다면 여기에다가 덧붙여 대중들이 원자화되어 현실감을 잃어버리게끔 만드는 조건들에 더 주목했을 것 같습니다. 전체주의는 사라져도 전체주의적 요소 및 해결책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아렌트가 본 것도, 나치 패망 및 스탈린의 죽음(후르시초프의 비교적 유해보이는 체제의 구성) 이후에도 자본주의 진영이건, 사회주의 표방 진영이건 이러한 조건이 유지되는 곳곳의 조건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국가 권력 이전의 대중들의 그러한 욕망이 유럽에서 형성될 수 있었던 '특이한 조건'에 대한 이야기는 <전체주의의 기원> 반유대주의 장과 제국주의 장에 상당부분 담겨있지요. 저희 수업에서 다룬 영역을 다소 넘어서 있긴 합니다만 말입니다.
- 아렌트는 자신의 이론이 후대에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아마 다음과 같이 답할 것입니다.
"과거는 망각하려 해봤자 살아남아서 후대인들에게 책임을 부여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전체주의 체제 경험 직후에 전체주의의 기원이 출판된 만큼 이는 아렌트 및 당대 지식인들에게 더 현실적인 문제였겠지요)
"나는 이 책에서 나치즘과 스탈린 치하 러시아로 결정화되는 조건들을 다루었다. 다만 결정화되는 조건들과 관련해서는 독일적 조건과 범게르만주의의 형성에 더 주목했다. 후대에 벌어지는 억압조건들, 대중들의 파시즘적 성향, 음모론의 유행, 소수자 혐오 등은 내가 이해하려 시도한 과거와 다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이 이해하고자 하는 시대가 어떻게 대중들을 고독과 고립을 넘어서 '외로움'의 상태에 빠뜨리고, 현실감을 상실시키는지를 그 조건 그대로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거와 똑같이 대중들이 외로움의 상태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당신 시대의 외로움의 조건은 내가 분석한 19세기 20세기 초중반의 조건과 다른 요소들 속에서 결정화된 것이다. 나치와 스탈린 러시아에 내가 특히 주목한 이유는 그것이 전무후무한 방식, 즉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이데올로기의 지배와 테러의 방식 탓이었다. 아직 당신들에게 남아있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활용될 여지는 없는가? 결국 미래에 가서야 증명될 전 역사의 필연적 이데올로기는 남아 있지 않더라도, 이후에 테러의 방식은, 이후 새로이 탄생할 억압 체제의 매커니즘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이에 대한 파악은 당신들의 시공간을 살지 않은 내가 내놓을 수 있는게 아니며(내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당신들에게 당신들 시대의 짐으로 남아있다"
소리님의 댓글
소리
아렌트에 이어 들뢰즈와 고병권, 이진경 선생님의 각 정의들이 잘 정리된 후기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의 후기까지 뭐라 함부로 댓글 달기 어려운 후기군요! ㅋㅋㅋㅋㅋ 즐겁게 잘 읽고 갑니다.
정창조님의 댓글
정창조
으악. 강사의 강의능력이 부족하면, 강사가 후기를 마주할 때 고생하는 법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마침 오라클님께서 던져주신 문제의식들이 너무 재미있기도 했고요
앞으로는 논쟁이 더 유발될 수 있도록 짧은 댓글을 쓰도록 노력해야 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택님의 댓글
유택
오라클님과 정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겐 정말 어렵네요...
다음 수업을 열심히 또 들어봐야겠어요! ^^
정창조님의 댓글
정창조
5강 악의 평범성을 다룰 때, 훨씬 더 쉽게 아렌트의 전체주의론을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저도 더 쉽고 알차게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계속 강의 준비에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