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3강 후기 :: 노동, 작업, 활동 +3
라라
/ 2018-01-23
/ 조회 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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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강좌에서 재미있던 것은 노동(labor)과 작업(work)과 활동(action)에 대한 개념들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구체적으로 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게 흥미로웠다. 삶에서 세 가지를 나누면서 생활하지는 않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분명 나눌 수 있다. 그전에 아렌트가 말한 노동(labor)의 특징을 살펴보자.
노동(labor)은 생명유지를 위해 삶에서 꼭 해야 하는 활동들을 말한다. 인간의 생명 자체를 위한 활동으로 의식주에 대한 활동을 말한다. 노동을 소비를 위한 활동으로 재생산을 위해 필연적으로 해야하는 것이고 가급적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야말로 먹고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결국엔 소비로 함몰되고 자본의 자기증식과정에서 노동자는 착취될 수밖에 없다.
작업(work)은 자연을 포함하여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을 이용하여 유용하거나 아름답거나 의미를 갖는 안정된 것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비물질적인 것(시, 이야기, 논문등)도 포함된다. 작업의 목적이 완성되면 작업은 끝이 난다. 재생산되는 순환성에서는 벗어나 있는 특징이 있다. 안정감이 강한 작업들은 지속적으로 남는 작업이므로 보통 과거를 안정되게 남기는 경향이 있다.
활동(action)은 정치적 영역에서의 활동을 말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정치적인 활동에 주목한다. 정치적 활동이 인간 실존에서 독립적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활동에서의 조건으로 plurality(다원성,다수성,복수성)을 말하는데 이것은 노동이나 작업의 경우 개개인의 인격이나 개성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 구별된다. 분업 형태의 노동이나 공동작업이 있지만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철저히 사물이나 물질로 구성된 세계에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도 없이 직접적으로” 행해지는 활동에 주목한 것은 “제2의 탄생”을 염두해 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제2의 탄생은 제1의 탄생(자연적 탄생)과 달리 정치 공간을 구성하는 세계에서의 탄생을 말한다. 필연적인 역사에서 세상에 균열을 내는 우연성 탄생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행하고 있는 행동들은 대부분은 의식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이면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선생님이면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는 것이 구분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어느 곳에서나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계속 구분을 짓고 거기에 전문적인 방법들을 개발하고 그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마을과 학교가 같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서로 배우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연의 가능성, 균열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다양성(plurality)의 조건들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의식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벽돌을 쌓고 있더라도 어떤 사람은 벽돌 쌓는 것 자체에 집중하지만 어떤 사람은 벽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어떤 사람은 건물을 염두하고 벽돌을 쌓는 것처럼 말이다. 생협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성분 완전 표시제로 좋은 상품을 사기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농촌과 도시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협동조합 정신에 입각하여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조합비를 내고 물건을 사지만 노동, 작업, 활동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서로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지만 활동으로서의 조합원은 노동으로서의 조합원으로 가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것은 작업으로써의 책이 작가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인상 깊다. 책을 읽으면 그 글을 쓴 사람은 어떨 것이라고 쉽게 판단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책이 작가를 말해주지 않는 게 재미있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글을 쓰는 일이 위험한 일이라고도 했다. 글에서는 여러 다양하게 꾸미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말과 활동을 강조한 한나 아렌트를 이해할 것 같다
댓글목록
오라클님의 댓글
오라클
== [자본]에서 말하고 있는 작업(work)과 노동(labour) ==
1.
맑스는 [자본]에서 노동의 이중성(구체적 유용노동, 추상적 인간노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노동은 특수한 목적이 정해진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며, 구체적 유용노동이라는 속성을 통해 사용가치를 생산한다.
한편, 노동은 생리학적 의미에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며,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속성을 통해 가치를 형성한다."
.... [자본1] p102. 상품에 나타난 노동의 이중성
2.
맑스의 구체적 유용노동과 추상적 인간노동에 대한 엥겔스의 주석입니다.
"영어는 노동의 두 측면에 대해 각기 다른 말을 갖는다.
사용가치를 만들어내고 질적으로 규정되는 노동은 work로 구별되고,
가치를 만들어내고 양적으로 측정되는 노동은 labour로 구별된다."
.... [자본1] p103. 주16
3.
노동의 이중성과 상품의 이중성의 계열을 요약하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 유용노동(work) ...... 사용가치(worth) 생산
추상적 인간노동(labour) ...... 가치(value) 생산
맑스는 노동의 이중성과 상품의 이중성을 통해,
상품의 운동과 화폐의 발생을 설명하고 자본의 운동법칙을 보여줍니다.
맑스의 [자본]을 공부한 분들은 참조하시면 좋겠어요^^
정창조님의 댓글
정창조
자신의 고민이 녹아든 후기 좋습니다. 많은 분들이 느끼고 계시겠지만, 아렌트는 매력적인 문제의식을 던져주긴 하지만, 딱히 어떤 해결책을 마련해 주지도 못하고, 결론부는 항상 순진한 희망으로 차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엄밀하게 개념 분석을 하다가도 자기식대로 마구 개념을 변용하기도 하고요. 이 변용들은 대부분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많은 현대철학자들이 그에게서 당장 답을 얻기 보다는 그가 마련해놓은 문제의식을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키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후기가 참 반갑네요~실은 저도 아렌트의 문제의식의 신선함에, 그가 불러일으키는 논쟁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지 그가 정답을 준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라클님 댓글과 관련하여 <인간의 조건을 읽는 시간>에서 마사키 선생이 정리해 놓은 부분을 첨부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평가하느냐와 상관없이 일단 만들어진 뒤에는 사물에 계속 내재하는 것이 worth입니다. 이것은 애덤 스미스나 마르크스가 '사용가치'라 부르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 value는 기본적으로 교환가치일 뿐입니다.
하지만 worth=사용가치, value=교환가치라는 식으로 완전히 등가부호로 나타낼 수는 없습니다. 예술작품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작품은 사용하지 않더라도 최고도의 worth를 가지고 있고, 시장에서 교환하지 않더라도 공적영역에 나타나는 것만으로 높은 value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사키 선생의 해석은 제 해석과 아주 아주 미묘하게 차이가 있으며, 아렌트가 자본론의 '일부분'을 이렇게 확장시켜 내는 것(본인은 이조차도 명확히 밝히지 않습니다)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더 비판적으로 검토해 봐야 하겠지만, 자본의 노동관과 인간의 조건의 노동 작업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용문일 듯 합니다^^
소리님의 댓글
소리
이 글을 몇번이고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라라 님의 생각과 고민을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참 잘 정리된 후기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활동들과 다양한 정치적 활동들을 통해 역량을 높혀가는 라라 님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 모든 활동들이 정치적 다양성을 확립하는 과정이자, 라라 님의 제 2의 탄생의 순간들이기도 할테지요.
우리가 어떤식으로 다양성의 조건들을 넓혀나갈 것인지, 어떤식으로 행동할 것인지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라라 님의 개성이 담긴 정갈한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