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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고원] 1011 후기 : 왜 기계인가? +8
삼월 / 2017-10-12 / 조회 2,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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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뢰즈-가타리는 왜 ‘기계’라는 표현을 쓰는가? 들뢰즈-가타리의 책을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에 상관없이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입니다. 질문과 답변 시간까지 포함해서 총 3시간 30분에 걸친 첫 시간의 강의로 그 궁금함이 많이 해소되셨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몰아닥친 충격과 피로도 만만치는 않겠지요. 충격과 피로 이상으로 뜨거운 호기심이 폭발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기계’라는 표현을 중심으로 그 시간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하겠습니다.

 

 먼저 《천의 고원》이라는 책이 탄생한 배경을 짚어봅니다. 1968년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이라는 책을 씁니다. 들뢰즈는 이 책에서 ‘차이 그 자체’를 강조합니다. 우리가 통념으로 이해하는 차이는 동일성의 기반 위에서 확인하는 차이이고, 그렇게 확인된 차이는 다시 동일성으로 회수되어 버립니다. 들뢰즈는 어떤 것으로도 회수되지 않는 차이로 ‘차이 그 자체’를 말합니다. 한 가지 근원에서 태어나지 않은 세계를 상상해야만 이 차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는 과거에도 통일된 적이 없고, 미래에도 통일되지 않습니다.

 

 《차이와 반복》이 세상에 나온 1968년에는 68혁명이 있었습니다. 68혁명으로 구조주의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사유들이 탄생합니다. 언어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체계론이라고 할 수 있는 구조주의 대신에 언어를 넘어선 무엇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이때 데리다와 라캉은 68혁명 이후 대두된 타자의 문제에 주목합니다. 들뢰즈는 1972년에 가타리와 함께 《안티오이디푸스》를 씁니다. 이 책에서 신경증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보면서, 집단적인 사회적 무의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시 1980년에 들뢰즈-가타리는 《천의 고원》을 씁니다. 《안티오이디푸스》와 《천의 고원》은 [자본주의와 분열증]이라는 제목으로 한데 묶이게 됩니다.

 

 들뢰즈-가타리가 《천의 고원》을 통해 돌파하려고 했던 문제는 주체와 구조입니다. 주체성의 문제를 중요하게 본 현상학과 사회의 체계를 연구한 구조주의를 넘어서려고 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현상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주체성은 사유와 인식의 주체로서의 내적 성찰성입니다. 사태를 직관하는 이 주체의 성찰 속에서는 의미화가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근대주체철학에서 주체는 나와 이 세계의 실존을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들뢰즈-가타리는 관계나 요소로 존재하는 우리를 보기 위해서는 이 주체성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체는 분명히 인간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인간을 중심으로 위계화된 사회관계를 상정합니다. 위계화는 곧 구조의 문제입니다. 구조는 우리를 행위하지도, 결합하지도 못하게 만듭니다. 오로지 위계 내부나 맞닿아 있는 면의 수직적 소통만 가능할 뿐, 위계를 넘나드는 소통이나 결합은 불가능합니다.

 

 주체와 구조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들뢰즈-가타리가 사용하는 전략적 표현이 ‘기계’입니다. 기계라는 단어의 철학적 기원을 스피노자에게서 찾을 수도 있지만, 기계는 다분히 서구의 철학사 바깥의 단어입니다. 한 마디로 맥락에서 분리된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가타리는 기계라는 단어를 통해 당시 사상계의 장에 균열을 내고, 자신들의 사유를 작동시키려 했습니다. 주체와 구조의 문제에는 늘 작인과 위계의 환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계는 주체를 대신하고, 모든 사물은 기계가 됩니다. 기계라는 개념은 모든 사물을 위계화되지 않은 평면 위에 둡니다. 이것이 ‘일관성의 평면’이며, 그 과정은 지극히 존재론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이런 위계가 사라진 평면을 경험하거나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들뢰즈-가타리의 사유를 매우 정치적이며, 불온한 사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현상은 구조주의자들의 말처럼 변동의 여지없이 단단한 조직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것도 다른 무엇과 만나 결합할 수 있는 평면적 사건의 장입니다. 이 장을 기계적 배치라고 말합니다. 기계라는 말은 질료적이고 물질적인 부분들로서의 요소도 강하게 함의하고 있습니다. 기계의 질료적 작용을 통해 나의 개체성이 다른 기계들과 결합할 가능성을 확인합니다. 다양체는 늘 질료적 운동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언표행위의 배치 역시 기계적 배치에 속합니다. 우리가 작용하는 관계들 자체가 기계적 관계성 안에 있습니다.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책에 대한 환상은 세계가 일관된 하나의 구조물이라는 환상과 같습니다. 이는 세계의 처음과 끝이 위계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환상이며, 이런 환상을 따르는 동안 우리는 구조 속에서 사유합니다. 서사의 환상에 의지하여 끌려가면 새로운 지평을 만날 수 없습니다. 누적된 철학사의 개념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사유를 하려면 기존의 사고와 단절해야만 합니다. 들뢰즈-가타리는 《카프카-소수적 문학을 위하여》라는 책에서, 서사가 아닌 배치를 보여주는 카프카의 소설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문학에 문학 외적을 것을 공명시킨 들뢰즈-가타리의 작업을 보여줍니다. 결국 모든 사물은 외부성에 의해 규정됩니다. 근대문학은 제도입니다. 근대문학·문화·학문을 포함한 모든 공인된 것은 구조이며, 배치의 결과입니다. 배치의 결과는 외부성, 즉 누군가와의 관계에 의해 변성되어야 합니다. 그 변성을 통해 배치는 제3의 배치로 나아갑니다.

 

 최진석 선생님의 첫 강의를 이렇게 아주 수목적인 방식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실타래처럼 엉킨 리좀의 이미지를 상상해보며 아쉬움을 달랩니다. 강의안에서 뽑은 리좀과 사유에 관한 몇 개의 문장을 적으며, 후기를 마무리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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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좀은 모상이 아닌 지도다. 지도는 스스로에 갇혀 있는 무의식을 재생산하는 게 아니라 구성한다. 지도는 장들의 접속에 기여하며, 기관 없는 신체의 봉쇄를 푸는 데 기여하고, 일관성의 평면 상에서 최대한으로 개방하는 데 기여한다. 언제나 다수의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게 리좀의 중요한 특징.

 

사유는 수목적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나무가 자라지만 두뇌 자체는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댓글목록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어떻게 이리도 알곡만 잘 정리된 후기가 가능할까요.
이 후기를 넘어서는 후기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 같... 너무 수목적인가요? ㅎㅎ

역시 삼월뽕!
삼월에게 리스펙~

유택님의 댓글

유택

이 야밤에 깜짝 놀랬어요. 야무지게 강의 다시 듣는 줄~! ㅎㅎㅎ 이렇게 정확하게 또박또박 성실하고 알찬 반장의 깔끔한 후기라니요~~
아쉽게 결석한 학우들에게도, 또 수업 다 듣고 이제 다 알 것 같다며 너스레 떨었던 저에게도 다시 강한 복습의 시간을 안겨줍니다. 전 처음에 '서론:리좀'에 대한 책 강의를 기대하고 갔었는데, 훌쩍 기대를 뛰어넘는.. 진석샘의 무궁무진한 그 이야기 보따리들.. 풀어도 풀어도 나오는 그 깊은 보따리들... 어쩌죠. 다 듣고 싶다능...ㅠ 놀라고 또 놀라며, 입가에 침버큼 생기도록, 유택 소개로 여기를 접근(접속이 아닌)한 알렉스님과 돌아가는길에 감히 조용히 칭송하고 또 칭송하다가 ^^ (여기까지! 넘치면 모자라는것보다 못하기에) 전 다음주 2강 수업 기다리기 시작할랍니다~~ ^^.

neotenie님의 댓글

neoteni…

감사합니다. 아직 잘 모르겠네요. ^^;

선우님의 댓글

선우

잘 읽었어요 삼월 님.  결석한 사람의 아쉬움을 달래주네요.
그 시간이 어땠을지  상상도 되고요.^^ 고마와요~

케테르님의 댓글

케테르

헉 ~~ 거의 강의를 복제해놓은 듯한 후기, 그리고 일목요연한 설명, 역시 삼월님의 명필 후기입니다. 잘 읽고 복습하고 감사의 인사도 한 마디 담아 ~~ 이번 천의 고원 참 굿입니다 ~~ 계속 기대, 계속 수고해주세요 ^^

vizaio님의 댓글

vizaio

우음... 사월님에 이어 삼월님까지도! 대체 이렇게 다 아시는 분들이 왜 강의에 들어오시는 게죠? ㅠㅜ
제가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

사월님의 댓글

사월

사월님 삼월님..막 이러니까 안 웃을 수가 없네요. ㅎㅎㅎ
강의 감사합니다~ ^^

올리비아님의 댓글

올리비아

후기 너무 멋찝니다~ 어쩜 이리 정리가 잘 되셨는지.ㅋㅋㅋㅋㅋ 부럽고도 감사합니닷~
전 첫강의때 가장 임펙트 남는 부분이 위에 말씀하신
"주체와 구조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들뢰즈-가타리가 사용하는 전략적 표현이 ‘기계’" 요 부분이였습니다.요 한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최진석선생님의 많은 설명과 글들이 필요했지만요 ~~ 너무 멋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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