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고원] 1101_4강 후기 +1
아침
/ 20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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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잉여성
-통상적으로 잉여라고 하는 것은 본래의 것이 있고 그것을 제외하고 남는 것이다. 들뢰즈는 잉여를 본래의 것보다 더 본질적이며 선제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잉여가 없다면 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논리를 편다.
-모든 말(언어)에서 잉여성은 항상 발생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관계성에서 언어가 존재할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언어의 잉여성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언어의 의미를 넘어서는 언어의 함의를 찾게 된다. 함의의 근거로 말의 어조나 음고(톤), 말의 맥락이다. 이것은 언어학의 외부이며, 언어의 잉여성이다.
-잉여적이라는 것은 특별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작용한다는 것은 특정한 명령성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모든 말은 명령어라고 들뢰즈는 규정 짖고 있다. 그것은 언어적 기능의 지시성의 명령과는 다르며 본래적으로 명령이 함축되어 있다. (모든 기호는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한다)
-잉여성은 주파수(정보의 의미화)와 공명(소통의 주체화)라는 두 형태를 갖는다. 의미화는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주체와 대상으로의 객체의 관계속에서 부여되는 현상을 말한다.
대화의 잉여성
들뢰즈는 관계안에서 말의 잉여성이 생성된다고 말한다. 말하는 이의 말의 톤이나 맥락에서 듣는 이는 말의 잉여을 찾아내고, 말하는 이의 관계속에서 듣는 이는 말의 잉여에 반응한다. 그러다면 ‘오해’는 어떻게 봐야 할까? 오해는 듣는 이가 말하는 이의 주파수를 다르게 맞추는 것이며 다르게 공명하는 것일까? 하지만 말의 잉여성은 관계에서 생산된다기 보다는, 말하는 이가 생산하는 것이고 듣는 이가 관계성안에서 말하는 이의 말의 잉여성을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 관계가 친밀할 수록 말하는 이의 말의 톤이나 맥락을 잘 이해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관점이라면 ‘오해’는 듣는 이가 생산하는 말의 잉여성이 아닐까? 들뢰즈의 말의 잉여성은 말하는 자의 시선만 존재하는 것 같다.
작품의 잉여성
작품의 잉여성은 말의 잉여성과 같은 원리일까?
**얼마전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책을 샀다. 이 책의 번역자들(김선형, 권지아)이 쓴 옮기고 나서 쓴 글이 ‘멋진 잉여성’인 것 같아서 몇 구절 옮긴다. 이 글의 제목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위한 안내서를 감히 표방하는, 알고 보면 그저 시시껄렁한 잠담에 불과한 몇마디’이다.
-모든 옮긴이 해설이 그러하듯 이 글 역시 별 대단한 말은 없으므로 굳이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다만 심심하신 분들은 정 읽고 싶으면 꼭 읽기 바란다.
-우주는 넓고 존재는 시시껄렁하다.
-이 엄청난 상황과 희한한 등장인물들의 동기며 정서는 하나같이 치졸하고 사소하며 한심 스럽고 시시껄렁한 데다 너무나, 너무나 낯익다.
-개연성에 침을 뱉어라
-그리고 어마어마한 우주의 끝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질펀한 음주와 기꺼이 먹히기를 원하는 짐승으로 만든 최고의 스테이크로 드는 식사밖에 없다. 그러가 하면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남긴 최후의 메시지는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라는 문장일 뿐이고...
-권태로운 우주, 끝없는 환멸의 슬픔
-결국 이 모든 전 우주적 소동들이 우리에게 환기하는 것은, 우리만의 홍차가 있고 사랑하는 펜처치가 있고 수선화가 피어나는 우리의 지지부진한 일상의 아름다움이 아닐지,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들뢰즈-가타리는 언어가 정보적이고 소통적이라는 말을 부정합니다.
언어의 잉여성은 주파수(정보의 의미화)와 공명(소통의 주체화)이라는 두 형태를 갖으므로,
오해란 늘 언어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고, 언어의 본성은 오히려 언어의 밖에 존재합니다.
'잉여'를 생산관계의 잉여와 비교해 보아도 될 텐데요.
우리는 생산하여 쓰고 남은 것이 잉여일 거라 믿지만, 자본주의에서 잉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생산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잉여가 곧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이며, 일차적 요소입니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로, 언어의 잉여성이 굳이 우리가 애를 써서 말을 하는 이유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결코 정확한 정보전달과 소통만을 위해서 언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정보전달과 소통이 가능하지도 않고요.
탈주를 위해 우리는 언어(기호체계)를 파괴할 것이 아니라, 언어의 배치를 살피고 거기서 출구를 탐색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