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히스토리쿠스] 2강 과제 +1
나마스떼
/ 2017-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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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사건 분석 - 구조, 의지, 우연의 측면
나마쓰떼
사도세자 사건
1762년(영조 38) 5월 사도세자가 부왕인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사망한 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 구조적 측면 - ‘세습왕정’이라는 조건
왕조국가에서 왕이 누리는 권력은 절대적이지만, 도덕적인 수양을 강조하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왕은 만인의 표본이 되어야하고, 현명한 신하들과 더불어 국정을 운영해야하는 책무를 지닌다. 이에 세자는 어릴 때부터 나라를 이끌 수 있는 도덕적 자질과 학식, 경륜을 갖추는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세자’의 자리에서 신경증과 가학증으로 내관과 나인 등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러 국법을 어겼다. 국법을 엄격히 준수하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세자로서 인륜에도 반하고 국법에도 반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은 조선에서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2. 의지의 측면 - 영조의 의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영조이다. 친자식을 죽이라는 명령은 인륜에 반하는 것이지만, 사도세자의 광증과 비행이 심각하여 왕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고, 또 사도세자를 살려둔 채 다른 왕세자를 선정한다는 것은 왕조의 안정을 위협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영조로서는 국왕으로서 결단을 내린 것이라 생각된다.
3. 우연의 측면 - 효장세자의 요절
왕자 ‘이선’이 세자가 된 것은, 정성왕후 서씨에게서 왕자가 태어나지 않았고, 정빈 이씨 소생이자 사도세자의 형인 효장세자가 요절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왕자 ‘이선’은 태어나자마자 세자가 된다. (1736년) 이 때 영조의 나이는 42세. 당시 왕들의 수명을 고려할 때 왕조의 정치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선 왕자 이선이 장성하여 왕이 되어야 했다.
댓글목록
여하님의 댓글
여하대략 이런 틀로 보면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